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투 서적 잇단 출간
대구시인協 95명 작품 엮어
절제와 인내, 용기와 희망…
미증유의 재난史 고스란히
◆아침이 오면 불빛은 어디로 가는 걸까(윤일현 외 94명 지음/ 학이사/ 1만5천원)
"이천이십년의 봄이 얼굴을 가린 채/ 소복소복 울면서 서있다/ 보이지 않는 가시철망을 넘나든, 꽃들은/ 긁히어 피가 나고/ 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봄의 잔등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너를 외면하고/ 나를 감금하고/ 이 절망, 넘어가기 위해 꽃들도 얼굴을 가려야 한다"(정하해 시 '봄과 봄 사이' 중)
'2020년 대구의 봄', 그때의 상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다.
한 계절이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를 만큼, 또 꽃이 피고 지는지도 모를 만큼 올봄 대구는 유난히 아프고 힘들었다. 시민들은 코로나19가 가져온 절망을 넘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대구의 시인들은 시를 쓰며 그때를 기록했다. 이어 대구의 출판사는 시인들의 작품을 묶어 특별한 책으로 펴냈다.
'아침이 오면 불빛은 어디로 가는 걸까'는 윤일현 대구시인협회장을 비롯해 시인협회 소속 시인들이 대거 참여한 '코로나19, 대구 시인의 기록'이다.
대구시인협회 소속 시인들은 3월 중순, 전국문인단체 중에서는 가장 먼저 '심리적 거리좁히기와 희망의 연대'를 생각하고 '코로나19'를 주제로 집단 창작을 시작했다.
창작에는 이기철, 이하석, 강현국, 박정남, 김선굉, 장옥관, 송재학, 엄원태, 박진형, 김용락 시인 등 지역의 원로와 중견, 신예 시인 95명이 참여했다. 그 결과물인 이 책은 2월 말에서 5월 말까지 미증유의 감염병 한가운데를 통과한 대구시민들의 절망과 희망, 절제와 인내, 용기와 사랑, 위대한 시민의식을 기록한 시와 산문으로 구성돼 있다.
시인들 저마다의 문학적 지향점은 다르지만, 대구에 찾아든 사상 초유의 재난 앞에서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펜을 들었다.
'마스크'(강해림), '코로나 블루'(김건화), '다시, 봄'(김창제), '지켜야 할 것'(배창환), '사회적 거리두기'(노현수), '향기없는 봄'(안연화) '코로나19, 개구리'(이유환) 등 코로나19를 주제로 한 여러 작품을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책을 엮은 윤일현 대구시인협회장은 "시인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고, 이웃의 작은 상처도 함께 아파했으며, 지는 꽃잎 한 장에서도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꼈다. 이번 책은 그런 시인들의 기록"이라며 "대구의 코로나를 잡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이 안전할 수 없듯이, 전 세계의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만 살아남을 수도 없다. 여기에 무슨 지역감정이나 이념과 체제 갈등 따위가 들어설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이제 대구를 넘어 전 국민의, 전 인류의 연대를 생각하며 삶의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은 계명대동산병원 교수
생생한 경험 담은 에세이집
"감염병도 취약층에 더 가혹"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김동은 지음/ 한티재/ 1만5천원)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시기 선별진료소와 전담 병원 격리병동에서 겪은 경험담 등을 서술한 에세이집이다.
'감염병과 혐오의 시대, 의사 김동은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책은 '1부 코로나19, 대구에서' '2부 사람의 향기' '3부 혐오와 차별을 넘어' '4부 내가 꿈꾸는 세상' 등 총 4부로 나눠진다.
1부에는 대구에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급증했던 시기, 당시 최전선이었던 대구동산병원과 달서구 선별진료소에서 겪은 생생한 경험과 소회를 기록했다.
1부의 첫 이야기는 지난 2월18일 오후 대구에서 첫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나왔던,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시작된다. "우리 병원 응급실이 폐쇄되었어요." 간호사가 저자의 진료실로 달려오며 소식을 전했고, 대구지역 대학병원 4곳의 응급실이 연이어 폐쇄된다.
"모든 감염병이 그러하듯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우리 사회 취약계층에 더 가혹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당시 갑작스러운 코로나19의 습격으로 당황한 도시 대구의 모습과 취약계층의 서글픈 상황 등을 첫 이야기에서 풀어낸다.
전국에서 달려온 의료진의 헌신하는 모습, 간호사들의 노동 환경, 폐기물 처리 노동자 등 '그림자 노동'에 대한 감사함, 인권을 담은 방역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진정한 '뉴노멀'에 대해 생각하는 내용 등도 1부에 담겼다.
2부에선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하는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그리고 환자가 의사를 감동하게 한 따뜻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3부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힘들어하는 환자들의 사연이 실려 있다. 혐오와 차별에 상처받기 쉬운 암 환자와 에이즈 환자, 그리고 소외계층을 위한 우리 사회의 이해와 배려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을 모았다.
4부에서는 영리화, 상업화가 되어가는 의료 현장의 실태를 비판하고, 돈보다 생명의 가치가 존중받는 병원과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여러 청사진을 제시한다. 지난 봄 대구에 직접 달려와 의료봉사를 했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직접 추천의 글을 썼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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