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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매콤·달콤·맵달의 중독 '대구 3대 떡볶이'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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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개업, 지금까지 2·28 중앙공원 옆을 고수하고 있는 '중앙떡볶이'. 후추맛이 첨가된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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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지경에 든 주걱이 매운맛이 스며든 국물 소스를 파고드는 모습은 행인의 침샘을 더욱 자극한다. 사진 속 주걱은 '윤옥연신천할매떡볶이' 본점의 떡볶이 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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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의 명물 떡볶이로 불리는 신내당시장 내 '달고떡볶이'. 단맛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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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전문기자
지난 12일 오후 2시. 대구 떡볶이의 대명사격인 윤옥연 할머니(82)가 있는 '윤옥연신천할매떡볶이' 본점을 찾았다. 신천시장 재건축으로 인해 할매는 맏며느리 변인자씨와 함께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간판에 적힌 'SINCE 1974년'이란 문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윤 할매는 그 시절 어느 장터 어귀에서 만날 수 있는 분식류를 파는 노점을 차렸다. 사업도 아닌 그냥 호구지책이었다. 훗날 자기가 만든 장터 떡볶이가 국내 떡볶이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가게는 2000년 어름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했고, 2015년 한국 먹방의 한 분깃점을 이룬 백종원의 3대 천왕에까지 소개된다. 떡볶이가 네버엔딩푸드란 사실을 안 여러 자본가들이 새로운 이름의 떡볶이 브랜드 만들기에 혈안이 된다. 그 속내는 이미 언론에 많이 노출돼 더 이상 재론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윤옥연 신천할매떡볶이
1974년 신천시장 포장마차 스타일로 출발
밀로 만든 가래떡, 단맛 없는 강한 매운맛
떡볶이·튀김 만두·오뎅 '천천천'으로 주문
매운맛 식히는 세 가지 맛 쿨피스와 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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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역사를 가진 옛 대구 신천시장의 전설로 불리는 '윤옥연신천할매떡볶이' 대표 메뉴인 1천원짜리 매운 떡볶이. 튀긴 어묵과 만두가 곁들여지면 맛이 더 증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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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할매떡볶이' 본점 입구 전경.
◆떡볶이 할매 윤옥연

윤옥연떡볶이는 신천할매떡볶이, 신떡 등으로 불린다. 신천시장 내 오케이마트 건너편에서 포장마차 스타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 시장에서 '대구 떡볶이 르네상스'를 구가하는 2개의 파워 브랜드가 더 가세한다. 카레가루를 사용한 '궁전떡볶이', 90년대 후반에는 '황제떡볶이'가 떡볶이 춘추전국시대를 그려 나간다. 토박이들은 이 셋을 신떡·궁떡·황떡이라 불렀다. 이후 신떡 할매를 사랑하는 팬카페도 생겨났다. '신떡사'이다.

그런 어느 날 할매떡볶이는 할매와 공감도 없이 배타적 특허권을 얻게 된다. 할매를 등에 업은 프랜차이즈 상표권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저런 이름이 태어났다. 할매의 전매특허나 마찬가지인 튀김만두, 튀김오뎅, 쿨피스 등도 슬금슬금 다른 가게가 베끼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생긴 할매의 어처구니없는 상호는 '윤옥연신천할매떡볶이'.

◆아직도 진행형인 윤 할매

일요일이라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에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댄다. 초단위로 일이 밀려든다. 맏며느리가 일을 진두지휘한다. 커다란 철제용기에 담긴 고추장 소스의 양과 양배추, 가래떡의 양이 잘 맞아들어가야 한다. 철판에 소스가 눌어붙지 않게 수시로 주걱으로 바닥을 긁으면서 저어줘야 한다.

이 집의 맛은 단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상당한 강도의 매운맛이 혀를 쥐락펴락한다. 매콤달콤이 대세인데 여기선 야박하게 단맛의 강도를 거의 반영하지 않는다. 중독의 맛은 단맛보다 매운맛에서 온다고 믿는다. 또한 가미된 후추가 색다른 맛을 보강해준다. 가래떡은 어른 새끼손가락 굵기 정도이다. 쌀이 아니고 밀로 만든 가래떡이다.

