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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스토리가 있고 그림 같은 수성못·성당못…“대구의 명소로 잘 보전해야”

2013-10-25

성당못과 수성못은 대구시민의 대표적인 쉼터이자 스토리가 있는 저수지다.

성당못 고려 때에도 존재 추정
84년 호안공사로 못 70% 매립
섬·무지개 다리 등 풍광 좋아
최근 녹조로 몸살…대책 절실

일제강점기 조성된 수성못은
조성자 日人과 시인 이상화 간
미묘한 ‘갈등 스토리’로 유명
영상음악분수 국내 최대 자랑

스토리가 있고 그림 같은 수성못·성당못…“대구의 명소로 잘 보전해야”
두류공원 내 성당못에 하늘의 구름이 내려앉은 듯 안개가 자욱히 피어오른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영남일보DB>
스토리가 있고 그림 같은 수성못·성당못…“대구의 명소로 잘 보전해야”
1936년 1월 동아일보에 보도된 성당못에서 열린 제1회 조선빙상경기 장면. <영남일보DB>



◆성당못

성당못은 1760년경 대구판관 김노가 조성했다지만 그보다 약 200년 앞서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것으로 추정할 때 고려시대에도 존재했던 저수지다.

성당못은 ‘성댕이못’ ‘황색못’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당못에서는 1936년 1월 영남체육회 주최로 ‘제1회조선빙상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성당못 주변 야산은 황폐했다. 성당못은 84년 대대적인 호안공사를 거쳐 못의 70% 정도가 매립됐다.

매립된 곳은 현재 주차장과 롤러스케이트장, 문화예술회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거북섬과 학섬, 분수섬, 부용정, 삼선교 등으로 이루어진 성당못에는 비단잉어와 오리가 서식하고 있다. 여름철 삼선교에서 뿜어 나오는 분수를 맞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인근 정자나 나무그늘 아래서 장기를 두고 있는 노인들에게 성당못은 최고의 놀이터이자 휴식처다.

하지만 최근 녹조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대구시는 향후 실개천을 조성해 낙동강물을 끌어들여 못으로 유입할 계획이다.

스토리가 있고 그림 같은 수성못·성당못…“대구의 명소로 잘 보전해야”
사진가 최계복이 촬영한 40년대 수성못.


◆수성못

수성못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미쓰사키 린타로가 조성한 저수지다. 그는 아이치현 기후시의 시장을 역임하고, 개척농민으로 1915년경 대구에 정착했다. 그는 수성들이 잦은 홍수로 피해를 입자 조선총독부의 예산과 사비 1만2천엔(현재 약 10억엔)을 들여 둘레 2㎞, 면적 6만6천평, 저장수량 70만t의 저수지를 10년 만인 25년에 완공했다.

그는 39년 임종 때까지 수성지의 관리인을 하다 “수성못이 보이는 데 조선식으로 무덤을 만들어 달라”는 유언을 했다. 그의 무덤은 현재 수성유원지 체육공원 바로 옆에 있다.

하지만 수성못이 완공된 이듬해 개벽 6월호에 대구가 낳은 민족시인 이상화는 수성들을 보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다. 상화의 시비는 2005년 미쓰사키의 무덤이 있는 반대편 수성못 둑 위에 설치됐다. 상화는 시를 쓰면서 저수지를 축조한 의도가 ‘진정 조선인을 위해서일까’라는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대구시는 83년 수성유원지를 조성하면서 수성못 일대를 공원화했다. 2007년에는 전국최대의 영상음악분수를 못 가운데 설치하고, 지난해 대대적인 준설공사를 하면서 못 주변을 정비했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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