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6월27일 입소...그해 12월 노르웨이 입양
다음달 2일 한국 들어와 4일 대구 방문 예정

1969년 6월27일 대구 성화원 입소 당시의 인정혜씨. 인씨는 그해 12월 노르웨이로 입양됐다. <본인 제공>

대구 성화원 입소 당시 인정혜씨. 1969년 1월14일 생으로 추정된다. <본인 제공>

인정혜씨의 어릴 적 사진. <본인 제공>

1969년 서울 마포구가 발급한 인씨의 '고아증명원'. <본인 제공>

1969년 11월5일 서울시가 발급한 '보호시설에 있는 미성년자인 고아의 후견인 지정 증명원'. <본인 제공>

홀트에서 1969년 작성한 인씨의 건강기록부. 인씨의 혈액형은 A+, 눈동자의 색은 검은색, 모발은 흑색 직모다. <본인 제공>
1969년 6월27일, 대구 동구에 위치한 고아원 '성화원'에 한 아기가 입소했다. 이름은 '인정혜'. 눈동자가 유난히 까만 아이는 절대 혼자 있으려 하지 않았다. 잠 자는 시간을 빼고는 고아원 아이들과 어울렸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을까. 아이는 업히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늦은 밤 잠투정을 하다가도 보모 등에 업히면 다시 곤히 잠들었다. “엄마" “아빠"라는 말을 그 어린 나이에도 정확하게 했다. 그해 12월 아이는 결국 노르웨이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그곳에서 양부모가 지어 준 'Siri Lande'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살았다.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마친 후 덴마크의 금융기관에서 수석 부사장과 글로벌 책임자 자리까지 올랐다. 지금은 노르웨이로 돌아와 천연 미네랄 워터 브랜드를 런칭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늘 “나는 누구였을까"란 질문을 품고 살아왔다. 태어나서 고아원 입소 때까지 '공란'처럼 비워진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싶었다.
노르웨이에 사는 재외동포 인정혜(여·56)씨가 56년 전 헤어진 친부모를 찾는다는 사연을 영남일보에 보내 왔다. 인씨가 보내 온 '인정혜의 이야기'라는 글에는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과 친부모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해외입양기관 '홀트'에서 1969년 작성한 건강기록부, 같은 해 11월5일 서울시가 발급한 '보호시설에 있는 미성년자인 고아의 후견인 지정 증명원', 서울 마포구가 발급한 '고아증명원' 등의 서류를 보관하고 있다. 서류에는 1969년 1월14일생이라고 적혀 있지만 명확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친부모는 누구인지, 왜 보호시설에 맡겨졌는지 알지 못한다. 인정혜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친부모가 지어준 이름인지, 고아원에서 받은 이름인지 알 수 없다.
영남일보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인씨가 맡겨진 성화원은 1997년 문을 닫았다. 당시 시설 관계자들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홀트 측에 문의했지만 “현재 없는 시설이라 확인이 어렵다"는 답변뿐이었다. 인씨의 친부모 찾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4월2일 한국에 입국해 19일까지 머무를 예정이다. 4일엔 대구경찰청을 방문해 DNA를 등록할 예정이다. 인씨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친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 분명 당시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립고 보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12면에 인정혜씨의 편지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