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제맥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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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대구경북에서 처음 만들어진 로컬 크래프트비어 1호 브랜드인 대경맥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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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1회를 맞고 있는 국내 최고 맥주축제로 불리는 경남 남해군 독일마을 2019년 제9회 맥주축제장의 야간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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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대구 방천시장에서 가동됐던 대도양조장 모습. 폐업된 그 양조장 이름이 올해 브루펍으로 부활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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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경대에서 OEM 방식으로 양조된 청도읍성맥주와 포항이모맥주. |
맥주도 진화하고 있다. 공장형인 1세대, 하우스 브루어리형인 2세대, 이제는 집에서도 맥주를 커피처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3세대 홈맥주 시대다.
19세기말 일본에 의해 한국에 처음 론칭된 맥주를 1세대 맥주라고 한다. 저온 살균법으로 발효과정에서 생성된 효모를 죽여 유통하는데, 설탕과 전분, 활성제와 항산화제 등의 부가물을 넣고 발효시킨 후에 마지막 과정에서 탄산가스를 넣어 만든다. 이들 공장맥주(공맥)는 국민맥주로 불렸다. 그래서 절대적 파워를 가졌다. 소비자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조건반사적으로 공맥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알코올 민주주의(民酒主義)’를 외치는 이들은 공맥의 독주를 견제하려 했다.
2002년 새로운 햇볕이 비치기 시작한다. 한·일월드컵을 즈음하여 한국 주류문화의 분깃점이랄 수 있는 ‘브루펍(Brewpub)’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이들 소규모 양조 허가(7천500ℓ)를 받은 브루펍의 하우스 맥주를 2세대 맥주라 한다. 브루펍은 브루어리(Brewery·양조장)와 펍(Pub)의 합성어. 소규모 양조장 설비를 갖고 자기 공간에서 수제맥주(수맥)을 만들어 판매한다. 이 시절 유럽 푸드투어 붐이 일었고 이때 수맥의 맛이 뭔가를 아는 여행족들이 국내 수맥시장의 파이를 확충하는 데 일조한다. 하지만 이들 맥주는 법적으로 오직 브루어리 내에서만 유통되었다. 대구에서도 아리아나브로이 등 5개 정도가 생겨났지만 정부의 지나친 간섭, 퀼리티와 가격경쟁력 저하 등으로 인해 금세 경쟁력을 잃고만다.
2014년부터 주세법이 또 개정된다. 양조장에서 만든 수맥을 밖으로 유통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정부가 50여년간 유지해 온 주세법 개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간 국내 주세법은 제조원가에 의해 책정된 이른바 ‘종가세’방식이었는데 이를 손보기로 결정한 것. 이에따라 내년부터 맥주와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금이 매겨지는 ‘종량세’로 세법이 개정된다. 수맥 가격이 좀 인하될 여지를 얻었고 프라이드치킨처럼 배달도 가능하게 됐다. 공맥과 수맥의 새로운 맥주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참고로 수맥에 해당되는 영어는 ‘크래프트비어(Craftbeer)’. 크래프트비어는 1970년대말 미국양조협회(American Brewers Association·ABA)가 개인을 포함한 소규모 양조장이 소량 생산하는 ‘수제 로컬 맥주’를 뜻하는 용어로 지정하는 과정에 탄생하게 된다.
주류가 아닌 슬로푸드 인식 욕망
소량생산 수제 로컬‘크래프트비어’
美서부 과일향 호프 쏟아부은 ‘IPA’
효모 달콤함 조화 ‘뉴잉글랜드 IPA’
우린 뉴밀레니엄이 올 때까지 외국 수맥의 참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2000년 ‘대한민국 최초의 Craft Beer&Draft Beer 프랜차이즈’를 선언한 탭하우스 ‘와바( Wabar)’가 수맥 붐에 앞서 수입맥주 선풍을 일으킨다. 그런 흐름 속에서 기네스, 호가든, 삿포로, 필스너 등이 팬덤을 얻는다. 하지만 이 맥주도 명실상부한 수맥은 아니다. 외국의 양조장에서 만들어 대량수입된 또 다른 공맥이었다.
