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주는 위로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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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영화를 보다 졸 때가 있다. 대체로 지루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지루함을 동반한다 해서 좋은 영화가 아니란 법은 없다. 이 영화가 그렇다. 살짝 졸릴지는 모르겠으나(취향에 따라 다르겠다) 잊지 못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인상적인 영화다. 얼핏 남녀의 사랑 이야기 같지만 단순한 멜로영화는 아니다. 영화에 대해 말하는, 영화를 향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는 영화다.
미사코는 시각장애인에게 영화 장면을 설명해주는 일을 한다. 어느 날 그녀는 영화 상영회에 나온 나카모리와 의견이 부딪힌다. 그는 유명 사진작가로 하루가 다르게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해설에 비판적인 나카모리와 번번이 충돌한다. 하지만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조금씩 가까워지고 미사코는 어느새 나카모리의 곁을 맴돈다. 나카모리의 사진집에 실린 장소를 찾으며 치유의 여정을 시작한다. 여정의 끝에 만난 것은 '히카리'(영화의 원제. 빛이란 뜻의 일본어)였다.
'앙: 단팥 인생이야기'의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칸이 사랑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이 영화도 칸영화제 경쟁 부문 출품작으로 '앙: 단팥 인생이야기'의 나가세 마사토시가 나카모리 역을 맡아 진중한 연기를 선보인다. 모델 출신의 배우 미사키 아야메가 미사코 역을 맡아 풋풋한 매력을 보여준다. 영화 속 해설은 명배우 키키 키린이 맡았으며, '감각의 제국'으로 유명한 배우 후지 타츠야의 모습도 보인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답게 서정적인 화면들이 빛을 발한다. 자연의 빛을 최대한 이용한 아름다운 풍경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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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
이 영화의 시작은 '앙: 단팥 인생 이야기'의 배리어프리(barier-free), 즉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상영본의 감동이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음성해설가가 자신보다 영화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육체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상상력으로 영화를 감상한다는 사실이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다. 시력을 잃은 나카모리가 '내 심장'이라던 카메라를 바닷속으로 던져버리는 장면, 그가 마지막으로 찍은 미사코의 얼굴, 미사코의 엄마가 산 위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장면 등등.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엔딩 자막이 흐른 후 실제로 배리어프리 상영관에서 환하게 웃으며 영화를 감상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의 모습이었다. 그 표정은 영화의 힘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부모 없이 자란 외로운 소녀였던 그녀가 영화를 만들며 치유된 것처럼 상처 입은 이들이 영화를 통해 위로를 얻기 바라는 것이다.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갈 이유를 말해주는 이 영화는 영화를 향한 감독의 사랑이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며 그간 영화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동시에 관객들로 북적이던 극장이 새삼 그리워진다.
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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