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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메밀밭으로 들어간 ‘미스터 션샤인’

2018-10-12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소목화당 박성호

20181012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맹개마을 언덕에 들어선 펜션하우스 같은 그의 거처를 배경으로 깔려 있는 수만평의 메밀밭 한가운데서 신산스럽기만 했던 지난 시절을 물끄러미 떠올리고 있는 소목화당 대표 박성호씨. 뒤에 보이는 절벽이 바로 학소대.

소목화당(小木花堂).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당호(堂號)다. ‘작은 나무, 그리고 꽃이 피는 집’이란 의미다.

지금 나는 궁벽지지만 너무나 산자수명한 ‘벽처(僻處)’에 살고 있다.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낙동강변 언덕. 내가 사는 가송리에는 자연부락이 모두 4개(맹개, 소두들, 가사리, 올미재)가 있다. 우리 마을은 ‘맹개’로 불린다. 태백에서 콸콸거리며 내려오던 낙동강이 이 근처에서 완만하게 흐른다. 그 강물의 기세를 보고 그렇게 지은 것 같다.


天命 이끄는 대로 닿은 안동 ‘맹개’
드라마 제작팀도 1급 비경에 눈독
봄·가을마다 밀·메밀밭으로 변신
그냥 놀러오면 천국으로 보이지만
살기위해 머물러 있으면 깡촌 지옥
그래도 흙과 가까운 가식없는 삶…


정면에 100m 남짓한 학소대가 우람하게 옹립해 있다. 그 옆에 이현보 선생의 얼이 깃든 농암종택이 있다. 그 근처에서 배를 타고 아래로 600m 정도 내려오면 바로 왼쪽에 소목화당 전용 나루터가 보인다.

‘도대체 어느 시절 이야기인가’ 다들 의아해 할 것이다. 맞다. 그래, 난 참 의아한 사내다. 편리하고 잘 닦인 탄탄대로를 마다하고 심산유곡을 자청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무심한 강 복판에 바위가 하나 솟아나 있다. 종일 그걸 보고 있을 때도 있다. 아내 다음으로 내 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퇴계 이황이 도산서원에서 여길 거쳐 청량산으로 산책갈 때 눈여겨본 그 바위, 퇴계가 ‘경암(景岩)’이라 명명했다.

10여년 전 무작정 그 깡촌 땅 9만㎡(2만8천여평)를 매입했다. 지천명을 맞은 박성호(50), 바로 내가 그 사람이다.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건강이 망가진 것도 아니고 투자도 아니었다. 그냥 천명(天命)이 날 안동으로 끌고 내려온 것이다.

늘 강물이 발길을 가로막는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나룻배를 타야 진입할 수 있다. 한겨울에는 두툼한 얼음판을 걸어서 오면 된다. 물이 많이 빠져 바닥이 보일락 말락 하면 내가 경운기·트랙터 등으로 손님을 모시고 온다.

아무도 모르던 내 집이 최근 뉴스메이커가 됐다. tvN ‘도깨비’ 제작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후속으로 시대극 ‘미스터 션샤인’을 제작하려고 하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들도 여기 풍광이 1급 비경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진작가, 여행작가, PD 등이 눈독 들일 수밖에 없다.

황량하기만 하던 언덕은 봄·가을마다 밀·메밀밭으로 변한다. 그 언저리에 수채화 같은 펜션형 가옥을 지었다. 외화내빈(外華內賓). 그렇다. 보기엔 넉넉해 보이지만 실제 우리 생활은 냉기가 감돈다. 가끔 찾아드는 이들의 식사·숙박료로 겨우 버텨나간다. 놀러오면 천국이지만 살려면 지옥인 데가 바로 여기다.

그동안 내 뒤를 봐주던 서울여자였던 아내. 생업의 원천이었던 안동 시내 학원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1년 전 내 곁으로 왔다. 아직 두 아이는 안동에서 학교를 다닌다. 특수비닐로 만든 4동의 돔하우스는 친환경농사를 위해 지어놓았다. 그런데 관광객에겐 ‘우주인의 집’으로 통한다. 매년 이맘때 여기서 메밀꽃음악회를 향불처럼 피워올린다. 올해도 10월20일에 음악회를 한다. 메밀꽃처럼 생긴 포크뮤지션 ‘인디언수니’가 이 가을을 통기타로 멋지게 칠해줄 것이다. 지인들의 맘으로 파종하는 이 음악회는 소목화당 나름의 추수감사 축제. 올해 메밀은 7월30일 심었다. 10월20~25일 온가족이 매달려 5t 정도의 메밀을 수확할 것이다. 지난 봄에는 10t의 밀을 거뒀다.

떨어져 사는 자. 이래저래 구설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 부럽다, 처연하다, 도피다…. 다들 한마디씩 구시렁거린다. 자신은 덕담·훈수랍시고 던진 말인데 내겐 더러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이젠 그 상처가 굳은살이 돼버렸다.

스마트폰 세상. 도시에서도 전원을 살 수 있다. 전원에서도 능히 도시를 살 수 있다. 세상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 더 먼 곳도 더 가까운 곳도 없다.

난 서울에서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난 평당 가격이 바닥인 곳으로 ‘망명’을 했다. 지난 10년 박성호의 시골살이! 그건 나를 넘어서려는 것이 아니다. 나를 객관적으로 전지하고 재정립하는 성숙하고 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 옆에 내 유년이 이슬처럼 그렁거리고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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