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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23] 팔공산 왕건도주로를 라이딩하다

2016-01-08

전라 사람 신숭겸을 대표적 대구 인물로 받아들인 조상의 포용성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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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광동 마을회관 근처에서 향산 쪽으로 돌아보니 해지기 전 산노을이 패자 부활 승리의 V자 사인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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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불로시장의 새해 첫 5일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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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지묘동으로 가는 길, 동화천로 태성꽃농원까지 안전하게 인도해주는 자동차 왕래가 드문 동변로 24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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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 사당인 왕산 아래 표충재의 신숭겸 장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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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신숭겸 장군 유허비각 문을 여니 이태극·삼태극으로 그려진 태극문양이 뜨겁게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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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변로 24길 막다른 로컬푸드 농원 앞 동화천 수중보를 건너야 지묘동으로 가는 동화천로로 합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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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의 시량리 노거수 위에 걸린 산 너머 고개 너머 노을 풍경.

장구한 대구의 역사에
태생 따지는 지역 감정은
지나가는 것에
불과할 것이라는
믿음이 쏟는다

왕건이 도주하는 길에
어린아이만 남아 있었다는
불로동의 불로시장 북새통에서
더 낮은 정치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배신의 정치인’과 조우했다

한국 정치에
마음씨 좋고 인품 훌륭한
왕건 리더십이 절실한
시기라는 걸 가슴 깊이 느낀다

우리가 새해 아침에 일출을 보러 산으로 강으로 가는 이유는 작년보다 나은 ‘새날 새삶’을 맞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목표를 이뤘거나 이루지 못했거나 우리는 새 희망을 다짐하곤 한다. 대구에서 밑도 끝도 희망이 샘솟는 곳은 어디일까? 2016년 새해맞이 포토바이킹은 그곳으로 달려간다.

왕건의 땅 대구! 그러나 왕건은 38선 넘어 개성 땅 고려의 왕으로 멀리 있다. 팔공산이 금호강을 따라 앞산으로 이어져 다사 왕선재까지 대구는 왕건 지명설화로 에둘러져 있다. 인근 군위와 의성의 군명은 왕건이 후삼국 통일전쟁, 곧 고려 건국 과정에 직접 하사한 이름이다. 대구와 경북을 신라에 국한시키는 작금의 주류적 역사 해석은 대구·경북의 역사적 앞날에 도움은커녕 발목을 잡는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신라사에 결박된 대구는 3대 문화권사업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이런 점에서 대구는 한시 바삐 신라사로부터 독립하여 고려사의 깃발을 치켜들어야 제 땅의 가치와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다. 왕건의 고려 창건사에 대구의 정체성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왕건 도주로 혹은 탈출로 속에 깃든 달구벌 대구라는 땅의 역사 속 정체성은 무엇인가? (연경, 무태, 살내, 나팔고개, 지묘동, 왕산, 파군재, 독좌암, 불로동, 시량리, 초례봉, 안심 등 ‘왕건의 팔공산 탈출로와 지명의 유래’와 관련해선 위클리포유 2013년 4월26일자 박진관 기자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왕건 탈출로를 왕건 지명설화로 스토리텔링해낸 대구를 라이딩해 보자.

☞ 세부 라이딩 코스

산격대교~동화교~동변로 23, 24길~무태 낚시터~살내(동화천)~동화천로~연경~지묘동 신숭겸장군유적지~파군재~봉무정 독좌암~불로시장~도동 측백수림~평광동 버스종점~모영재~신숭겸장군영각유허비 라이딩 거리 30㎞

평소 신천자전거길을 따라 금호강을 가로질러 연암로와 조야로 2길을 잇는 무태교를 이용하여 동서변동, 연경, 국우터널을 지나 칠곡으로 들어갈 때가 많았는데 길이 좁고 역방향이라 산격대교를 선택했다. 무태(無怠)는 왕건이 견훤의 군사가 매복해 있을지도 모르니 군사들에게 ‘경계를 태만히 하지 말라’는 뜻으로 생긴 지명이라는데 곧이곧대로 믿기진 않는다. 왕건 지명 스토리텔링의 산물로 대구인들의 뛰어난 팩션(Faction) 능력으로 이해된다. 상록뇌성마비복지회관을 등진 채 산격대교 네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다 파란불이 켜져 산격대교로 들어서면 유통단지 쪽에서 진입하는 과속 차량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산격대교 한중간 안전지대에서 차량 흐름이 끊길 때까지 기다리면서 금호강과 팔공산이 한 몸이 된 순간을 즐겼다. 산격대교는 비교적 갓길에 여유가 있어 고속주행 차량들의 위협을 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산격대교에서 호국로를 따라 동화교 쪽으로 좌회전해서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네거리에서 동서변그린빌 814동 쪽으로 좌회전하면 오가는 차량의 위협이 별로 없는 동변로 23길이다. 가로변에 늘어서 있는 15그루의 왕버들 겨울 나목들은 몰골이 흉하거나 고운 자태를 뽐낸다. 노거수 군락이 끝나는 동변교 동편 길을 횡단하면 동변로 24길이 시작된다. 커피향 날리는 이 길 가까운 곳에 동네카페의 희망 블라썸이 있다. 모자카페의 파이팅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잠시 들른 이날 이후에도 커피 애호가들은 인테리어의 일부가 되어 공간을 빛내고 있었다.

동변로 24길은 신숭겸 장군 유적지 표충사가 있는 지묘동으로 가는 길 가운데 동화천로 태성꽃농원까지 안전하게 인도해주는 자동차 내왕이 드문 소방도로였다. 길이 끝나는 곳에 엽채류를 재배하는 복합영농 농원이 있는데 막다른 길이었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 전 부리나케 되돌아 동화천 수중보를 건너기 시작했다. 중간 지점에서 자전거 바퀴를 물에 담그고 올 한 해도 안전라이딩을 기원하는 세족례를 올렸다. 물이 구슬 같이 맑아 옥계(玉溪)라 불렸다는 동화천은 왕건 지명설화에 ‘화살이 내(川)를 이뤘다’는 살내다. 살내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동화천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부근으로 추정하는 것 같다.

