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홀로 생활…자녀 유학 고민 유서 남기고 숨져
아내와 함께 자녀를 유학 보내고 혼자 지내던 50대 치과원장이 자녀의 유학문제로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민국 ‘기러기 아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어서 씁쓸함을 남기고 있다.
‘기러기 가구’는 지난 10년 새 2배 가까이 늘어, 이젠 사회적 보장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6일 대구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3시50분쯤 북구 읍내동 한 아파트에서 치과원장 A씨(50)가 숨져 있는 것을 병원 직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부인과 자녀는 10년 전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부모와 형제도 미국에서 살고 있어 A씨는 줄곧 혼자 생활해 왔다.
A씨는 유서에서 ‘한국에 남아 행복할 수 있다면 한국에 사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 그런 확신이 없다면 미국에서 사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아빠가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적었다.
경찰은 A씨가 자녀 유학문제로 가족과 갈등을 빚어 오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다.
A씨는 치과의사회에 회원 등록을 하지 않은 데 이어 대학 동문회에도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평소 외로운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치과의사회 관계자는 “(A씨가) 회원으로 등록이 안 돼 우리도 소식을 듣고 수소문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 총 조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외 다른 지역에 가족이 있는 가구는 245만1천개로, 전체 가구(1733만9천 가구)의 14.1%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결혼을 했지만 배우자와 떨어져 사는 이른바 ‘기러기 가구’가 115만 가구였다. 이는 전체 결혼 가구의 10%를 차지하는 수치로, 2000년 5.9%에 비해 10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이창기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어린 자녀와 배우자를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는 가족과의 괴리감이 커져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다.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우석기자 cws092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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