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에게는 피해자가 경험하는 고통에 대한 공감 없어
세월호 침몰사고에서도 공감하지 않는 모습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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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4년 9월. 추석연휴를 즐기던 온 나라는 충격에 빠졌다. 납치되었다 가까스로 도망친 한 여성이 자신이 겪은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살인공장을 차려놓고, 살인예행연습을 하고, 인육을 먹기까지 한 연쇄살인집단 지존파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것이다. 더 못 죽여서 한이 맺힌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던 이들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TV화면에 비춰진 그들의 광기어린 눈빛과 냉소는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들은 분명 사이코패스였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04년 7월에는 유영철 사건이 발생했다. 사상 최악의 연쇄살인사건이었다. 20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낸 이 사건에서 희생자의 규모와 범죄 수법의 잔혹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연말이 되기까지 100명을 살해하려 했다는 그의 말에서 인간의 광기가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인 연쇄살인범으로까지 일컬어지고 있는 유영철 역시 사이코패스였다.
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대가로 받게 될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물론 재범률도 높고, 특히 연쇄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은 일반 범죄자보다 더욱 높은 편이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가 개발한 사이코패스 진단법에 따르면 유영철은 최고점수가 40점인 이 진단법에서 34점을 기록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여겨진다.
사이코패스 범죄의 가장 큰 특징은 잔혹성과 흉포성에 있다. 사이코패스에게는 피해자가 경험하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 전혀 없다. 이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외면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에 대한 감각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뉘우침이 없고, 계속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사이코패스에게는 인간의 뇌에서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설명이 될 수 있다.
공감은 상대방의 처지를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불우한 이웃에 연민을 느낄 때, 타인의 고통에 같이 마음 아파할 때가 모두 공감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공감적 인간은 타인을 외면하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또한 공감적 인간은 타인과 함께 하며 그들의 희로애락에 기꺼이 동참한다. 사회 공동체는 공감 없이는 유지하기 어렵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공감을 사회윤리의 기본으로 여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공감의 결여가 연쇄살인범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주변의 일상에서도 사이코패스 특성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보드와 프리츠라는 심리학자는 영국 최고경영자의 성격특성을 분석한 결과, 임원승진 대상자 가운데 3.5%가 사이코패스로 드러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다른 심리학자 폴 바비악은 논문을 통해 미국의 기업가 25명 중 1명이 사이코패스라고 말했다. 높은 지능과 자기포장으로 사람을 기만하고 조종하는 이들은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 ‘양복 입은 뱀’으로 불린다. 이들은 잔혹한 연쇄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타인과 함께하거나 타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들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며 비공감적이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통해 국민은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히 보고, 듣고, 배웠다. 정부나 국회 모두 희생자와 가족들, 가슴 아파하는 국민들에게 전혀 공감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월호 상처도 잊힐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가슴에 깊게 새겨진 그들의 냉정함은 쉽게 잊힐 것 같지 않다. 그들의 차디 찬 가슴의 이면에 따스한 온기가 조금이나마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상실의 시대에 공감을 갈망한다.
조성호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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