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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실업자의 휴가여행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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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찬 법무법인(유한)클라스 대표변호사

오래전 법관 해외연수 차 독일 괴팅겐에 1년을 머물렀다. 그러던 중 여름 휴가철에 가족들과 이집트 여행을 계획했다. 출발 당일 새벽 하노버 공항행 열차에서 30대 중반의 독일 청년이 합석했다. 휴가철을 맞이하여 혼자 이집트 여행을 간다고 했다. 회사원이었으나 수개월 전 실직했다고 밝혔다. 실업자가 휴가철에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이 뜨악했다.

그 후 독일 사회를 알기 위하여 그 청년을 포함한 같은 처지의 젊은이들 모임에 몇 차례 어울렸다.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으나 좌절과 분노는 없었다. 나에게는 실업도 직업인 것처럼 비쳤다. 아껴 쓰면 저렴한 해외여행이 가능한 액수의 실업수당을 받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임대주택 등 저렴하고 다양한 주거 제공, 무상에 가까운 치료가 가능한 의료보험제도, 대학까지 무상교육 등 적은 수입으로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복지제도와 사회안전망들이 그 토대임을 알게 되었다. 독일 사회의 복지제도는 2000년대 중반의 개혁을 통하여 대폭 축소되기는 했지만, 독일 사회에서 실업자는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좌절과 분노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년들은 삶에서 일자리와 주거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한다. 일은 생존 조건이자 자아실현의 토대다. 가족과 사회의 관계 형성과 상호작용의 근간이다. 그러므로 일자리는 국민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일자리가 모자란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영향으로 전 세계는 구조적으로 이미 일자리 결핍시대에 진입했다.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대규모 정규직화에 대한 불같은 비판과 분노는 일자리 결핍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러진 펜 운동'이나 '노력하는 자가 바보가 되는 세상'이라는 외침은 일자리 결핍시대의 절망과 자학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실업 특히 청년실업 문제는 정부의 최대 난제다. 청년실업 정책은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우선 세대 간 일자리 점유의 형평성 유지다. 50대 386세대가 일자리를 과잉 점유함으로써 비정규직 증가와 청년고용 감소를 초래했다는 연구가 있다.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반목과 갈등은 상속재산을 둘러싼 형제 간 싸움과 유사하다. 그 후유증은 치유되기 어렵고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극한으로 치닫기 전에 통합·조정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다음은 '미래'를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가 국민이라는 것은 이론이 없다. 국민 다음 순번의 이해관계자는 '미래'가 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실업 특히 청년실업 정책이 '미래'를 저당잡아 추진되어서는 안된다. 방만한 재정지출로 미래 세대에게 빚과 절망적 경제상황을 유산으로 남기는 것은 '미래'를 저당잡아 미리 써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미래' 세대에 대한 배임적 범죄행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업수당, 일자리 창출 등의 청년 실업정책이 주거·교육·의료 등 복지정책과 관련 하에 통합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20~30대 청년들에게 일자리는 개인적 차원의 가치와 의미 이상을 가진다. 그들의 존재와 활동, 행복이 국가의 미래와 함수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성장을 염두에 둔 청년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다.
남영찬 법무법인(유한)클라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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