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창지개명’으로 바꾼 이름
광복후에도 변경없이 그대로 사용
‘NO재팬’늘며 日잔재청산 움직임
절차 많고 복잡해 개정은 쉽지 않아
5일 대구시 남구 앞산공원 큰골로 한 시민이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가고 있다. 앞산의 원래 명칭은 성불산이었으나 일제시대에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
5일 대구시 북구 오봉오거리로 차들이 지나가고 있다. 오봉오거리는 친일파 박중양이 침산일대를 사유지로 만든 뒤 이곳을 오봉산으로 변경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현재는 오봉산의 지명이 침산으로 변경된 만큼 오거리 명칭 변경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
불매운동에 화이트리스트 제외까지 더해져 대구지역에서도 ‘탈일본’(脫日本)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가운데, 이 기회에 대구 도심 속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잔재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구에 남은 일제 잔재 가운데는 ‘지명’이 많다. 일제가 민족정신 말살과 통치 편의를 위해 본래의 행정지명을 자의적으로 바꾸는 이른바 ‘창지개명(創地改名)’을 단행한 것이다.
대구 남구 도심 속에 위치한 시민의 쉼터 ‘앞산’의 본명은 ‘성불산’이었다. 1832년 편찬된 대구읍지에 이같이 표기돼 있다. 그러나 일제가 1912~19년 조선지형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성불산이라는 이름을 없앴고,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육지측량부에 처음으로 ‘전산(前山)’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광복 이후 이 이름이 굳어져 앞산이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그대로 쓰이고 있다.
대구 북구 침산동에 위치한 오봉오거리도 대구에 남은 일제 잔재 중 하나다. 친일파 박중양은 대구군수 재직 때인 1906년, 일본인이 상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대구읍성을 허물고 도로를 만든 인물이다. 그는 금호강 하류 야산인 ‘침산’을 사유지로 만든 뒤 산에 봉우리가 다섯개 있는 것에 착안해 ‘오봉산(五峰山)’으로 개명했다. 자신의 공로를 자화자찬하면서 친일행적을 미화한 내용을 담은 기념비 ‘일소대(一笑臺)’도 침산에 만들었다.
1996년,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를 중심으로 범시민 철거 운동이 진행됐고, 같은 해 박중양의 후손들은 일소대를 철거했다. 또 2007년에는 침산이 국가 재산으로 환수됐고 이름도 되찾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은 ‘오봉’의 흔적은 여전히 깊은 일제의 상흔을 보여준다. 현재도 북구 침산 남쪽 등산로 입구의 오거리는 ‘오봉오거리’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 도심에는 일제강점기에 사용되던 일본식 동네 이름에 접미어만 바꿔 행정구역과 가로명으로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구 최대 도심 동성로는 일본식 지명 ‘동성정(東城町)’이, 중구 덕산동은 ‘덕산정(德山町)’이 바뀐 지명이다. 일제가 우리말 지명을 한자식 지명으로 바꿨지만, 아직도 그 명칭 그대로 행정지명으로 사용되는 사례도 많다. 일제는 ‘솔고개’를 ‘송현(松峴)’으로, ‘새터(새마)’를 ‘신기(新基)’로, ‘한실’ 또는 ‘큰골’을 ‘대곡(大谷)’으로, ‘장터’를 ‘장기(場基)’로, ‘대밭골’을 ‘죽전(竹田)’으로 개칭했다. 이들 지명은 지금까지 동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익숙해진 명칭들이다. 달성군의 가창면(嘉昌面)은 일제로 인해 상수서(上守西)·상수남(上守南)·하수남(下守南) 3개 면이 통폐합돼 만들어졌다.
지역의 이러한 일제 잔재 청산은 좀 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박은희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중앙정부에서 일제잔재 지명 바꾸기 운동을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이후 결과를 지켜보고 대구시도 ‘팔로 업(follow up)’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의 말대로 대구시의 동참이 확정되더라도 정식 개정까지는 만만찮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여전히 왜곡된 지명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이에 대해 전문가들을 망라한 공동연구단을 꾸려 체계적인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후 지자체의 읍·면·동·리 명칭 변경에 대한 주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주민 과반수가 투표하고, 그중 3분의 2 이상이 명칭 변경에 찬성해야 자체 조례를 만들거나 개정할 수 있다. 이후 시군지명위원회와 시도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심의·의결하며, 국토지리정보원의 고시로 지명 변경이 완료된다. 수십 년간 익숙해진 일본식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다는 주민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도 어려운 점이다.
오홍석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장은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며 나서는 뜻 깊은 해”라면서 “이 기세를 몰아 대구지역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들을 모두 청산하고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 새롭고 건강한 100년을 맞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서민지 기자
정경부 서민지 기자입니다.이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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