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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이재선 가족의 런던 생활연극기] 제14막 -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가다

2014-08-08

8월의 에든버러, 누구나 관객이 되고 배우가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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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홍보를 나온 배우들과 포즈를 잡았다. 에든버러 프린지페스티벌은 이렇게 배우와 관객이 거리에서, 공연장에서 함께 즐기는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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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비공식으로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에 참가하는 팀의 수는 수천이 넘는다. 따라서 각 팀의 거리홍보전은 치열한 전쟁이다. 2008년 당시 대구시립극단이 올린 작품 ‘공씨헤어살롱’을 홍보하는 임무는 막내 단원들이 맡았다. 노란 트레이닝복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필자다.

#1.매년 8월 세계 최대 공연예술축제인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이 열리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 축제가 한창인 중심가 ‘로열마일’ 거리에 재선 가족이 들어선다.


정호 : 우와, 사람 진짜 많다! 이거 뭐하는 거예요?

재선 :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이라고, 세계에서 가장 큰 공연예술축제다. 너거 놀라지 마래이. 이 아빠가 5년 전에 여기서 공연했다 아이가. 전에 사진 봤잖아. 왜, 커다란 탈 쓰고 엿장수 춤추고 있는.

정호 : 아, 그 사진! (고개를 갸웃하며) 마스크 썼던데 아버진지 어떻게 알아요?

재선 : 이정호, 니 지금 아빠를 의심하는 기가?

소영 : 근데, 왜 사람들이 다 바깥에서 공연을 해요?

정희 : 이 축제가 재밌는 게 바로 그거야. 일단 이런 데서 공연을 하려면 정식 초대가 필요한데, 초대를 못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정호 : 초대를 못 받으면 집에 가야지….

재선 : 이정호.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이래 패기가 없어 어따 쓰겠노? 카고 인마, 누가 물으면 일단 생각하는 척이라도 좀 하고 대답해라.

소영 : 아, 그냥 갈 순 없으니 이렇게 길에서 공연을 했구나.

정희 : 맞아. 공연을 하는 극장 주변이나 길거리를 무대로 삼은 거지. 여기서 우리 가족의 브레인, 이소영에게 질문 하나 더. ‘주변, 변두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 뭐였지?

소영 : 음… 프린지(fringe)?

재선 : 빙고. 그래서 축제이름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야. 여기선 누구나 공연하는 배우도, 동시에 관객도 될 수 있지. 그러니 오히려 공식 공연보다 더 인기가 많아.

정희 : 아까부터 저기 조각상처럼 분장한 사람 너무 웃긴다. 가만히 있다가 사람만 지나가면 전단을 돌리네.

재선 : 3주 동안 열리는 공연이 3천 개 정도 되다 보니까 공연 홍보가 진짜 중요하거든. 나도 예전에 이런 삼복더위에 탈 쓰고 ‘난리브루스’를 췄다 아이가.

정희 : 근데 우리 오늘 볼 공연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작품 맞아? 영어도 잘 못 알아듣는데….

재선 : (공연 브로슈어를 흔들며) 걱정 마라. ‘피지컬 시어터’, 내 특기인 신체극 아니가. 이런 데선 만국공통어, 보디랭귀지가 최고거든.

소영 : 아빠가 공연할 때 사람들이 많이 왔었어?

재선 : 당연하지. 아빠는 최소 500명 이상 아니면 무대에 오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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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공식 프린지 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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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거리에서 포즈를 잡은 가족.

각종 공연포스터가 잔뜩 붙은 홍보포스터 기둥 앞을 지나는 재선 가족. 그때 어깨에 커다란 포스터 뭉치를 짊어진 한 남자가 기둥에 붙어있던 다른 공연 포스터 위에 자신의 공연 포스터를 덧붙이고 재빨리 사라진다.


소영 : 어? 남의 포스터 위에 자기 포스터를 붙이고 가버리네.

재선 : 카… 이거 옛날 생각나네. 남의 포스터 위에 몰래 우리 꺼 슥 바를 때 그 스릴이 또 예술이지. 전문용어로 ‘덧빵’. 나도 마이 했다. 암튼 순식간에 현장 뜨는 걸 보이 점마도 ‘꾼’이네, 꾼.

정호 : 그거 나쁜 짓 맞죠? 아버지도 나쁜 짓 한 거죠?

재선 : 이정호! (잠시 숨을 고른 후) 과자 사줄까?

정호 : 오예! 음료수도 사 주세요.

재선 : 어디 보자, 여기 근처에 슈퍼마켓이랑 우리 숙소가 있었는데. (오래된 건물을 가리키며) 아, 저기다. 이야… 그대로네.


#2.암전 후 무대는 2008년 프린지 축제에 참여한 대구시립극단 단원들의 숙소. 선배단원들은 방에서 쉬고 있고, 부엌에서 재선과 재선의 후배 성배가 생닭을 손질하고 있다.


재선 : 아이고, 영국 닭은 털이 와 이래 질기노? 안 뽑힌다.

성배 : 우리나라에는 생닭이 손질돼서 나오는데 이 동네는 너무한다. (얼굴 돌리고 털 뽑으며) 그냥 빵 먹으면 될 낀데, 까다롭기는.

석호 : (멀리서 소리만) 야들아! 닭죽 아직 멀었나? 말복엔 삼계탕이제?

성배 : 아 예, 선배님! 당연히 말복엔 삼계탕이지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재선 : (작은 소리로) 그냥 빵 먹으면 된다메? 와 선배님들께 말 몬하노? 남자가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석호 : (멀리서 소리만) 재선아! 삼계탕 힘들면 묵지 마까? 시간도 없는데.

