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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한국문학] AI가 이해하는 방언의 깊이

2020-09-17

"뭐라카노" → "뭐라고 하니"
표준어로 전환은 뭔가 부족
짜증 섞인 화자의 불쾌함을
컴퓨터가 알아낼수 있을까
언어의 의미는 어려운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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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길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언어'라는 현상은 너무나도 다차원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토록 막강한 AI조차도 언어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컴퓨터가 '자연 언어'라는 인간의 언어를 정복하는 것, 즉 인간과 기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시각 처리나 체스·바둑을 두는 로봇의 개발과는 또 다른 차원의 도약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AI 스피커를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처음 경험했던 신세계의 산물이 금방 소통의 한계를 드러내는 아쉬움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인간 언어의 처리가 특히 어려운 이유는 의미와 의미를 주고받는 언어적 소통이 단지 참·거짓의 명제적 지식 또는 사실적 정보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감정의 공유나 주관적인 의도의 전달 등 매우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훗날 인간과 기계는 자유롭게 또 완벽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몇 년 전 모 전자회사의 인공지능 에어컨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추워"라는 말만 들어도 "희망 온도를 높일까요"와 같은 대답을 구사할 수 있는 '똑똑한' 에어컨이 출시되기 직전의 일이다. 에어컨의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회사를 방문한 회사의 부회장이 "니 이름이 뭐꼬"라고 질문했는데, 에어컨이 아무런 대답을 못했다고 한다. 경상도 방언 화자인 부회장이 던진, 이름을 묻는 아주 간단한 질문("네 이름이 무엇이니")조차도 AI 스피커는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이 문장을 알아듣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를 '네(너의)'로 이해하고 '뭐꼬'를 '무엇이니'로 해석할 수 있으면 된다. 좀 더 구체화하면 "어디 가노. 서울 가나"와 같은 경상도 방언에서 나타나는 '(가)노'와 '(가)나'를 "어디 가니. 서울 가니"의 '(가)니'로 이해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학습시키면 될 것이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작업은 최근 수행되기 시작한 디지털 뉴딜 사업 중 '한국어 방언 AI 데이터'의 주요 과업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는 전국 5개 권역의 방언을 수집·전사하고, 대응하는 표준형을 함께 구축함으로써 컴퓨터가 표준어와 같이 방언을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연구진 회의에서 "뭐라카노"를 표준어로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해 논쟁이 있었다. '뭐라카노'는 '뭐라고 하노'가 축약된 말로서 '-고 하-'가 '카'가 된 말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뭐라카노'의 표준형을 '뭐라고 하니'로 대응시킬 경우는 뭔가 부족하다. 경상도 방언 화자들로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뭐라카노"라고 말하는 것이 "뭐라고 하니"와 정확히 같은가. 뭔가 부족하다. "뭐라카노"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뭐'에 대해 묻는 의미는 아니다. "뭐라카노"를 말하는 경상도 화자는 화가 나거나 답답해 있을 가능성이 높고,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냐'라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의 말로 "뭐래"와 유사하다. "뭐라캐 쌓노" 역시 묻는 말이라기보다는 짜증 섞인 어투로 전달되는 화자의 불쾌한 감정이 묻어난다.

컴퓨터는 언어를 이해하고 화자를 공감할 수 있을까. 방언은 표준어와 정확하게 일 대 일의 대응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은 언어가 가진 '의미'의 속성과 관련된다. 어떤 언어학자는 의미란 모두 주관적이고 유동적이어서, 사전의 의미조차도 사전학자가 임시방편으로 고정해 놓은 것일 뿐 객관적인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언어학자들에게도 의미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어려운 대상이다.
남길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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