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조지 저서 '진보와 빈곤'
증세로 불로소득 차단 주창
文정부는 보유세 강화 회피
정책 틀 만든 김수현 사단에
조지학파 딱지는 어불성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릴 때면 자주 소환되던 헨리 조지의 이름이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변창흠 신임 국토부 장관이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고 부동산 문제에 천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노무현재단이 운영하는 알릴레오 북스에서 이 책을 다룬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헨리 조지를 언급하는 언론 보도의 내용이 사실과 너무 괴리되어 있어서, 조지스트(헨리 조지를 따르는 사람)를 자처하는 필자로서는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틀을 만든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조지스트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문 정부의 정책이 헨리 조지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김수현 전 실장과 변창흠 장관이 이사로 있는 한국도시연구소가 헨리 조지 사상의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양념처럼 덧붙여진다. 단언컨대 이런 기사들은 대부분 가짜뉴스다. 김수현 전 실장은 헨리 조지를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사상에 역행하는 정책을 추진한 인물이다. 헨리 조지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주창해 세계적인 영향을 끼친 경제학자다. '진보와 빈곤'은 물질적 진보 속에서 빈곤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밝히고 이를 해소할 정책 대안을 제시한 책인데, 결론은 토지보유세를 강화해서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자는 것이었다.
김수현은 대선 캠프 시절부터 2019년 6월 정책실장을 사임할 때까지 줄곧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방향타를 쥐고 있었다. 이 시기 부동산 정책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어떻게든 부동산보유세를 건드리지 않고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 출범 직전 굳이 기자회견을 열어 보유세를 올릴 계획이 없다고 천명하는가 하면, 출범 후에는 재정개혁특별위원회라는 이상한 조직을 만들어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며 미약하기 짝이 없는 보유세 개편방안을 마련한 데서 분명히 입증된다. 여기에 김수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부가 '핀셋방식'의 보유세 강화를 추진한 것은 부동산시장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진 2019년 말에 와서다. 그것조차 김수현이 물러난 뒤의 일이니, 문재인 정부 3년간 부동산 정책의 책임은 오롯이 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보유세의 보편적 강화 없이 투기를 막겠다고 고집하다가 역대 최고의 가격 상승과 역대 최다의 풍선효과를 초래한 인물을 조지스트로 분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의 압도적 영향력 아래 추진된 부동산 정책을 헨리 조지 방식에 따른 것이라 평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필자를 포함해 한국의 진짜 조지스트들은 문재인 정부가 보유세 강화 정책을 회피하는 데 대해 맹렬히 비판해왔다. 부동산 투기는 보유세로 불로소득을 차단하지 않으면 근절할 수가 없고, '찔끔 증세' '핀셋 증세'로는 한 곳을 잡으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는 풍선효과가 불가피하다는 경고도 꾸준히 해왔다. 작금의 부동산 투기 광풍과 전국을 들썩이게 만드는 풍선효과는 헨리 조지 학파의 권고를 무시한 대가다. 사실관계가 이러함에도 언론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헨리 조지 학파에 돌리고 있으니 억울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변창흠 장관 취임 이후 정부는 서울 도심 곳곳에서 용적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등 재건축·재개발을 쉽게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공공재개발이라는 단서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이 정책은 투기를 부추기고 '탐욕의 도시'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그런데 언론은 이에 대해서도 헨리 조지 방식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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