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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사람] 멜랑콜리했던 신사 권옥연 (1923∼2011)

2019-08-31
20190831
20190831
최은주 (대구미술관장)

새로운 세기의 시작으로 분주했던 2001년, 권옥연 화백을 처음 만났다. 필자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할 때였다. 권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해마다 발표하는 원로작가 부문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줄곧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노화가는 어떤 성정의 사람일까를 생각하면서 서울 장충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화실은 유화물감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이젤 위에는 작은 소녀 그림이 붓질을 기다리며 고즈넉하게 놓여 있었다. 큐레이터란 직업이 갖는 특이성이 이런데서 드러난다. 예술가를 만난다는 것, 그들과 대화한다는 것, 그들이 이룬 예술의 세계를 알아간다는 설렘을 가질 수 있다.

권 화백은 당대 최고의 멋쟁이였다. 바바리코트를 입어도, 회색 수트를 입어도, 짙은 선글라스를 껴도 정말이지 멋있어 보였다. 1923년 함경도 함흥의 권진사댁에서 태어난 5대 독자였던 권 화백은 일설에 의하면 호랑이 육포를 먹고 자랐다고 전해질 만큼 용모와 풍채가 모두 훌륭했다. 게다가 1940년대 초반에는 동경제국미술학교에서 그림을 배우고 1957년에는 파리로 건너가 전후 대표적인 서구미술사조인 앵포르멜의 세례를 직접 받은 국제적인 감각마저 지니고 있으니 전시장에라도 나타나면 수많은 사람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성악가라고 해도 될 만큼 노래도 잘했다. 그의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미술계 사람이 아니라는 농담 아닌 진담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가 남긴 그림들은 화려한 색채나 구성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권옥연의 ‘청회색’이라 불리는, 회색톤으로 그려진 우수와 허무감이 깃든 작품이었다. 한마디로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다는 멜랑콜리의 감정을 그만의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이었다. 그의 호인 무의자(無衣子), 즉 ‘벌거벗은 이’라는 뜻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오로지 화가의 자세로 풀어내고자 했던 권옥연의 또다른 이름이다. 그가 40대 초반에 그렸다는 이 그림은 권옥연이 유일하게 남긴 자화상이다. 어딘가를 응시하는 화가의 깊은 눈매에서 세상에 대한 슬픔과 연민이 느껴진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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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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