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김형락 창업연구소장-2
부동산업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직접 작성한 서부정류장 상권 점포 위치도(2000년 기준). 당시 병원과 식당 등이 즐비했던 대로변에 아웃도어 특화 거리를 만들었다. 이어 7호광장, 동성로, 경북대 북문, 경산 영남대, 계명대 신당동, 신월성 등 25개 상권을 찾아 점포지도를 기록했다. |
지난 1월 개국한 김형락창업연구소 유튜브 TV. 그는 임차인의 창업성공을 통해 임대인은 물론 창업연구소까지 동반 성장하는 촉매가 되고 싶어 한다. |
◆부농 아들과 부동산중개업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나름 부농이었던 아버지는 자손 귀한 집안의 장손이었다. 나는 100일 기도 끝에 태어났다고 한다. 당연히 금지옥엽으로 대접받았다. 응석받이로 자란 나는 가부장적 권위가 하늘을 찔렀던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면서 유달리 반항적 사춘기를 보낸다. 그 모든 게 성적으로 드러났다. 골치 아픈 애들만 간다는 모 고교에 들어간다. 입학식 날, 시종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암담한 표정의 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에서 뜬 구름 잡는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부모는 서둘러 나를 결혼시켰다. 97년 광복절날, 30번째 중매를 본 여인과 백년가약을 맺는다. 당시 아내는 내가 부농의 아들이라 여겨 호강하면서 살 줄 알았다고 했다. 대구의 모 외국인 회사에서 기술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자초지종을 모를 수밖에 없는 아내는 '외국인 기업=부자'라 여기면서 무지갯빛 미래를 꿈꾼다. 채 1년도 안 돼 아내의 그 꿈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집안에서 그렇게 학수고대했던 첫아기가 사산되고 만 것이다.
우울증이 밀려왔다. '바빠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 근처에 있는 '전람회 그림'이란 재밌는 카페를 보게 된다. 계대 미대생이 운영하던 공간인데 권리금을 주고 인수를 했다. 차, 커피, 호프, 그리고 어묵탕까지 팔았던 전형적 레스카페였다. 그 공간을 미대생의 전시공간, 음대생의 공연공간으로 무료로 빌려주었다.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었다. 간간이 통기타 라이브도 돌렸다. LP판도 돌리는 DJ 역할도 하다가 주방에 들어가 요리도 했다. 당시 자작품인 두부김치 볶음밥과 어묵탕은 인기가 있었다. 인기짱 반찬은 고향 부모가 직접 만들어 갖고 온 묵은지였다. 내가 사는 모습이 흥미로웠던지 지역 일간지에서 화제의 인물로 인터뷰해주기도 했다. 장사는 순항이었지만 딱 1년뿐이었다. 이때 우리를 사지로 내몬 저승사자가 등장한다. 바로 스타크래프트 PC게임이었다. 주 단골층이 모두 그것에 혹해 우리 카페를 등져버렸다. '장사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절감하게 된다.
나도 한때는 창업 실패자
대학가 카페 게임열풍에 폐업
장사란게 이런 것이구나 실감
옷가게·꼬치집…연이어 실패
창업연구와 창업은 별개 영역
가게 팔러 갔다가 인생역전
투잡으로 뛴 부동산중개업
연말실적 동기 10명 중 '1등'
대구 25개 상권지도 만들어
서부정류장 의류 특화거리
봄봄·설빙 전국 도약 일조
◆거리에서 명함 돌리며
가게를 팔기 위해 찾아간 곳이 대구 남구 명덕네거리 근처 코리아부동산이었다. 점포를 제대로 팔려는 맘이 되레 부동산 업계로 진출하게 만든 것이다. 낮에는 부동산직원, 밤에는 카페를 운영했다. 신입사원으로 출발한 10명 중 내가 놀랍게도 연말 시상식 때 1등을 차지한다. 정치외교학도와 부동산. 너무나 미스매치였다. 물론 운은 아니었다.
