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 부끄러운 현실에 공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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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부산행’은 7일 오후 6시19분 현재 누적 관객수 1천만661명을 돌파해 ‘검사외전’을 제치고 2016년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베테랑’ 이후 약 1년 만의 천만 영화 탄생이자, 한국영화로는 14번째다. ‘부산행’은 지난 7월20일 개봉 후 초고속 흥행으로 일찌감치 여름영화 시장의 승자로 결정됐다. 개봉 7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물론 ‘명량’이 2년 전 세운 역대 최고 오프닝, 역대 하루 최다 관객수 동원 등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의 선점을 넘어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무엇보다 한국에선 이색적이라 할 만한 좀비 소재의 영화라는 점에서 이번 천만 관객 돌파는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무엇이 이토록 관객을 열광케 한 것일까.
사회의 축소판 같은 재난상황
신선한 소재에 실감나는 CG
오락영화 기본에 충실하면서
사회적 메시지로 공감 이끌어
올해 최고 흥행작 반열에 올라
#좀비는 흥행할 수 없는 소재?
‘부산행’은 좀비를 소재로 국내에서 처음 제작된 제작비 100억원 규모의 상업영화다. 당연히 낯선 소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좀비 소재는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간간이 만들어졌지만 한국에선 성패를 가늠하기 쉽지 않은 전대미문의 시도라는 게 그 이유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을 연출하던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라는 점도 불안감을 키웠다. 하지만 그 낯설은 것이 곧 신선함으로 작용하며 새로운 볼거리를 원하는 관객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은 “과거 한국의 오락영화들은 재미를 추구하는 데 방점을 뒀다면, 요즘은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흥행에 성공한다”며 “‘부산행’은 최근 천만 관객 동원 한국영화들의 공통적인 흥행 코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서울역’의 프리퀄이다. ‘서울역’은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는 과정을 그렸다. 투자배급사는 ‘서울역’의 완성도에 확신을 갖고 연상호 감독에게 이를 확장한 실사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부산행’이다. 연상호 감독은 “‘서울역’은 어둡고 직설적인 이야기지만 거기에 개인적인 감수성을 가미한다면 실사 영화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다만 ‘서울역’과 ‘부산행’의 연결고리는 느슨하고, 요소 요소로 이어지는 것도 거의 없고, 두 편이 완전히 일치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좀비였을까.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색깔이 아닌 다른 색깔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연상호 감독은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 특수효과를 좋아한다. 그런 측면에서 좀비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소재로서 좀비는 이야기를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더구나 좀비물은 늘 재난상황과 연결돼 인간의 이기심과 군중심리에 대한 통찰을 내포한다.
‘부산행’은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산행 KTX에 올라 사투를 벌이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렸다. 감염의 원인과 시작도 알 수 없지만 영화는 이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곧바로 재난 상황에 돌입하며 극의 종착역을 향해 속도감 있게 내달린다. 그럼에도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은 건 이 재난상황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랑과 이타심, 현실적인 악인의 모습까지 보여주며 이야기의 결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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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이 초고속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7일 올해 첫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
#오락성을 뛰어넘는 사회적 메시지
‘부산행’은 15세 이상 관람 등급이다. 10대부터 성인관객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상업영화라는 얘기다. 재미라는 측면에서 ‘부산행’은 여름용 오락영화로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다.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긴박감과 속도감은 물론이고, 연출력과 압도적인 미장센, 예측불허의 이야기는 강하게 영화를 추동한다. 특히 생존을 위한 군중의 이기심, 사회적 갈등, 재난 사태에 대응하는 국가와 사람들의 태도 등 ‘부산행’이 보여주는 다양한 메시지는 영화를 단순한 팝콘 무비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 덕분에 40~50대 중장년층의 공감대까지 이끌어내며 흥행열풍에 일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연상호 감독은 누구보다 인간의 악(惡)에 대해 천착해왔다. 짧은 시간, 갑자기 닥친 상황에 맞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영화가 현실성을 가진다고 생각한 그는 “루머와 확실치 않은 정보가 난립하는 세상에서 느껴지는 고립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대미문의 비주얼
‘부산행’은 열차 안으로 공간을 한정짓지 않는다. 중간 역들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열차 밖의 좀비들과도 맞서 싸우고 그들로부터 도망치는 모습 등으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공간 확장이라는 점에서 이는 유용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강렬한 비주얼과 볼거리는 인상적이다. 역사와 철로를 오가며 펼치는 대규모 좀비 액션과 실감나는 분장 등은 나무랄 데 없고, CG 역시 할리우드 영화와 견줘도 손색이 없다.
‘부산행’만의 개성을 위해 모두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덕분이다. 부드러움 속 강렬한 콘트라스트로 완벽한 디자인을 선보였던 이목원 미술감독은 리얼리티에 중점을 둔 미술을 선보이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300㎞로 달리는 열차의 움직임, 재난 속 감염자의 모습 등 시선을 압도하는 강력한 비주얼은 자랑할 만하다. 특히 국내 최초로 LED 후면 영사 기술을 도입해 속도감과 현장감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냈다. 박재인 안무가는 감염자 각각의 캐릭터를 연령대별, 성별, 공간별로 디자인해 좀비들의 관절이 꺾이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을 섬세하게 완성했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은 “시원한 천만 한방이 반가운 무더운 여름이다.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임을 알게 해준, 좀비 공포영화를 가장한 휴머니즘이 돋보이는 수작”이라며 “전연령대를 커버하는 신파지만 결코 지나치지 않은 신파가 관객들을 조용히 감동시켰고 스크린 앞으로 불러오기에 충분했다”고 말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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