‘맥주는 맥주 공장 굴뚝 그림자 속에서 먹여야 된다’는 독일 속담이 있듯 수입맥주 역시 효모가 살아 있는 생맥주(Youngbeer) 계열은 아니었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듯 한국형 수맥에 도전하는 맥덕이 2002년부터 하나둘 생겨난다. 주류가 아니라 맥주를 하나의 ‘슬로푸드’로 인식하는 욕망이 생겨난 것이다.
2012년 한국에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밸라스트포인트 양조장에서 만든 ‘스컬핀 IPA(인디아페일에일) ’가 한국에 상륙해 대박을 낸다. 과일, 아니 주스 같은 맥주 맛에 다들 열광한다. 이게 국내 수맥 입문자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섰던 IPA다.
‘IPA 때문에 국내 수맥시장이 본격화됐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IPA 종주국은 영국. 영국에서 탄생한 맥주 이름에 인도를 뜻하는 인디아(India)가 붙은 것은 IPA가 제국주의 시절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인들이 인도에서도 맥주를 즐기기 위해 만든 거라서 그렇다. 당시 영국에서 인도를 가려면 바닷길로 적도를 두 번이나 지나야 한다. 극심한 온도 변화를 겪는 통에 쉬 변질된다. 이 소식을 들은 호지슨(Hodgson)이라는 런던의 한 양조업자가 기존 페일에일 맥주에 방부제 역할을 하는 호프를 다량 넣어 인도로 보낸다. 인도의 영국인들은 호지슨의 맥주에 감동한다. 그러나 1940년대 이후 물처럼 넘어가는 라거 맥주 열풍에 밀려 IPA도 뒷전으로 밀려난다. 사라질 뻔한 IPA를 다시 무대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이들이 바로 미국 서부의 크래프트 양조사들이다. 감귤류, 열대과일 향 등을 머금은 미국산 호프를 쏟아부어 미국식 IPA 시대를 개척한다. 그 히트작이 바로 ‘스컬핀 IPA’다. 미국 나파밸리의 신대륙 와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젠 서부식에 이어 동부식, 즉 ‘뉴잉글랜드(NE) IPA’도 가세했다. NE IPA는 외관이 맑은 서부식 IPA와 달리 탁하다. 일반 IPA보다는 묵직한 보디에 향이 강한 호프와 효모의 달콤함이 조화를 이뤄 ‘호프주스’로도 불린다. 달콤하고 묵직하다.
공장맥주의 반격
향 풍부·쓴맛 강한 에일맥주 출시
집에서 제조하는 캡슐형 ‘홈브루’
도수·향 선택 홈브루잉 시대 개막
대학도 수맥 양조, 저변 확대 동참
공맥 진영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공맥 2강인 OB와 하이트가 잇따라 에일맥주를 출시한다. 에일맥주는 발효 중 효모가 탄산가스와 함께 발효액의 표면에 뜨는 상면발효 방식으로 만든다. 주로 15~25℃의 상온에서 발효된다. 숙성 기간이 짧고 향이 풍부하며, 쓴 맛이 강한 것이 특징. 기존 국내 맥주 시장의 99%를 차지했던 하면 발효방식의 라거 맥주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높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9월 맥주연구소 덴마크 알렉시아와 기술제휴를 통해 3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한 ‘퀸즈에일’을 출시한다. OB맥주는 ‘에일스톤’을 출시했다.
심지어 LG전자는 지난 7월 집에서 손쉽게 맥주를 직접 만들어 즐길 수 있는 캡슐형 수제 맥주 제조기 ‘LG 홈브루’를 출시한다. 취향에 따라 인도식 페일에일, 흑맥주(스타우트), 밀맥주(위트), 친숙한 체코 맥주인 필스너까지 맛 보게 했다. 거기에 더치커피를 맥주와 섞어 마시는 ‘더치맥주’까지 등장했다.