31세의 나는 춥고 황량하기만 했던 칠곡1지구 현장을 전전했다. 내가 꼭 성냥팔이 소년 같았다. 사각지대에 처박혀 있어 기존 부동산업자도 감지 못한 공간을 매의 눈으로 포착해내는 그런 능력이 절실했다.
그때는 오프라인 시절. 벼룩시장, 교차로, 일간지 광고면 등을 통해 점포 정보를 로딩시켰다. 곧이어 성광부동산으로 필드를 옮겼다. 거기엔 특화된 부동산 고수가 포진해 있었다. 유명 가맹점·편의점·식당·의류팀별로 움직였다. 유명 프랜차이즈도 우리가 필요했다. 부동산중개소와 MOU를 체결해 업무분담을 하는 게 효율적이다.
◆의류전문 점포 개발하자
나는 의류점포를 특화시켰다. 옷가게라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마어마한 영역으로 쪼개진다. 일반 의류, 여성의류, 남성의류, 유명 브랜드 아웃도어, 캐주얼, 정장복, 구제 의류 등에 따라 선호하는 점포도 달라진다. 의류 관련 점포는 일반 부동산 관계자는 제대로 핸들링하지 못한다. 최소 5년 이상 구력이 있어야 남다른 내공의 가게주인을 상대할 수 있다.
일단 서부정류장 주변 상권부터 분석하기 시작했다. 거래 가능한 점포 60개 정도를 지도에 표시했다. 당시 정류장 동쪽 맞은편 횡단보도 코너에 앉은 13평짜리 꿈의 매장은 당연히 수많은 사람이 노렸다. 2000년 초 권리금 2억여원, 월세가 450만원선이었다. 비쌀 거라고 생각되지만 이런 알짜 매장은 단번에 위력을 발휘한다. 연간 15억원 정도 수익을 올린다. 이어 7호광장, 동성로, 경북대 북문, 경산 영남대, 계명대 신당동, 신월성 등 25개 상권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찾아 점포지도를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했다. 경북 포항, 안동, 김천, 구미 등지 주 상권도 기록했다. 다들 나를 희한한 친구라 여기는 것 같았다. '김 이사 너무 연구만 하는 것 아냐. 돈도 챙겨야지…', 다들 걱정 반 핀잔 반이었다. 당시 대다수 부동산업자는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이라서 단발 업무에 매몰돼 있었다. '봉이 김선달' 같은 기획부동산은 외면했다.
서부정류장의 파생상권을 개발했다. 당시 병원과 식당 등이 즐비했던 대로변에 아웃도어 특화 거리를 만들면 될 것 같았다. 밀레, 네파, 블랙야크 등을 유치시켰는데 예상대로 매출이 올랐다. 이후 그 거리는 아웃도어스트리트로 도약했다가 지금은 병원 거리로 안착한 것 같다.
유명 의류브랜드 매장도 줌인했다. 인디언, 파크랜드, 퓨마, 아식스, 프로스펙스 등에 맞는 점포도 찾아다녔다. 당시 본사 관계자는 점포 간 최적 거리에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본사 직원인 양 적당한 점포를 찜해주었다. 하지만 오프라인 의류시장은 더 가파르게 하강 곡선을 그렸다. 홈쇼핑 등 온라인시장의 습격을 받은 탓이다. 나도 의류 점포개발에서 벗어나 외식업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온라인 시대 생존전략
인터넷에서 정보 얻는 시대
"창업자의 성공이 나의 성공"
올해 초 유튜브 채널 만들어
상권분석·창업아이템 제공
창업의 3가지 핵심 변수
전국 휩쓴 트렌드 이해 우선
입점할 점포 주변 조건 확인
대구만의 특성 파악도 중요
나와 나 밖의 흐름 읽어야
창업을 한 가게 주인과 그 건물주가 함께 잘 먹고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외쳐본다. |
◆봄봄과 설빙 상륙작전에 간여
아내는 늘 불만이다. 남들 창업만 시켜주지 말고 직접 창업해서 돈을 벌어오란다. 나도 잘 안다. 이때 나를 힘들게 하는 지난 시절의 상처가 날 무겁게 한다. 옷가게도 운영해봤고 7호광장 근처에서 직원을 두고 '꼬치짱' 가게도 운영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단거리에 유능한 육상선수가 있는가 하면 마라톤에 적합한 선수도 있는 것이다. 창업을 연구하는 것과 직접 창업하는 건 별개의 건이다.