평생 장터의 차가운 바람에 시달려 할매의 피부에는 '고생'이란 독성이 스며들어가 있다. 저 할매의 억척스러운 모정이 한국 모정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할매의 청승살에 한없는 애잔함이 고여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담긴 클로즈업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다. 대신 밖으로 나와 간판에 걸린 동백꽃처럼 활짝 웃는 사진을 재촬영했다.

단골들은 앉자마자 '천천천'을 외친다. 떡볶이와 네 점이 나오는 어묵튀김과 튀김만두 모두 1천원. 여기선 떡볶이 하나만 팔지 않는다. 튀김류를 곁들여 먹어야 된다. 또한 라면파들은 생면도 곁들여 먹는다. 단골들은 매운맛 때문에 냉장고를 열어 세 가지 맛(복숭아·파인애플·자두)의 쿨피스(여기선 '쿨스타'란 상표를 갖고 있다)를 찾는다.


동성로 '중떡' 신내당시장 '달떡'
체인점·분점 없이 한자리 고수하는 '중떡'
쌀떡에 카레가루 섞어 매운맛·단맛 균형
달성고교생 단골 상호 '달떡' 달콤함 강해

교육도시 명성, 학교 주변 떡볶이도 급성장
자박한 국물에 어묵·순대·납작만두 곁들여
신전떡볶이 20주년 '대구 박물관 첫' 개관

◆대구 3대 떡볶이

대구의 떡볶이는 크게 장터형 떡볶이와 카페형 떡볶이 가게로 나눠진다. 장터형 떡볶이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가게는 윤할매떡볶이(윤떡)·중앙떡볶이(중떡)·달고떡볶이(달떡). 이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건 윤떡, 중떡으로 1979년, 달떡은 1980년 오픈했다. 모두 2015년 백종원의 3대천왕에 소개돼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다. 하지만 너무 이 세 가게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따지고 보면 맛은 거기서 거기. 다들 떡볶이의 졸깃한 맛과 튀기거나 구운 납작만두와 어묵 등의 바삭함 맛을 동시에 즐긴다. 국물이 흥건하게 남으면 김밥과 매칭시켜도 좋다.

중떡은 시내 동성로 2·28기념중앙공원 근처에 있는데 한 자리에서 오직 본방만 사수하고 있다. 서울에선 심심찮게 중떡을 사칭하는 가게가 세를 확산하기도 하는데 이를 견제하기 위해 가게 앞에 안내문을 써놓았다. '전국 어디에도 중떡은 체인점, 분점, 직영점이 없습니다.'

이 집은 초창기부터 떡볶이의 매운맛에 균형점을 주기 위해 카레가루를 섞기 시작했다. 여긴 일반적인 매운맛과 단맛을 합쳐놓았다. 여긴 밀떡이 아니고 쌀떡을 사용한다. 10㎝ 길이에 3㎝ 정도의 지름을 가진 가래떡을 사용한다. 이곳은 납작만두와 떡볶이를 함께 파는 '섞어서 하나' 메뉴가 있다. 납작만두와 떡볶이를 같이 먹는 메뉴이다. 납작만두는 튀기는 게 아니라 철판에 굽고 떡볶이 위에 얹어서 국물을 뿌려준다. 백종원은 이를 '납작만두쌈'이라 명명했다. 1인분 4천원.

달서구 코오롱야외음악당 근처 신내당시장 내에 있는 '달떡'은 달성고교생이 단골로 이용해 생긴 상호이다. 여기선 매운맛보다 달콤한 맛이 무척 강하다. 1인분에 1천원인데 고명으로 튀긴 삼각만두를 하나 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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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대구 떡볶이 박물관. 지난해 신전떡볶이가 20주년 기념으로 '신전푸드시스' 브랜드 론칭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대구 떡볶이 박물관' 등장

1950년대 신당동 떡볶이의 원조인 고(故) 마복림 할머니가 중국 식당에서 가래떡을 실수로 짜장면 그릇에 빠트린 것에서 착안해 가래떡을 고추장에 버무려 팔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떡볶이의 대중화는 6·25 이후 구호물자로 들어온 미국산 밀가루와 196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분식장려운동에 영향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보건사회부가 1969년에 주최한 분식을 이용한 조리법 연구 발표회에는 밀가루로 만든 떡볶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그 기사 이후에 학교 주변에서는 맵고 뜨거운 떡볶이가 불량 식품으로 등장하고, 1970년대에는 고추장으로 벌겋게 떡을 볶은 떡볶이가 가장 보편적인 떡볶이로 자리 잡는다. 쌀떡이 밀가루떡으로, 양념이 간장에서 고추장으로 바뀌면서 떡볶이는 가장 대중적인 간식이 됐다.