재선 : 아, 아입니더. 제가 나가서 수박도 한 덩어리 사오까예?

석호 : (멀리서 소리만) 역시 재선이는 뭘 좀 아네. 얼른 가가 사 온나.

성배 : (작은 소리로) 남자가 할 말은 해야된다꼬요? 뭐, 수박요? 참….

재선 : (작은 소리로) 성배야, 수박이 영어로 뭐꼬?


얼마 뒤, 닭죽을 재선이 1인분씩 그릇에 담고 성배는 수박을 잘라 접시에 담는다.


재선 : 성배야, 김치 꺼내 담아라.

성배 : 형님, 김치는 안 갖고 왔는데요.

재선 : 뭔 소리 하노? 공항에서 니 김치 박스 들고 있었잖아.

성배 : 아, 그거 우리 수하물 무게 초과돼서 공항에서 제가 뺐는데요.

재선 : (기가 막혀 언성을 높이며) 김치를 빼면 우야노? 딴 걸 빼야지! 그라마 니 여행가방에 저 큰 박스는 뭐꼬?

성배 : (우물쭈물하며) 쌀이랑 샴푸랑 린스랑 샤워젤….

재선 : (버럭 하며) 이기 장난하나? 샴푸는 여기서 사도 되잖아?

성배 : 저 비듬샴푸 따로 써야 돼요. 아토피도 좀 있어서 아무거나 막 쓰면 안된다니까요.


암전 후 무대는 대구시립극단이 공연을 했던 칼튼 호텔 지하무대 뒤편. 직전공연을 한 외국팀들이 나가고 단원들이 바쁘게 무대준비를 하고 있다.


석호 : (시계를 보며) 이제 20분밖에 안 남았다. 소품 다 챙겼나?

성배 : (투덜거리며) 와, 이게 말이 됩니까? 무슨 1시간20분 안에 준비, 공연, 철수까지 다 하라니.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도 아이고.

재선 : 이것도 감지덕지다. 공연장이 아니라 길거리에 무대를 만든 팀도 수천 팀이다. 우리 앞 팀도 정신없이 안 나가드나. (바닥에 떨어진 소품용 여자 속옷을 집어 들며) 흠. 이런 소품 쓰는 극이었음 한번 볼 걸 그랬네.

석호 : 그래도 며칠 있어보니까 에든버러 되게 괜찮지 않나? 공연만 아니었으면 배낭여행 와서 느긋하게 놀다 가고 싶다.

성배 : 저는 에든버러에 신혼여행 올 겁니다.

재선 : 여행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가족여행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난 우리 애들이랑 와이프랑 언젠가 다 같이 와서 공연 보고 여행 한번 했으면 좋겠네요.

석호 : 말로는 뭘 못해?

재선 : 절실히 원하면 말부터 해야 이뤄진답니다.

은환 : 야들아! 잡담 할 시간에 소품 체크라도 한 번 더 하지?

재선 : (눈치 보며) 예, 선배님. 근데 성배야, 밖에 사람은 좀 왔나?

성배 : (커튼 사이로 확인 후) 형님, 현재… 5명 있습니다.

재선 : 내가 보통은 관객 500명 이상 아니면 안 움직이는데. 그래 뭐, 사람 수가 중요하나?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우리에겐 소중하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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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튼 힐에서 보면 멀리 북해와 그 건너 하일랜드가 보인다.

#3.무대는 다시 현재. 칼튼 호텔 지하무대에는 프랑스 배우 줄리엔 코테레아우 (Julien Cottereau)의 코믹신체극이 펼쳐지고 있다. 배우가 관객을 불러내어 즉흥으로 이뤄지는 공연인데 극이 한창 진행될 때 마임으로 맨 앞줄의 정호에게 공을 패스하고, 재선까지 함께 무대로 불러올린다. 세 명이서, 없는 축구공으로 패스놀이를 한다. 잠시 후 재선 눈시울이 약간 붉어진 채 무대에서 내려오고 공연이 끝난다.


정희 : 이야, 우리 정호 출세했네. 아빠랑 함께 무대에도 다 서보고.

정호 : (흥분해서) 아저씨 연기 완전 잘해. 나 기다렸다가 사진 찍을 거야.

소영 : 몸짓과 소리만 쓰는데 무대가 사냥터가 됐다가, 공주가 잡힌 성도 됐다가…. 아, 너무 신기했어.

정희 : 근데 오빠. 왜 아까부터 아무 말도 없어?

재선 : 아 그냥…. 5년 전 무대에 다시 서니까 기분이 이상해서. 그리고 그때 말했거든. 언젠가 여기에 우리 가족 다 같이 와서 공연도 보고, 즐기면 좋겠다고….

소영 : (재선의 팔짱을 끼며) 우리 아빠, 감동했구나?

재선 : 진짜 이뤄질 줄 몰랐지. 그때도 가족 관객 참 많아서 부러웠는데…. 근데 이정호, 아빠도 저 아저씨만큼 신체극은 잘 하거든?

정호 : 증거가 없잖아요?

재선 : 이 녀석이 사람 말을 못 믿고 그래? 내가 집에 돌아가면 증거자료를 꼭 보여주마. 딴소리 못하게.

정호 : 진짜 아버지 공연에 500명이 모였어요?

재선 : 이정호!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배 안 고프나?

문화점조직 이공컬처 대표 20cultu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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