칠곡 3지구 명성부동산 시절 과로사로 세상을 떠날 뻔했다. 2008년 난치성 궤양성대장염으로 2개월간 사경을 헤맨다. 20㎏ 이상 몸이 축이 난다. 그때 고향 후배가 내게 섬뜩한 충고를 했다. "형님은 고래인데 왜 연못에 있느냐"란 지적이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서 당시 대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7호광장 근처의 삼성부동산으로 간다. 이때 외식업 점포 개발에 나선다.
부산에서 태어나 초대박을 낸 토종디저트카페 '설빙', 그게 대구를 통해 전국적 도약의 발판을 갖게 된다. 2013~2014년 전국에 500여 개의 가맹점이 생겨난다. 삼성부동산에 있던 고향 후배와 설빙 띄우기 편대를 형성해 점포와 점주 개발 업무를 위임받았다.
재차 빽다방 이전에 대구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테이크아웃 커피점 '봄봄'을 대구 80여 곳 등 전국에 300여 개 확산시키는 데도 일조한다. 대만발 대왕 카스텔라 붐이 그렇게 오래가지 못할 거란 예감도 그대로 적중했다. 하지만 내 예상을 벗어난 상담도 있었다. 나는 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답에 가깝게 가는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이젠 '묻지마 온라인' 세상이다. 부동산중개업도 급변했다. 홍보 전단 돌리며 점포 알리는 시절이 아니다. 인터넷이 점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지역에만 무려 2만여 명의 중개업 관계자가 피 튀기는 경쟁을 한다. 그동안 모두 4군데 지역 부동산업체를 돌면서 내 감각도 진화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2015년쯤 창업연구소를 가동하고 네이버 지식사이트에 의류 점포 관련 이야기를 포스팅했다. 지난 1월 김형락창업연구소TV를 유튜브에서 개국했다. 거기서 상권분석, 창업아이템, 트렌드, 프랜차이즈 본사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돌아서면 새로운 가게가 생긴다. 새 트렌드를 알기 위해 동성로는 꼭 월 1~2번 둘러본다. 슬로 터틀, 키스더쿡, 퀴진59-2, 연어초밥 전문점 도마29 등도 최근에 만났다. 나는 '대구 욕망 1번지'를 실시간으로 살고 있다.
◆김 이사 행간읽기
부동산이란 물권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사고파는 것이다. 달라진 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해 집주인과 세입자 간에 묘한 불신문화가 싹트고 있다. 둘 다 희생자가 안 되려면 서로 '동반자'라 생각해야 된다. 그래야 부동산 폭망이 불러올 곡소리도 없을 것이다.
창업자는 자기 생각을 객관화해야 된다. 전국을 강타한 트렌드·브랜드부터 이해해야 한다. 그다음 대구만의 특성, 그다음은 자기가 입점하게 될 점포 주변의 제약조건 등 3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인가? 다들 창업 관계자의 말만 듣고 어렵게 마련한 창업자금을 소진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창업이 연착륙할 수 있게 최적의 가성비를 가진 점포와 걸맞은 창업 아이템, 창업에 수반되는 여러 문제를 무료로 상담해주고 있다. 그들의 성공이 바로 나의 '신용'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창업은 '창조'가 아니다. 현실을 읽어야 한다. 다시 말해 나도 읽고 나 밖의 흐름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 흐름 사이에 나도 하나의 풍향계로 흐르고 있다.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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