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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시네 토크] ‘82년생 김지영’ 정유미

2019-10-25

“나는 누굴까 어떤 딸일까 많은 생각들게 만든 작품”

[시네 토크]  ‘82년생 김지영’ 정유미


“가끔 옛날 생각이 나고, 해질녘이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아.” 꿈 많던 어린 시절, 매사에 자신감 넘쳤던 커리어 우먼을 거쳐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로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지영은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낀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하는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조남주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친정 엄마, 언니 등에게 빙의된 증상을 보이는 30대 여성 김지영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유미가 ‘82년생 김지영’ 역이다. 씩씩하지만 때론 상처받기도 하고, 밝게 웃지만 그 안에 아픔도 있는 평범한 인물 지영을 연기한 정유미는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동료이자 엄마로 규정되느라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기 어려웠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전한다. 공유가 지영의 남편 대현 역으로 ‘도가니’‘부산행’에 이어 정유미와 호흡을 맞췄다. 늘 완벽하고 싶고, 연기를 잘 하고 싶다고 말한 정유미는 이번에도 한결같이 거짓 없는 눈빛으로 우리와 마주했다.

[시네 토크]  ‘82년생 김지영’ 정유미

▶시나리오를 읽고 난 첫 느낌은 어땠나.

“덮고 나서도 한동안 가만히 있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간혹 ‘이건 아니네’라는 생각으로 덮어 버린 경우도 있는데 이 시나리오는 ‘나는 어디에 있고, 나는 누굴까?’라는 식으로 나 스스로에게 많은 생각과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문뜩 가족 생각도 났다. 가족들에게 나는 어떤 딸일까를 생각해보면 미안한 마음부터 든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자주 못드리고 그냥 무심하게 지내왔는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반성하는 마음과 함께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를 덮자마자 소설을 바로 사서 읽었다.”

▶원작 소설과는 다른 결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소설이 냉소적이고 차가운 느낌이었다면 영화는 다분히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그 점 때문에 선택했다. 뭔가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좀더 희망적으로 비쳐지는 걸 선호한다. 선과 악이 극명히 갈라지는 장르물과는 분명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게 영화와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도 원작의 의미나 내용을 훼손시키지 않고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소설과는 다른 접근으로 입체적으로 잘 구현한 것 같다.”

“평범하지만 아픔도 있는 30代 여성
 그녀의 이야기 연기적으로 잘 표현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 더 커져”


▶극중 김지영과 비슷한 연배인데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었나.

“지영에 대한 어떤 공감보다는 사람에 대한 마음적인 부분에 공감이 갔다. 사실 내가 지영처럼 출산과 육아, 회사 생활 등 남들이 하는 보편적인 삶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 공감했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배우는 경험해보지 않은 것까지 경험한 것처럼 보여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 역시 배우 정유미가 대중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뭘까를 생각해보면 일단 연기적으로 잘 표현해내는 일일 것이다. 그래야 관객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유독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작품이다.”

“시댁 빙의신, 개인적으로 가장 후련 
 원래 가족에게 연락 잘 안하고 무심
 젠더 이슈 악플 심각하게 생각 안해”


▶명절을 맞아 시댁에 내려간 지영이 빙의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장면은 모든 여성들이 공감했을 것 같다.

“그동안 힘든 건 알지만 그녀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마음속으로만 담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표출하지 않고 끝났다면 그녀의 고충과 답답함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건 이 영화가 해소해줘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적 장치로도 느껴질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후련했던 장면이기도 하다. 아마 모든 여성들이 공감할 듯 하다.”

▶집에서는 어떤 딸인가.

“가족들한테는 되게 무심한 편이다. 고향이 부산인데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하다보니 이젠 주변의 친구들이 더 가족같다. 물론 객지에서 생활하는 딸이 걱정돼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매일 엄마로부터 전화가 오지만 통화는 물론이고 문자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이모티콘으로 대신할 때가 많다. 가족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어떤 얘기를 할지 되게 궁금하다.”(웃음)

▶원작 소설과 영화가 ‘젠더 이슈’로 뜨겁다. 게다가 당신은 영화 출연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SNS 등에서 온갖 악플에 시달렸다.

“너무 황당하고 놀랐다. 솔직히 그 정도로 이슈가 될 줄은 예상도 못 했는데 너무 논란이 커지니까 오히려 현실감이 없어지더라. 연예인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서글퍼서 웃음이 날 정도다. 영화를 보셨으니 알겠지만 페미니즘이나 젠더 갈등을 부각시킨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런 부분이 부각되고 커지는 게 너무 슬프다. 나에 대한 악플도 가급적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거기에 몰입되면 일에 방해만 된다. 그보다는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나를 신뢰할 수 있게 연기를 잘해내는 게 더 중요하다.”

