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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스토리텔링 2010] 동해안 일천리 이야기 세상 <6> 이하석의 ‘망부석 촛대바위’

2021-05-2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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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는 이런 노래가 있다.

해중(海中)에 솟은 섬이 아마도 명지(名地)로다
산천에 있는 풀이 약초가 반이 넘고
지중(地中)에 솟은 물이 물맛도 기이하다
풍토가 순하기로 인가에 병이 적고
육지가 머자 하니 인품도 후하더라
술을 하야 서로 청코 밥을 하야 논아 먹고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가사이다. 울릉도는 그렇듯 좋은 곳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바다 안의 무릉도원이라 해서 무릉도라 부르기도 했다. 섬에 사는 이들의 마음이 온후하고 정이 끈끈함은 예부터 잘 알려져 왔다. 그런 마음은 ‘산을 지고 집을 짓고 난글 비고 밭을 내’는 한 평생에서 한결같았다. 그래서 사람 사는 일에 따르는 불행과 궂은일에도 짐짓 여유를 잃지 않은 채 멀리 앞을 내다보는 것이리라. 그런 마음으로 지아비는 지어미를 챙기고, 지어미는 지아비를 우러르며, 부모는 자식을 참으로 귀히 여기고 자식은 부모를 지극하게 섬기고 봉양해왔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곳, 후덕한 인심의 섬에서 조차 기쁜 일 보다는 슬픈 일이 더 잘 드러나니, 세상살이가 참으로 묘하고 요상하지 않은가.
 

저동마을에 그런 슬픈 얘기가 전해온다.
 

‘먼, 먼 옛날, 바닷가 오막살이집에 한 늙은 아버지와 어린 딸이 살고 있었다’라는 말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내는 일찍 죽었다. 달랑 하나 남은 딸이 곱다. 아비는 그런 딸을 늘 감싸 안고 돈다. 딸은 그런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챙긴다. 그러나 가난이 늘 문제다. 부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조그마한 배 한 척과 손바닥 만 한 밭뙈기가 전부다. 그래도 틈틈이 고기를 잡고, 밭에는 옥수수를 심어 거름을 주고 김을 맨다.
 

그런데, 올해는 옥수수 농사가 엉망이다. 날씨 탓인가, 흉작도 그런 흉작이 없다. 옥수수 농사가 잘 되면 그해 겨울은 그런대로 굶지 않고 지낼 수 있는데, 당장 끼니가 걱정이다.
 

“큰일이다. 고기나 많이 잡아 그걸 팔아 양식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라야지.”
 

노인은 어구를 챙겨 배에 싣는다. 작은 배니, 파도가 조금만 쳐도 가랑잎처럼 흔들린다. 그런 배로 너울이 잦은 먼 바다로 나가는 건 무리다. 그래도 노인은 매일 배를 타고 제법 먼 데 까지 가서 고기를 잡곤 한다. 노인 혼자인데다 자그마한 배니, 고기가 많이 잡힐 리 만무하다. 겨우 몇 마리 씩 잡아 그걸 팔아 옥수수랑 조를 사선 거친 끼니를 때운다. 말린 푸성귀를 넣고 그걸로 죽이라도 끓이면 그 맛이 그저 그만이려니 여긴다. 다만 제 어미를 닮아 눈이 초롱초롱하고 얼굴이 갸름하니 예쁜 딸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 그렇게 하루하루 끼니를 마련하는 판이니, 쉴 틈이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다로 나가야 한다.
 

해거름 무렵이면 딸은 바닷가에서 언제나 아버지를 기다린다. 자그만 파도에도 마음을 졸인다. 그러다가 멀리 아버지의 배가 보이면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누르며 비로소 안심한다. 때로는 혼자서 먼저 간 어미를 그리워하며, 아버지를 기다리는 불안을 달래보기도 한다.

