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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안동 남후면 암산유원지

2014-06-20

바위벽과 물과 수목 ‘고요한 3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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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산유원지에서 본 미천과 암산굴. 굴 위쪽 절벽에 천연기념물인 구리측백나무가 자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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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산유원지. 미천은 암산 아래를 곡류하고 암산의 바위절벽엔 구리측백나무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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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산굴. 일제가 안동∼대구 간 국도를 내면서 뚫은 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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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산 유원지로 가는 길. 한쪽엔 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한쪽엔 미천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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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산 유원지 뒤쪽 언덕위의 고산서원. 대산 이상정을 기려 세운 서원이다.


고요하고 아늑하다. 수목의 그림자 넉넉해, 낮 빛이 초록이다. 유원지 식당의 평상에 서너 사람, 말소리도 조근조근하다. 오리배 탄 처녀는 물 한가운데서 한가롭다. 마주선 바위산은 청신한 숨을 쉬고, 물길과 나란한 옛길엔 바람만 달린다. 푸르른 플라타너스는 아무도 모르게 흔들리지만, 물은 알지, 저도 따라 흔들리어서. 흔들림마저 고요하다. 바위벽과 물과 수목으로 둘러싸인 암산유원지는.

◆바위벽과 물과 수목으로 둘러싸인 유원지

유원지라는 단어엔 근대의 느낌이 있다. 장발의 청년과 나팔바지 처녀의 데이트 같은. 이제 조금 먹고 살만해졌다는 한풀이 같은. 상점의 확성기에선 뽕짝이 흘러야 할 것 같고 물가의 그늘 아래엔 통기타 하나쯤 등장해 줘야 할 것 같다. 콧등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팔뚝은 달달 떨리면서도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노를 젓는 중년의 신사도 보일 것 같다. 옛날엔 그랬었다 한다. 놀이 공원이 많지 않던 시절, 암산유원지는 안동 사람들에게 최고의 공원 중 하나였다고 한다.

물길은 미천(眉川)이다. 천이 굽이치는 모양이 눈썹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의성에서 시작된 미천은 안동 남후면을 통과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남후면의 광음리에서 미천은 바위산인 암산을 만나 날쌔게 굽으며 절경을 만드는데, 그곳에 암산 유원지가 있다. 지금도 여름 휴양지로 이름나 있지만 보다 많이 고요해져 물가에 나란히 서 있는 오리배 만이 유원지 분위기를 풍긴다.

오리배 선착장에 서면 우뚝 직립한 암산을 마주본다. 거의 수직으로 솟은 절벽은 만장암(晩將巖)이다. 절벽이 툭 떨어져 내린 오른쪽 아래에 뻥 뚫린 굴이 보인다. 일제 때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뚫은 굴이라 한다. 그 굴을 통과해 옛날 대구와 안동을 잇던 국도가 지나간다. 5번 국도가 확장되어 우회하기 전, 암산굴은 안동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암산굴이 뚫린 벼랑은 도로의 펜스를 넘어 미천 속으로 잠기면서 그 앞에 아주 깊은 소(沼)를 만든다. 천은 여기서 잠시 호수가 되어 광영담(光影潭) 또는 광영호라 불린다. 그 물 밑의 암반은 수성암 또는 청석이라하여 옛부터 벼루를 만드는 원석으로 이름 높았다한다. 오랜 시간 물속에 잠겨 육중한 바위산이 누르는 압력을 온몸으로 받아낸 암석은 치밀하고 단단하며 먹을 갈아 종일 두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최고의 벼룻돌이었다 한다.

광영담은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된다. 안동에서 가장 먼저 얼고, 전국 규모의 빙상경기가 열린 적이 있을 만큼 빙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여기서 배기태 선수가 발목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다. 그래서 빙질이 지나치게 좋은 것이 흠이라는 명성도 있다.

만장암 절벽에는 정오가 지나야 햇빛이 든다. 볕이 들면, 유원지의 모든 것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미천에는 윤슬이 돋고, 수목의 푸른 이파리들은 반짝인다. 절벽을 뒤덮은 작은 나무들이 새끼 새처럼 목을 뻗는다. 암산 유원지는 부드럽고 고요한 재잘거림으로 가득 찬다.

◆구리측백나무 숲과 고산서원

만장암 절벽의 작은 나무들은 구리측백나무다. 약 300 그루의 구리측백나무가 바늘이끼, 부처손, 은빛 고사리들과 함께 자생하고 있다. 수령은 100년에서 200년 정도로 추정되지만 그 크기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작다. 거의 직립한 절벽에 매달려 정오가 지나야 찾아드는 햇빛을 받으며 살아야 했기에 그런 듯하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그마한 몸으로 살아도, 나무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린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보기 드문 측백나무 자생지여서 천연기념물 제252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암산굴 앞에 구리측백나무 숲에 대한 안내판이 있지만 그곳에서 올려다보는 것보다 암산유원지에서 바라보는 것이 전체를 보기에 훨씬 좋다.

암산 유원지 뒤쪽 언덕 위에는 멋진 소나무 숲을 앞세운 서원 하나가 자리한다. 대산 이상정을 기려 세운 고산서원이다. 대산 선생은 퇴계의 학맥을 이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관직에서 물러난 후 오직 학문과 교육에만 힘썼다 한다. 고산서원에 서면 반짝이는 수목의 우듬지에 가려진 유원지의 조각들과 미천의 푸름과 암산의 고고한 절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서원 앞의 숨 막히게 멋진 소나무들은 생각지 못한 아름다움이다. 학문하는 이들을 위해 전경의 미혹을 차단하려는 뜻도 같지만, 분명 그들 스스로가 미혹의 대상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남안동 IC로 나간다. 5번 국도를 타고 안동시내 방향으로 가다 남후농공단지, 암산유원지 방향 우측으로 나간 후 암산유원지 쪽으로 우회전해 광음교 건너 천변길(암산길)을 계속 가면 암산굴이 나오고, 천변길에서 다리(유수모텔 앞)를 건너 우회전해 가면 암산유원지다. 입장료는 없다. 유원지의 배면 위쪽에 고산서원이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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