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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성의 사주 사랑(舍廊)]- 파요부-운명을 노래하다

2021-01-08 18:05

 

우호성.jpg

서예가들이 즐겨 쓰고 명리가들이 즐겨 읽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라면 한번 읽어보면 좋을 듯한 문장이 있다. 중국 송나라의 명재상으로 불리는 여몽정(呂夢正)의 작품 ‘파요부(破窯賦)’다.

여몽정은 빈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낮에는 절밥을 얻어먹고 밤에는 도자기 굽는 가마에서 잠을 잤다. 그 가마에 깨어진 도자기가 흩어져 있어서 글 제목이 파요부(破窯賦)가 되었다고 한다. 많은 첩을 둔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어머니는 여몽정과 함께 집에서 나와 가난한 생활을 했다.

가난 속에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여몽정은 33세 때 장원급제하여 승승장구한다. 급제 10여 만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자리에 올랐으며 재상을 세 번이나 지낸다. 관리가 된 후 부모를 모시고 함께 살았는데 부모는 한 방을 쓰지 않았다. 이런 일에 개의치 않고 여몽정은 부모 공양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만년에 태사가 된 여몽정은 태자(훗날 진종眞宗 황제에 오름)를 타이르면서 훈계하기 위해 이 글을 남겼다고 한다. 실제로 오만하고 거만했던 태자는 이 글에 감동을 받아 겸허하고 근신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여몽정은 이 글을 통해 운명을 읊조렸다. 인간의 유능과 무능, 성공과 실패, 부유와 빈한, 부귀와 비천, 공명과 무명, 흥망성쇠, 행복과 불행 등이 시(時)와 운(運)과 명(命)에 있다고 노래했다. 재상의 자리에 올라 부귀를 누렸으나 자신이 잘나서 그렇다고 뽐내지 않았다. 여몽정은 ‘인생사에는 時·運·命이 작용한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출세와 부귀영화가 다 내 잘난 덕분에 이뤄진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여몽정은 다음과 같이 강조하는 듯하다.
사람에게는 운명이란 게 있다, 인생에는 다 때가 있다, 성공했다고 까불지 마라, 실패했다고 기죽지 마라,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마라, 처음에 잘 나가다가 나중에 추락할 수도 있고 지금은 고생이지만 나중엔 영화를 볼 날이 있다 時·運·命이 아름답게 오면 당신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희망을 가져라.

새해를 맞아 여몽정의 운명이야기 ‘파요부’를 소개한다.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바람과 구름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화와 복이 있네.
지네는 발이 많으나 뱀을 따르지 못하고
수탉은 큰 날개를 가졌지만 나는 데는 갈가마귀를 앞지르지 못하네.
말은 천리 길을 달릴 수 있지만 사람이 타지 않으면 스스로 갈 수 없고
사람에게는 하늘을 찌르는 뜻이 있지만 운이 없으면 스스로 통할 수 없네.

들은 것으로 생각해 보건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부귀는 바랄 수 없고 빈천은 바꿀 수 없네.
문장이 하늘을 덮었지만 공자(孔子)는 진(陳)나라에서 곤란과 재액을 겪었고
군사전략에 발군이었지만 강태공(姜太公)은 위수에 낚싯대를 드리웠지.
안연(顏淵)은 수명이 짧았지만 남달리 흉악한 무리는 아니었고
도척(盜跖)은 오래 살았지만 어찌 선량한 무리였겠는가?
요(堯)임금은 총명하고 덕이 높았지만 오히려 불초한 자식(丹朱)을 낳았고
고수(瞽叟)는 어리석고 미련했지만 도리어 아주 효성스러운 아들(舜)을 낳았네.
장량(張良)은 원래 벼슬 없는 선비였고 소하(蕭何)는 작은 고을의 벼슬아치로 불렸지.
안자(晏子)는 오 척이 안 되는 키였지만 제(齊)나라의 재상에 봉해졌고
제갈공명(諸葛孔明)은 띳집에서 은거했지만 촉한(蜀漢)의 군사(軍師)가 되었네.

