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3대 음악가’ 꼽히는 한국인 정율성
1948년 2월8일 김일성이 준 포상장엔
펼쳐진 태극기 14개와 무궁화 그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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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음악가 정율성이 1948년 2월8일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포상장. 태극기와 무궁화가 눈에 띈다. |
하얼빈시의 가장 번화가인 중앙대가 쑹화강(松花江)변 인근에 ‘인민음악가 정율성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입구로 들어가 나올 때까지 미국민요 ‘매기의 추억’이 계속해 들린다. 노래의 주인공은 바로 정율성(1914~76)이다.
정율성은 한국인이지만 중국의 3대 음악가로 손꼽힌다. 그는 작곡가 겸 성악가인데 육성으로 남아있는 노래가 ‘매기의 추억’ 하나뿐이란다. 광주에서 태어난 정율성은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에서 의열단의 조선혁명간부학교(2기)를 졸업했다. 38년 루쉰예술학원 음악학부를 다니다 이듬해 중국 공산당에 입당, 음악을 가르치면서 광복 전까지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했다. 광복 후 황해도도당위원회 선전부장으로 임명되면서 음악전문학교를 설립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중국으로 갔다 그해 12월 중국인민지원군 소속으로 다시 북한으로 와 전선위문활동을 했다. 51년 4월 다시 중국으로 간 그는 76년 사망할 때까지 중국에서 수많은 곡을 남겼다. 문화혁명 때 고초를 받았으나 다시 복권돼 그가 작곡한 중국 ‘팔로군행진곡’이 현 ‘중국인민해방군가’가 되면서 중국인의 추앙을 받게 된다. 한편 광주에선 2005년부터 정율성음악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이 기념관은 하얼빈시 문화부 부국장이었던 서학동씨(조선족동포)의 노력으로 2009년 7월에 설립됐다. 2층으로 된 기념관엔 정율성의 일대기 및 의열단 등에 관한 각종 사료와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눈에 띄는 건 1948년 2월8일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포상장이다. 포상장 위에 태극기 14개가 펼쳐진 가운데 한 개의 무궁화가 중간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대한민국정부수립(1948년 8월15일) 이전 북한에서 태극기와 무궁화를 사용한 증거가 된다.
이 밖에 하얼빈은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일송 김동삼과 영양 출신 남자현 열사의 체취가 묻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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