지난 이명박정권 때 한식 세계화의 선두주자가 바로 떡볶이였다. 떡볶이에는 'TOPOKKI'라는 영어 이름이 붙여졌고, 미국으로 날아가 떡볶이 페스티벌도 펼쳤다. 하지만 떡볶이의 세계화 전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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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가 가미된 '신전떡볶이'.
하지만 대구 곳곳에 떡볶이 명가가 있다. 윤할매, 신떡순, 신천황제, 궁전, 신전, 신천, 황떡, 달, 신참, 중떡, 달떡, 너머, 이웃집소녀, 빨봉분식…. 대구가 떡볶이 도시로 급성장한 결정적 이유가 있다. 전국 최강 교육도시라서 학교를 끼고 성장할 수 있었다. 혹한혹서의 대구 특유의 기온 탓에 매운맛이 중점적으로 특화된다. 대구의 떡볶이는 국물이 상당히 자박하다. 마니아들은 반드시 어묵, 순대, 납작만두, 김밥 등을 곁들여 간식이 아니라 한 끼 식사로 즐긴다. 양념도 기존 고추장에서 탈피하고 있다. 후추, 겨자, 케첩 등을 추가해 이국적 맛을 유도하기도 한다. 또한 치즈, 곱창, 자장, 버섯, 튀김, 라면 등도 엮어 호텔과 레스토랑에서도 고가 별식으로 몸을 불리기도 한다. '부티크 떡볶이 시대'로 접어든 것 같다.

'이웃집소녀 떡볶이'는 볼 빨간 사춘기처럼 소녀 브랜드에 맞게 귀엽고 아늑하고 앙증맞고 깜찍함을 느낄 수 있게 실내 인테리어 주조색을 핑크와 화이트로 치장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떡볶이 프랜차이즈도 10~30대 여성을 겨냥해 무채색보다 유채색, 파스텔톤의 인테리어를 선호하고 있다.

급기야 북구 관음동 칠곡IC 인근 옛 홈에버 건물에 '신전 히스토리 뮤지엄'이 17일 개관한다. 국내 최초의 '떡볶이 박물관'이다. 신전떡볶이가 지난해 20주년 기념으로 '신전푸드시스' 브랜드 론칭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신전은 2017년 정보공개서 기준 떡볶이 가맹점 수 1위(533개), 2018년 12월 기준 624개를 돌파했다. 대구 떡볶이 르네상스에 방점을 찍는 사건이랄 수 있다.

◆떡볶이 유래

식품사 연구가 황광해씨가 떡볶이 유래를 잘 정리해 놓았다. 그에 따르면 떡볶이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한글 기록은 1860년 이전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조리서 '주식시의(酒食是儀)'에 등장하는 '복기'다. 여기 나오는 떡볶이는 '흰떡을 잘하여 닷 푼 길이(3.5㎝ 정도)씩 잘라 네 쪽씩 내어 솥이나 통노구에 달구다가 기름을 많이 두르고 소고기를 가늘게 두드려 떡 썬 것과 같이 볶아' 다양한 재료와 양념을 넣고 먹은 음식이었다. 떡볶이는 역사가 꽤 길다. 옛날에는 '병자(餠炙)'라고도 했다. 물론 고추장이 아닌 간장으로 양념했다. 국내 문헌으로는 1460년 발간된 '식료찬요(食療纂要)'에 처음 등장해 조선시대 내내 왕가와 양반가의 음식으로 나온다. 1938년 대중가요 '오빠는 풍각쟁이'에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고, 오이니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라는 구절처럼 서민은 쉽게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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