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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구로회

2020-03-25

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46)는 조정에 불만이 있거나 세상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8명과 함께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를 만들고 뤄양(洛陽)의 향산(香山)에 모여서 시를 읊고 술을 마시며 노년을 보냈다고 한다. 19세기 말 대구 도동 향산의 측백나무 숲을 중심으로 인근에 사는 9명의 노인도 이를 따라 '향산구로회'를 만들고 숲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신선들이 노닐 만큼 아름답다는 문경 선유동계곡에도 일제 강점기의 압제를 피해 구로회를 만들었다는 유적비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외지 출입을 삼가고 있던 참에 주말을 맞아 가까운 데를 찾은 곳이 대야산 자락의 선유동천 나들길이었다. 의병대장 이강년 선생의 기념관에서 출발하는 이 나들길은 산림청이 실시한 '2018 숲길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빼어난 곳이지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은 아니다.

선유동천 나들길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일곱 명의 친우들이 바위에 이름을 새긴 칠우대를 시작으로 바위와 풍경에 이름을 붙인 '칠우칠곡'이 가장 먼저 반겨주고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절경을 뽐내는 '선유구곡'이 발길과 눈길을 붙잡는다. 학천정 정자에서부터 시작되는 '용추계곡'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으로 전체 나들길 길이는 7.7㎞에 이른다.

선유구곡 가운데 5곡인 관란담(觀瀾潭)에는 '구곡회' 유적비와 바위에 새겨진 아홉 사람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이 세상의 급난을 피해 선유동에 스며들었다는 비석의 글을 읽어보니 코로나19 사태라는 세상의 혼란을 피해 잠시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륙의 한가운데 살다 보니 늘 해외나 바닷가로 떠나기를 즐겼지만 이번 감염사태로 주변을 돌아보며 새롭게 아름다움을 찾은 것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된다. 소중한 것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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