올해 초, 의과대학에 지원한 학생의 면접시험에 들어갔다. 졸업 후 생각하고 있는 전공 분야를 물어 보았다. 많은 학생이 힘들다는 흉부외과나 일반외과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돈을 잘 버는 의사도 좋지만, 힘들어도 보람 있는 일을 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며…. 다소 의외의 대답에 면접까지도 ‘선행학습’을 받고 왔나 살짝 의심도 들었지만, 학생의 순수한 마음을 믿고 싶었다. 지금 진료 현장에 있는 많은 의사들의 초심도 이러했을 것이며, 그 초심을 지켜가는 의사를 가까이에서 자주 본다.
“진정한 의사는 돈벌이 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환자를 돌보는 사람인가요?”
오래 전 의학의 목적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에 플라톤은 환자를 치료하는 재능이 치료비를 받게할 뿐, 본질적으로 의사는 돈을 버는 자가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돈이 최고의 가치인 양 여겨지는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사에게 옛날 그리스 의사처럼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으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특히 공공의료가 빈약하고, 90%이상의 의료를 민간이 담당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허준과 같이 인술(仁術)도 베풀어야 하지만, 병의원도 경영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적정한 의료수가를 책정해주지 않고, 여론몰이를 통해 대다수 의사를 과잉진료를 일삼는 나쁜 의사로 매도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보건복지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의사는 믿지 못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제도에 대한 불신도 여기에 기인한다.
7월1일 포괄수가제 시행을 앞두고 복지부와 의사협회 사이에 전운이 감돈다. 포괄수가제는 일련의 치료행위를 묶어서 병원마다 같은 가격을 매기는 의료비 지불방식이다. 포괄수가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우리나라의 가파른 의료비 증가에 따른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포괄수가제가 시행될 경우 ‘획일화된 저질수술’을 강요해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며 반대한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선택적으로 포괄수가제를 시행한 결과, 의료의 질이 낮아진 증거는 없다. 또 대부분 선진국도 포괄수가제를 도입하고 있으나, 의료의 질 저하는 문제되지 않았다.
의사들은 2000년, 의료파업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가장 큰 손실은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에 금이 간 것이다. 의사는 거리에서 ‘국민건강’을 외쳤지만, 국민은 의사의 제 밥그릇 챙기기로 받아들였다. 포괄수가제 논란을 바라보는 국민의 생각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제도가 바뀌면 이익이 바뀌고, 이익이 바뀌면 사람의 행동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쉽게 바뀔 수 없는 것도 분명 있다. 의료가 그렇다. 얼마 전 ‘포괄수가제가 도입되면 백내장 수술에 싸구려 인공수정체 재료인 중국산이나 파키스탄 수정체를 쓸지 모른다’는 의사협회의 말을 듣고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그런 엄포를 놓으면서 국민 건강을 위해 포괄수가제를 반대한다니 곧이 들을 국민이 과연 있을까?
의사는 그들을 향한 사회의 조건과 보답이 좋든 나쁘든,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활동을 멈출 수 없다. 의사는 그런 역할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되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안고, 면접시험을 보며 필자가 했던 말을 오늘 되새겨 본다.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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