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은 의과대학에서 기초와 임상의학을 배우면 강의실을 떠나 병원으로 향한다. 예비 의사로서의 첫걸음인 임상실습을 위해서다. 책을 통해 배운 의학지식을 실제로 환자 곁에서 접목해 보는 소중한 기간이다. 15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임상실습을 통해 필자가 깨우친 점은, 의학 공부야말로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는 것이었다.
귓속의 고막은 ‘회백색 나팔 모양의 얇은 막’이라고 교과서에 설명돼 있지만, 솔직히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임상실습을 통해 환자의 고막을 직접 관찰한 후에는 정확한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산부인과 임상실습 시 분만과정을 지켜보며 산고의 고통을 참아내는 모성의 위대함과 새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의대생의 임상실습이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전주지방법원은 자신의 동의 없이 의대생이 분만과정에 참관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한 산모가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병원은 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 이후 의대생 교육과 환자의 인권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사실 의대생과 수련의의 분만 과정 참관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년 전에는 한 국회의원이 ‘수련의 진료실 출입에 대한 환자의 서면 동의’를 명문화한 입법을 추진했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의료계는 적절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이번 판결은 환자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의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의사는 교육이라는 취지에 동의해 임부가 불편을 참아주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임부는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 모성의 힘으로 수치심을 참아왔던 것이다.
그동안 관행처럼 임부의 사전 동의 없이 의대생이 분만 과정에 참관했지만, 이제부터는 사전에 임부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옳다. 아무리 의학교육이 목적이라 해도 환자의 인격이 무시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도 이미 진료 참관에 있어 환자의 사전 동의는 일반적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많은 환자가 1시간 대기 후 3분 진료를 받고, 하루에도 많은 수술을 시행해야 하는 의료 현실에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도 탓만 하고 있으면 의사와 환자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임상실습 기간에는 입원 시 미리 학생의 참관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등 각 병원의 사정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혹자는 진료 참관에 대한 동의를 구하면 국민 정서상 많은 환자가 참관을 거부할 것이고, 이는 의대생의 부실교육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의사가 국민을 향해 수련병원의 목적이 진료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있다고 설득한다면 많은 환자가 진료참관에 동의해 줄 것으로 믿는다.
최근 서울의 한 의과대학은 산부인과 임상실습을 돕기 위해 실물 크기의 ‘애 낳는 로봇’과 ‘신생아 로봇’을 도입했다. 그러나 로봇으로 임상 실습을 받은 의사에게 장차 후손의 출산을 맡길 수 없다는 건 의사나 환자나 같은 생각이 아닐까. 의대생 교육과 환자의 인권이 모두 존중되는 임상실습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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