초패왕 항우(項羽)는 비록 영웅이었지만 오강(烏江)에서 패하여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고
한고조 유방(劉邦)은 미약했지만 마침내 중원 천하를 차지했네.
이광(李廣)은 활로 범을 쏘는 위세를 보였으나 늙어서도 봉작이 없었고
풍당(馮唐)은 비범한 재능을 지녔지만 한평생 불우하였네.
한신(韓信)은 아직 중용되지 못했을 때 하루 세끼도 먹지 못했지만
중용되기에 이르러서는 허리에 석 자나 되는 옥도장을 찼고
일단 때가 쇠하자 계략에 말려 죽었지.
처음에 빈곤하였으나 나중에 부유해지는가 하면
늙어서 건강한 반면 젊은데도 쇠약하기도 하다네.

배에 문장이 가득해도 백발이 되어서도 의외로 급제하지 못하는가 하면
재주가 엉성하고 학문이 얕은데도 어린 나이에 급제하여 등과하기도 하네.
깊은 궁원에 있던 미인이 운이 다하여 도리어 기녀나 첩실이 되기도 하고
풍류를 일삼던 기방의 여인이 때가 오면 사대부의 부인이 되기도 하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오히려 어리석고 미련한 지아비를 구하고
지혜롭고 풍채 좋은 낭군이 도리어 거칠고 못생긴 여인과 짝하기도 하네.

교룡(蛟龍)이 때를 만나지 못하면 물고기와 새우들 사이에서 몸을 잠기고
군자도 때를 잃으면 소인 아래에서 두 손을 맞잡고 몸을 굽히네.
의복이 비록 해어져도 언제나 예의 바른 몸가짐을 잃지 않으며
얼굴에는 걱정 어린 표정을 띠어도 매양 편안한 생각을 품네.
불우한 때를 만나면 그저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분수를 지키며 마음에 속임이 없으면 반드시 억눌림에서 벗어나 활개를 펴게 되지.
처음에 가난했더라도 군자는 자연스럽게 뼈대를 생성하게 되고
갑자기 부자가 되었더라도 소인은 주리고 헐벗은 몸을 벗어날 수 없네.

하늘이 때를 얻지 못하면 해와 달이 빛나지 않고
땅이 때를 얻지 못하면 초목이 생겨나지 않으며
물이 때를 얻지 못하면 풍랑이 고르지 않고
사람이 때를 얻지 못하면 좋은 운이 통하지 않네.
복록(福祿)에 뜻을 두어도 명(命)에 이미 안배되어 정해져 있나니
누가 부귀를 바라지 않겠는가?
사람이 타고난 팔자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찌 공경(公卿)이 되고 장상(將相)이 되겠는가?  

 

내가 예전 낙양에서 지낼 때
아침에는 절에서 먹을 것을 구했고 저녁에는 허물어진 움에서 잠을 잤지.
옷이 생각나도 그 몸을 가릴 수 없었고 먹을 것이 생각나도 굶주림을 구제하지 못했네.
윗사람은 나를 미워했고 아랫사람은 나를 싫어했으며
사람들은 나한테 천하다고 말하면서 나만을 경멸했네.
오늘 조정에 있으면서 관직은 최고위직에 올랐고 지위는 삼공에 이르렀지.
몸은 비록 한 사람에게만 굽히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네.
백관들을 통솔하는 지휘봉을 지녔고, 비루하고 인색함을 징계하는 칼을 가졌지.
옷을 생각만 하면 천 상자의 비단이 있고 먹을 것을 생각만 하면 진수성찬이 있네.
밖으로 나가면 장사들이 수레의 채찍을 잡고, 집으로 들어오면 미인이 술 시중을 들지.
윗사람이 나를 총애하고 아랫사람이 나를 옹위하니
사람들은 나를 두고 귀하다고 하지만 나의 능력이 아니라네.
이것은 때(時)요, 운(運)이요, 명(命)이라.

오호라.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을 살다 보면
부귀하다고 다 누릴 수 없고 빈천하다고 스스로 업신여길 수 없으니
기다릴지어다, 천지가 순환하여 한 바퀴 돌아 다시 시작하기를.>

 

 

■우호성<△언론인(전 경향신문 영남본부장)△소설가△명리가(아이러브사주www.ilovesajoo.com 운영. 사주칼럼집 ‘명리로 풀다’출간)△전화: 010-380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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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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