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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비구계 받고 인도에서 3개월간 수행생활한 정치인 김현근씨

2015-02-27

“탐욕 내려놓지 않고선 밝고 맑은 사회 만들기 어려워…나 자신부터 성찰”

20150227
김현근 전 통합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이 인도로 수행을 다녀와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정치·사회운동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수행을 하고 싶어 인도로 갔다”고 했다.


1992년 3월, 서도초등학교에서 열린 14대 국회의원선거 대구서구갑 합동연설회장.

정호용, 문희갑, 백승홍, 김현근 등 4명의 후보가 차례대로 사자후를 토하며 군중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이 연설회장은 할리우드 서부영화 ‘OK목장의 결투’(1957)에 빗대 ‘TK목장의 결투’라는 신문 제목으로 대서특필됐다. 대구·경북을 상징하는 ‘TK’라는, 다소 부정적인 영문 이니셜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4명의 정치인 가운데 당시 김현근씨는 20대 후반의 민중당 후보였다. 그는 서울대 자연대 농촌 서클인 ‘황토회’ 회장을 하다 78년 서울 광화문 유신헌법 철폐시위사건에 연루돼 1년간 구속되면서 퇴학을 당했다. 80년 복학 후, 3년 뒤 졸업한 그는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이재오, 김문수 등과 진보정당에 가입해 활동을 하던 중 고향인 대구로 왔다. 그는 2년 전인 90년 대구 서구갑 보궐선거와 96년 총선에도 출마해 줄줄이 낙선했다. 김현근씨는 이후 정치권에서 물러나 교육 사업에 매진했다. 한편으로 봉사단체인 대구라이온스클럽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7년 열린우리당 창당을 계기로 다시 정치권에 발을 내디뎠으나 지난해 6·4 지방선거 이후 홀연히 대구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는 지난해 말 삭발하고 비구계를 받은 뒤 ‘보디라자(覺王·깨달음의 왕)’라는 법명으로 인도에서 3개월간 수행한 뒤 지난 10일 귀국했다. 김현근씨(54)가 머리를 깎고 인도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귀국 후 기자에게 120쪽짜리 ‘인도수행일기’를 보여주었다. 지난 16일 오후 대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아직 머리카락이 채 자라지 않아 조그만 ‘비니(beanie)’를 쓰고 있었다. 그는 수염을 깎지 않아 아내가 타박을 한다면서 머쓱해했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하루 14시간 용맹 정진
10m 15∼20분에 걷고
손발 꼼짝도 않고
한 시간씩 앉아 있기도


▲한 번쯤 홀로 멀리 떠나 1년 정도만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일에 지치고, 일상이 싱거워질 때 그런 생각은 더 간절하다. 왜 머리를 깎고 인도로 갔는가.

“지난해 지방선거를 끝내고 정치, 사회운동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수행을 하고 싶었다. 사회를 맑게 하는 데 왜 수행이 필요한 건지, 또 어떻게 수행을 해서 사회화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니르바나(열반)를 체험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정진 없이 깨달음만 얻으려 한다면 욕심일 거란 생각으로 수행의 목표치를 낮췄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그 사건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물질적인 것에 너무 매몰됐다. 제도와 시스템이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인간의 탐욕을 내려놓지 않고선 밝고 맑은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 나 자신부터 성찰하기로 결심하고 주변의 것들을 내려놓았다.”

20150227
인도에서 3개월간 수행을 할 당시의 김 전 위원장. 삭발을 하고 가사를 입은 채 갠지스강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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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위원장이 인터뷰를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도로 가기 전엔 무엇을 했나.

“지난해 8월, 김해에 있는 ‘사티 아라마(Sati Arama)’ 수행도량에 등록한 뒤 11월 중순까지 매주 월~토요일 오후까지 절간 생활을 했다.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 간 건 동안거(冬安居) 캠프의 연장이다. 11월14일~2월10일 약 3개월간 부다가야의 사티 아라마에서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스님과 함께 ‘사티수행’을 한 뒤 불교성지순례를 했다. 3월부터 8월까지 또 김해에서 수행을 한다.”

▲사티와 아라마는 무엇인가.

“사티는 팔리어(Pali·붓다가 생존할 당시 사용했던 고대 인도의 언어)인데 우리말로 ‘알아차림’이란 의미이고, 아라마는 수행도량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티수행은 ‘알아차림 수행’이다. 예컨대 우리는 사물을 보거나 들을 때 눈과 귀를 이용하지만, 사실은 인식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눈과 귀로 들으면서도 딴생각을 할 때가 많다. 탐진치(貪瞋癡), 즉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에 끌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음이다. 알아차림 수행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또 ‘사마티(Samadhi)’라는 ‘집중수행’을 하는데, 사마티는 삼매의 어원이다. 사티와 사마티의 반복수행을 통해 열반의 경지를 체험하는 것이다.”

▲수행은 어떤 방법으로 하나.

“좌선(坐禪)과 행선(行禪)이라고도 하는데 인도에선 좌념(坐念)과 행념(行念)이라고 한다. 좌념은 한 시간 동안 손과 발을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하는 수행이고, 행념은 개미보다 더 느리게, 아주 천천히 걷는 것이다. 10m 거리를 15~20분에 걷는다고 생각해보라. 앉아있을 때 알아차림과 집중의 대상은 ‘배의 움직임’이다.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배가 부풀어 오르다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분도 안 돼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신경이 쓰이고, 카톡방에 무엇을 쓸 것인지 하는 상념 등 온갖 망상이 다 떠오른다. 이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배가 불러오고 사라지고 하는 데 집중한다. 간단한 것 같은데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온몸이 비틀리고, 심지어 몸이 굳어지기까지 한다. 행념을 할 땐 대상이 움직이는 발바닥이다. 들고, 가고, 놓고 하는 발바닥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모기에 물려 자신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거나 바라나시로 관광을 갈 상념으로 다리가 휘청거리기도 한다. 모든 과정을 묵언으로 수행하는데, 30년 전 서대문구치소에서 경험했던 생각이 더러 나더라. 그땐 밖에서만 문을 열 수 있었는데, 여기선 안에서도 열 수 있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웃음)


20대 후반에 정치 시작
네 번이나 낙선했지만
회한 없어
진영 논리 벗어나
무언가를 도모하고 싶다

▲어떤 수행효과가 있나.

