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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119] 베스파(Vespa)

2014-05-10
[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119] 베스파(Vespa)

이탈리아의 살아있는 예술의 상징이자, 가장 혁신적인 교통수단의 하나인 ‘베스파(Vespa)’. 유럽의 거리에서는 자유분방한 옷차림을 한 젊은이들이 귀여운 헬멧을 쓰고 베스파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쿠터 브랜드인 베스파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많은 이륜차 판매량을 기록하는 모기업 ‘피아지오’의 가장 핵심적인 브랜드다. 오늘날 베스파의 스쿠터는 효율적인 교통수단의 개념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사랑받고 있다.

베스파는 1884년 20세의 이탈리아인 리날도 피아지오가 제노바에 모회사인 ‘피아지오(Piaggio&Co.)’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설립 초기에는 주로 호화 선박 장비를 제작했으나, 19세기 말부터는 버스·트럭·기차·항공기 엔진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1921년 폰테데라에 있는 공장을 인수하며 프로펠러·엔진·항공기 완제품 등의 생산 센터로 성장하게 된다.

이후 리날도의 아들인 엔리코 피아지오가 회사 경영을 물려받게 됐고,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황폐해진 이탈리아의 도로 상황과 열악한 경제 상태에 적합한, 경제적이면서도 튼튼하고 간편한 개인용 운송 수단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임무를 최초의 현대식 헬리콥터를 디자인한 천재 엔지니어 코라디노 다스카니오에게 맡겼고, 그는 풍부한 항공 기술을 응용해 46년 차체와 차대를 일체화한 모노코크(monocoque) 구조의 모터 이륜차를 개발했다.

이 신제품은 기존의 모터사이클보다 편안하고 사용법이 간단하며 소음이 적은 장점을 지녔다. 엔리코 피아지오는 모델명 MP6인 이 제품의 외형이 말벌을 닮았다고 해, 이탈리아어로 말벌이란 뜻을 가진 ‘베스파’를 브랜드명으로 선택했다. 같은 해 최초의 대량생산 모델인 ‘베스파 98’이 출시됐고, 당시 모터사이클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49년까지 3만5천대가 판매된 베스파는 매년 엄청난 성장을 보였고, 80년에는 1천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게 된다.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베스파는 90년대초 창립 이후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일본을 필두로 기능과 스타일을 겸비한 이륜차 브랜드들의 맹추격이 시작됐고, 그와 함께 미래주의적 디자인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며 ‘클래시컬 아이콘’이었던 베스파에 가장 큰 위협이 됐던 셈이다. 그러나 90년대 말에 만개한 레트로와 빈티지 트렌드는 식어가던 베스파의 인기에 불을 지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트렌드라는 외부환경의 변화가 고전하던 베스파에 천재일우의 기회를 다시 안겨준 것이다. 전 세계를 휩쓴 레트로 트렌드는 이전의 트렌드보다 더욱 강력하게 전세계에 파급됐고, 이 과정에서 대표적인 클래시컬 아이템인 베스파가 재해석되며 재부각되는 기회를 맞게 된다.

베스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어려운 경제상황의 대안으로 탄생한 제품이지만 이탈리아 전국으로 보급되면서 하나의 국가적 상징이 됐고, 다양한 문화콘텐츠에 용해되면서 대중과 끊임없이 호흡하며 전설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베스파는 코카콜라·벤츠·소니 브랜드 등에 못지않은 강력한 내셔널리티가 묻어 있으며, 지난 60여년간 수많은 미디어에서 이탈리아 이미지의 전형으로 전파됐다. 50~60년대에 미국과 일본의 관광객들이 이탈리아에 처음 당도해 도로와 광장을 가득 메운 귀여운 스쿠터를 보고 받았던 시각적 충격은 이탈리아에 대한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베스파는 단순한 스쿠터가 아닌 이탈리아의 풍경 속에 응당 있어야 할 이미지로 인식됐고, 이탈리아 문화를 설명하는 한 축으로 성장했다. <프리밸런스·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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