수중보를 건너 지묘동으로 가는 동화천로로 합류하니 태성꽃농원이다. 연경 화훼단지가 있는 이 길에서 2㎞쯤 가면 퇴계 선생이 “화암의 절경 그려서도 못 이루리”라고 노래한 기묘한 형상의 화암(畵巖)을 만난다. 연경서원을 세운 이숙량의 연경서원 기문에는 기괴한 형상이 저절로 아름다운 그림을 이루어 화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연경은 왕건이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고 해서 생긴 지명으로 전해 온다. 연경서원 짓고 서로 모여 육경을 외우는 모습을 기뻐한 퇴계 선생과 더 가까울 것도 같은데 대학자보다 왕의 이름이 더 커보여서인지 왕건과 관계된다.

화암(대원사)에서 신숭겸 장군 유적지까지는 2㎞. 갓길로 바짝 붙어서 안전성을 최대한 확보하고, 뒤따라 오는 자동차의 행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견훤에게 쫓기는 왕건의 군사처럼 속도를 올렸다. 평지길이지만 갓길이 좁아 육체적으론 힘들지 않았으나 정신적으론 힘들었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에 가면 전라도 곡성에서 태어나 팔공산에서 살신성인의 투혼으로 견훤의 군사와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신숭겸 장군은 때를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을 한다. 전라도 사람이 대표적 대구 가문이 되었으니 대구 조상들의 포용성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장구한 대구의 역사에 태생 따지는 지역감정은 지나가는 것에 불과한 것일 거라는 믿음이 불끈 쏟는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는 영원한 충효학습장으로 남겠지만, 영호남 달빛동맹의 성지로 활용하면 공간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다.

왕건길의 백미인 신숭겸 장군 유적지는 파군재로 이어진다. 이시아폴리스에서 팔공산로를 따라 오면 신숭겸 장군 동상이 서 있는 곳이 왕건의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는 파군재 삼거리다. 신숭겸 장군을 ‘이순신장군 짝퉁’ 조형물로 기려서 안타까웠다. 5분 거리 독좌암이 있는 봉무토성 아래 봉무정으로 다운힐했다. 왕건이 도주하다가 혼자 앉아 쉬었다는 ‘독좌암(獨座巖)’을 등장시키며 디테일한 대구인의 팩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조상들이 물려준 스토리텔링의 완성도를 더 높이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면 봉무정으로 오르는 길을 정비하듯 독좌암의 위치를 시량리로 옮기는 것도 지묘한 선택 아닐까?

다음은 불로동 불로시장. 불로는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패하여 도주하다 이 지역에 이르자 어른들은 피란을 가고 어린아이들만 남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침 5일장이 서는 날이라 자전거를 끌고 불로시장을 찾았다. 불로시장을 지나갈 때면 생각나는 손칼국숫집이 있는데, 왕건칼국수라 부르며 찾는다. 왕건칼국수, 이 또한 먹음직스러운 왕건 스토리텔링일 게다. 그 북새통에서 더 낮은 정치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배신의 정치인!’을 조우했다. 공산전투에서 대패하고도 도주하면서 군사를 불린 왕건의 리더십은 무엇이었을까? 민심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있고, 민심을 얻는 자가 킹이다. 왕건 도주로 구사일생 길을 따라가며 지금이야말로 한국 정치에 마음씨 좋고 인품 훌륭한 왕건 리더십이 절실한 시기라는 걸 가슴 깊이 느꼈다.

불로시장에서 평광동으로 가는 길은 대구 올레 4코스 왕건길이다. 그런데 왕건길에 왕건이 없고 지명설화만 남아 있다. 북벽향림 도동 측백수림을 지나 평광동 마을까지는 패자부활 의지를 다지는 길이라 생각하고 달렸다. 마을 어귀를 지나 버스종점으로 향하니 팔공1번이 지나갔다. 모영재가 있는 시량리로 가려면 평광동 버스 종점에서 좌회전해서 도평로 116길을 따라 3.4㎞ 가면 도착한다. 안내 간판은 잘 찾아봐야 보인다.

모영재, 신숭겸 장군 영각 유허비가 있는 시량리에서도 주는 신숭겸 장군이고 객은 왕건 대왕이다. 왕건길에는 추상과 구체의 반전이 일어나 있어 재밌다. 모영재 왼쪽 위 오솔길을 지나 닫혀 있는 자물쇠를 제끼고 신숭겸 장군 영각 유허비 앞에 섰다. 왕건 탈출로의 꼭짓점 어딘가에 왕건 대왕의 덕업을 기리는 기념비 하나 세우면 좋겠다는 해질녘 새해 다짐을 하며 왕건 패자부활의 길 라이딩을 마쳤다. 역사 속 대구는 이기는 쪽보다는 지는 쪽을 살리는 지기가 강한 땅인 모양이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왕건길 라이딩을 권한다. 그 길에서 신숭겸을 가진 왕건을 배우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량리 노거수 아래 비치되어 있는 공중의자에 앉았다. 여기가 왕건을 묵상하는 독좌암으로 안성맞춤이라는…. 왕건 도주로는 1차전에서 실패하고 쫓기는 과정이 곧 왕조를 창건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패자부활의 길이다. 지는 해도 노거수 가지 사이로 희망처럼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귀로의 시량리는 살을 엔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추웠다. 평광사과 맛이 여기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왕건처럼 집으로 도망갔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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