“살아가면서 화를 낼 때가 더러 있다. 화를 내게끔 한 외부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화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림’ 하면 분노를 삭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내가 왜 화를 내지’ 하고 알아차리면 곧 평정심을 되찾는다. 그 밖에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루 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오전 3시30분에 일어나 4시~5시30분까지 새벽정진을 한다. 보통 1시간 좌념, 30분 행념이다. 5시50분에 쌀, 콩, 녹두로 만든 죽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도 수행의 연속이라 마주 보고 먹지 않는다. 숟가락을 들어 밥을 떠서 입안에 넣어 씹는 것까지 하나의 동작으로 알아차림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죽 한 그릇 먹는 데 20분 걸린다. 아침공양 후 7시부터 ‘카야(Kaya)사티’라는 몸풀기를 50분 정도 한다. 이어 8시~9시30분 오전수행, 10시 점심공양 후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수행한다. 점심식사는 밥과 국, 그리고 김치 등 4~5가지 반찬이 나온다. 육류나 해산물은 먹기 힘들다. 특식으로 닭과 양고기를 먹는데 쇠고기는 못 먹었다. 저녁식사 후 오후 9시까지 또 수행이다. 월~토요일 정오까지 반복하는데 일요일 오후 6시에 다시 입소한다. 이렇게 하루 14시간 정도 공부와 수행을 한다. 다이어트가 저절로 된다.”

▲수행한 지역은 인도의 어느 곳인가. 한국과 환경이 달라 어려움은 없었나.

“인도 북부 비하르주 가야시(市)로부터 10여 ㎞ 떨어진 ‘보드가야’란 지역이다. 보드가야는 석가모니 붓다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곳인데, 보리수나무를 기념해 ‘마하보디템플’이란 사원을 세웠다. 우리말로는 대각사(大覺寺)다. 원래 보리수는 없고, 수령 150년 정도 되는 아주 큰 보리수나무가 있다. 둘레가 7~8m, 직경이 2m 넘는다. 이 지역엔 태국·스리랑카·미얀마·티베트 등 전 세계 불교국가의 사원 100여개가 밀집해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사찰도 5~6개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인도의 국교가 힌두교인데 힌두사원과 이슬람사원도 함께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힌두사원과 이슬람사원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번갈아가며 확성기로 독경과 노래를 크게 틀어놓아 대단히 시끄럽다. 또 밤에는 방송이벤트차량 소음에다 폭죽까지 더해 밤잠을 설치게 만든다. 겨울에 안개가 많은 데다 일교차가 크다. 또 모기가 많아서 매일 모기와의 전쟁을 벌였다. 부처님이 그 많은 모기를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모기살충제로 함부로 살생을 할 수도 없었던 것도 힘들었다.”

▲다른 에피소드는 없었나.

“스님만 수행하는 줄 알았는데 목사님과 신부님도 수행을 하러 왔더라. 태국공항에서 인도로 환승할 때 입출국심사를 했는데 머리를 삭발하고 가사를 입어서인지 프리패스하게 해 주더라. 비행기 탑승도 최우선인데, 한 보살이 일행인 스님들에게 우리 돈으로 만 원씩을 보시하더라. 또 인도에서 가사를 입었는데 팬티 착용을 금지시켜 노팬티로 생활하니 상당히 편하고 자유롭더라. 비구니의 복장은 모르겠다. (웃음)

▲인도와 인도불교는 어떻던가.

“인도는 물질적으로 가난하다. 가난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조차 망설여질 때도 있었다. 때론 그들이 먼저 나를 청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라고 할 수 있을까. 10년 전 법륜 스님과 인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은 별로 없는 듯했다. 거리에서 ‘걸인을 도와주지 말라’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했다. 빈부차가 극심해 부처님보다 마르크스가 필요한 동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체 게바라가 오기엔 너무 멀다는 생각도 해봤다. 인도의 불교는 황폐해졌다. 불교의 종주국임에도 인도에는 인도 스님이 별로 없더라.”

▲불교엔 어떤 계기로 심취하게 됐나.

“2002년 경북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하다 팔리어 경전으로 불교에 관한 수업을 하면서 사티를 알게 됐다.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수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50대 중반이면 정치를 하기에 무르익은 나이일 텐데, 정치에 대한 회한은 없나.

“큰 미련이 없다. 나이로 보면 그렇지만 경력으론 20대 후반에 정치를 시작해 네 번이나 출마하면서 옛 정치인이 됐다. (웃음) 정치건달이나 룸펜이 되기 싫어 사업을 시작했고, 사회봉사활동도 해봤다. 열매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씨를 뿌리고 거름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치는 진흙탕 속에서 뒹굴면서도 테크니컬해야 한다. 수행을 끝내고 인생 2막을 살 터인데 진영의 논리를 벗어나 큰 틀에서 무엇인가를 도모하고 싶다. 지금의 수행은 그 실천과제를 찾기 위함이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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