점차 ‘1인1맥주 시대’로 가고 있는 듯 하다. 브루펍을 벗어나 개인이나 동호인들이 효모를 연구하고 국내산 재료를 갖고 자기만의 도수와 향미를 선택해 맥주를 주조하는 3세대 맥주족, 그들이 ‘홈브루잉’ 시대를 개막했다. 그 대표적인 동호회가 바로 2002년 태동한 국내 최대 수제맥주 다음카페인 ‘맥만동(맥주만들기 동호회)’이다.
대학도 수맥특수를 흡수하기 시작한다. 대경대가 대구맥주학교는 물론 양조장까지 갖추고 교육생을 받기 시작한다. 경기대와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공동 설립한 양조 교육 기관인 수수보리아카데미도 저변을 확충한다.
와인에 대한 전문가를 ‘소믈리에’, 커피 전문가는 ‘바리스타’라 한다. 맥주전문가는 뭐랄까. 몇 단계가 있다. 브루마스터는 1단계 전문가라 보면 된다. 브루마스터는 기술이 출중한 장인급이라지만 이론적 측면에선 부족한 구석이 많다. 동서양 수맥의 역사와 양조시장의 추이, 조주사급 식견을 갖추려면 고시급 자격증 취득시험을 합격해야 된다. 대표적인 게 ‘마스터 시스론(Cicerone)’, 미국의 BJCP((Beer Judge Certification Program) , 영국의 IBD( Institute of Brewing & Distilling), 독일의 맥주 전문교육기관 되멘스 아카데미에서 발급하는 비어소믈리에 등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맥주용 호프
보리·호프·효모·물 4가지 주재료 사용
달달함과 곡류 특유의 맛내는 맥아
끝맛 좌우하는‘호프’국내 재배 확산
맥주 500㎖ 한 병을 만드는 데 얼마만큼의 원료가 필요할까. 약 60g의 맥아, 약 0.3g의 호프, 약 15g의 전분이 사용된다.
맥주의 주재료는 딱 4가지(보리, 호프, 효모, 물). 보리는 물에 며칠 불려 싹을 틔운 보리(엿질금), 즉 ‘맥아(麥芽·Malt)’를 사용한다. 맥아를 사용하는 이유는 보리로부터 쉽게 전분을 추출하기 위해서다.
보통 맥주를 마실 때 혀끝에서 느껴지는 달달함과 곡류 특유의 맛은 맥아에서 나온 것이다. 가끔 맥주 상표에서 ‘100% 몰트 맥주’라는 표시를 볼 수 있다. 이는 보리 외에 다른 곡류를 첨가하지 않았다는 뜻.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는 보리몰트 외에 다른 곡류를 일체 사용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일정량의 보리몰트가 들어가 있으면 맥주로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주로 대형 맥주 회사들은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보리외에 옥수수나 쌀을 첨가하기도 한다.
일반인에겐 더없이 생소한 게 바로 ‘호프(Hop)’다. 호프를 몰트로 착각하기도 한다. 맥주의 끝맛을 좌우하는 것은 호프의 쓴맛이다. 맥주에 따라 호프의 맛(향)이 강한 것에서부터 거의 느낄 수 없는 것까지 다양하다. 호프의 영향력 때문인지 70~80년대 라거식 생맥주집을 ‘호프집’으로 부르기도 했다.
호프는 덩굴식물에 작은 솔방울처럼 달리는 암꽃이다. 성분에 따라 각기 감귤류향, 포도류향, 열대과일향, 핵과일향, 송진, 후추, 허브, 흙 등 여러 향을 만들어낸다. 호프는 생호프로 쓰이기도 하고 호프를 건조해 압축한 펠릿(pellet) 형태로도 쓰인다. 국내에서는 대부분 펠릿 형태의 수입산 호프를 활용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강원도 홍천 등지에서 큰 규모로 호프를 길렀다. 맥주 회사들이 국산 호프로 맥주를 만들다가 가격이 저렴한 수입산이 들어오면서 호프 농가들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 최근 다시 국내에 호프를 재배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 호프의 수확기는 8월 중하순. 충북 제천 솔티마을에는 뱅크크릭 브루잉을 비롯한 여섯 농가가 1만9834㎡(6000평) 규모로 호프를 재배하고 있다. 매년 호프 수확 축제도 연다.
글·사진=이춘호 음식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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