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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의 일상의 시선] 마스크보다는 장미의 계절

2020-05-22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에
세계는 지금 한바탕 전쟁중
참혹함 속에도 장미는 피고
탄흔에 이슬은 더 눈부셔라
아, 오월은 참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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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대구문학관장

-마스크

온통 마스크의 계절. 일상적인 착용품으로, 코로나19의 팬데믹에 따라 전 세계적 거리 패션으로 유행 중이다. 원시인들은 의식을 위한 춤을 출 때 가면을 썼다. 가면은 핼러윈이나 가장무도회에서 변장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가면과 달리 지금의 마스크는 오로지 바이러스의 감염원을 차단하기 위해 쓴다. 디자인도 일률적이고 대량 생산적이다.

마스크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중세 때부터 호흡기 보호용으로 쓰였고, 이후 다양하게 진화해왔다. 요즘의 형태는 19세기 말에 등장했다. 지난 세기 초 중국에선 페스트 감염을 막기 위해 장려됐다. 곧이어 스페인 독감에도 쓰였다. 최근 홍콩 시위에서 연대와 단합으로 수용된 이후 마스크 패션이 주목받았다. 지금의 마스크의 일상화에 따라 곧이어 마스크에 대한 새로운 미학이나 디자인의 변화가 이루어질 거라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코로나19의 충격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엄청나게 다를 것이라 내다보기도 한다. 정현종은 시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이를 빗대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사이에 마스크가 있다며, 그 잔혹한 경험 속으로 다시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도리질을 한다.

-장미

그리고 무엇보다 오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5월을 '마스크의 계절'이라 하기보다는 '장미의 계절'이라 하는 게 새삼 얼마나 감격적인가! 장미가 지천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장미로 또렷이 부각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이 계절이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나를 문단에 처음 소개한 전봉건 시인의 시다.

"장미는 나에게도/ 피었느냐고/ 당신의 편지가 왔을 때/ 오월에…나는 보았다. 탄흔에 이슬이 아롱지었다./…(중략)…/ 장미는 나에게도/ 피었느냐고 당신의 편지가 왔을 때/ 오월에…나는 아름다웠다."

'장미'와 '탄흔(彈痕)'의 혼재 속에 빛나는 '이슬' '탄흔'은 전쟁의 상처를 의미한다.

이 시는 제목이 '장미의 의미'인데, 처음 발표되었을 적에는 '장미와 편지'였다. 1955년 9월1일 경북대학보에 실렸음이 최근 밝혀졌다. 나중에 제목이 바뀌고, 내용이 수정되어 공동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1957년)에 실렸다. 1950년대 최고의 수준이라 꼽히는 시가 경북대학보에 처음 발표된 건 그가 전쟁 때 대구에서 생활했던 인연과 관련이 있을까?

그는 평안남도 안주에서 출생, 1946년에 월남했으며, 1950년에 문예지 추천으로 등단했다. 6·25전쟁 당시 의무병으로 참전, 부상을 입고 제대한 후 부산을 거쳐 대구의 음악다방 '르네상스'에서 DJ를 맡으며 기식했다. 그는 초기 시에서 전쟁의 비인간적인 측면을 고통스럽게 부각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 시에서도 '탄흔'의 전쟁 상처를 '이슬'이라는 자연을 통해 치유하려는 의지가 강조되고 있다.

양상은 다르지만 전쟁은 또 고통스럽게 진행 중이다. 코로나19로 지금 세계는 한바탕 엄청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래도, 오월이면 어김없이, 장미는 핀다. 그래서 더 아름답게 여겨지는가? 그래, 누가 내게도 장미가 피었느냐고 문자한다면, 아아, '탄흔에 아롱진 이슬'처럼, 오월에 나는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다.
시인·대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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