▶특별히 표현하기 어려웠던 장면이 있었나.

“시나리오가 워낙 탄탄해서 특별히 어려웠던 건 없었다. 간혹 감정을 모르겠거나 특별히 와닿지 않는 부분을 만나면 소설의 단락을 찾아서 읽으면 대부분 해결됐다. 워킹맘으로서의 감정이 궁금할 때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정말 그래? 정말 공허한 마음이 들어?’라고 물어본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감독님에게 의지했다. 두 아들을 키운 엄마라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부분을 정말 디테일하게 잘 알려주셨다. 휴대폰 통화를 할 때 유모차를 발로 밀면서 하는 장면이라든지 손목에 아대를 차고 있는 장면 등 감독님의 경험담을 녹여낸 보편적이면서 디테일한 장면들이 덕분에 자연스럽게 담겨졌다. 나는 유모차에 브레이크가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공유와는 세 번째 만남이라 호흡을 맞추기가 아무래도 편했을 것 같다.

“공유 선배와는 ‘부산행’ ‘도가니’를 같이 했지만 직접적으로 호흡을 맞춰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부부라는 설정이라 밀접한 관계지만 이번에도 선배와 촬영을 같이 한 날은 손에 꼽는다. 오히려 애기랑 같이 한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선지 마치 회사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심정이 된 것 같았다. 가끔 촬영장에서 선배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선배와는 말을 많이 안해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뭔가 통하는 게 있다.”

“공유선배와 세번째 만남, 서로 신뢰감
 사회적 메시지 작품, 소문 더 나게 연기
 다양한 의견 수용, 캐릭터 접근 수월”


▶찍으면서 울컥한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내가 특별히 좋아했던 장면이었는데, 내가 등장하는 신은 아니고 공유 선배와 친정 엄마로 분한 김미경 선배님이 함께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그 장면이 마음에 너무 와닿았다. 두 분이 어떻게 이 장면을 담아낼지 되게 궁금했는데 그 장면이 아쉽게도 편집됐다. 보통은 편집이 되더라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일부러 그 장면을 찾아 봤다. 메이킹 필름에서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깡패같은 애인’ ‘도가니’ 등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들에도 출연을 해왔는데 배우로서 사회적인 책임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모순적이긴 한데, 그 작품을 하고 나서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촬영을 하면서 나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과 사회적 이슈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솔직히 ‘도가니’를 할 때는 부담감도 컸지만 겁도 많이 났다. 실화이면서 아픔을 간직한 주인공들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그런 얘기를 끄집어내면 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를 우려했다. 당시 알려진 것 말고도 우리가 몰랐던 엄청난 이야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왕 할 거라면 소문이 날 정도로 잘 해내야겠다 싶었다. 그 때의 각오와 다짐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나를 지탱하고 있다.”

▶배우 정유미가 가진 가장 큰 힘은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 놓여도 일상이라는 공기를 포용한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그런 점이 도드라졌는데 그건 철저한 준비의 결과인가.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최대한 단순해지려고 노력한다. 현장에서 감독과 스태프 등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그들의 반응을 지켜 보면서 캐릭터에 접근하는 건데 이 방식이 나와 맞는 것 같다. 처음에는 무조건 몸으로 부딪히고 감정에만 기댔는데 하다보니 버거웠다. 빨리 지치기도 하고. 이후 깨달은 게 이방식인데, 내 생각만 맞고, 내 감정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나를 최대한 비우고 단순해져야 했다. 전에는 어떤 주문이 들어오면 ‘왜 이렇게 해야 돼요? 이게 말이 돼요?’라고 토를 달았다면, 이제는 ‘한번 해볼게요’라고 적극 수용하는 편이다. 결과적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캐릭터 접근도 수월해졌다.”

▶천만 영화의 주역인 동시에 그간 다양한 장르물로 꾸준히 대중과의 만남을 가졌다. 배우로서의 만족도를 스스로 매겨본다면.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도 있지만 하고 싶은 연기를 할 수 있으니 늘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래서 잘하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다. 물론 좋은 것만이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힘들었던 경험과 기억도 분명 내 안에 자양분으로 쌓여 지금 이렇게 연기를 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현 상태의 만족도를 점수로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7점 이상은 될 것 같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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