보고 제라 보고 제라 우리 엄마 보고 제라
이산 저산 남산 밑에 그 밑에라 쾨산 밖에
끝끝 없는 동박남게 우리 동상 앞에 찌고
청태산 꾀꼬리야 망태산 비들기야
저 새 소리 들어봐라 옷을 바래 저래 우나
옷도 싫고 밥도 싫고 어린 동상 앞에 찌고
청태산 꾀꼬리야 영매대왕 들가거든
우리 엄마 보시거든
구름 거게 젖 한 방울 전해주소
바람 거레 젖 한 방울 전해주소

물론 동생은 없지만, 흡사 어린 애를 업고 있기라도 한 듯이 등을 추스르기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부르고 또 부르고 몇 곡이나 부르다보면 멀리 아버지의 배가 돌아오는 게 보이는 것이다.


“아이고 아부지. 아부지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될 뻔 했네.”
 

딸의 어리광에 아버지는 고기를 내려놓다 말고 “큰 일 날 소리. 이렇게 애를 태우면서 바닷가에 서 있지 말고, 느긋하니 집에서 기다리거라.”라고 짐짓 타이른다.
 

“파도 소리에 맘이 졸여서 그렇게 되나요.”
 

“나는 괜찮다.”
 

그날도 아버지는 배를 타고 나간다.
 

쾌청하고 바람도 없는 날씨였는데, 오후 늦게 눈발이 뿌리더니 파도가 거세다. 딸은 걱정이 되어서 자주 마당에 나와 포구 쪽을 바라본다. 눈발이 점점 더 거세진다. 먼 바다 쪽은 너울이 자꾸만 넘어오고 있다. 불안하다. 그 작은 배로 저 너울을 건너오는 건 참으로 위험하다. 딸은 바닷가로 달려 나간다. 바닷가에는 아무도 없다. 이맘때면 몇 사람이 나와 배를 기다리곤 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이 달랑 혼자다. 날씨를 예측하고 아무도 배를 내지 않았던 것 같다. 딸은 더욱 불안해진다.
 

겨울 저녁은 빨리 온다. 벌써 제법 눈이 쌓였다. 어둠이 이내 짙게 내려앉으면서 파도소리가 거세진다. 이런 날은 노래를 부를 수도 없다. 눈을 두 손으로 문지르면서 자꾸만 바다 만 바라본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이 나와 바다 쪽으로 기우는 딸을 끌어당긴다.
딸은 밤새 뜬 눈으로 지샌다. 그 이튿날에도 딸은 바닷가에 종일 서 있다.
 

“아버지, 아버지, 왜 돌아오지 않으세요? 이러다가 망부석이 되겠네!”
 

딸은 섧게 운다. 먹는 것도 잊고, 자는 것도 잊은 채 바닷가에 서성이며 아버지를 기다린다.
“애구, 이러다 큰 병이 나겠네. 뭐라도 좀 먹으렴. 아버지는 못 돌아오실 거다. 너는 우짜든동 기운 차려 잘 살아야지.”
 

동네 사람들이 저마다 밥과 죽을 쑤어서 갖다 주면서 딸을 달래지만 딸은 막무가내다.
 

“아버지는 돌아오실 거예요. 꼭 돌아오실 거예요.” 딸은 자신의 믿음을 다짐이라도 하듯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한사코 바닷가에 나간다.
 

며칠을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은 채 바닷가를 서성인 딸의 정성을 하늘이 도와서였을까? 문득 아버지가 며칠 뒤에는 돌아오리라는 이상한 예감이 든다. 바닷가로 달려 나간다. 반가움에 왈칵 눈물이 솟구치면서 어서 배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눈을 손등으로 문지르면서 보고 또 본다. 멀리 파도 사이로 배가 돛을 단 채 섬으로 오는 게 보인다.
 

“배가 들어온다!” 딸이 소리친다. 손을 흔든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배는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딸은 자꾸만 손을 흔들며 “아버지! 아버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친다.
 

그러자 배에서 “곧 가마!”라는 화답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 제가 마중을 나갈게요.”
 

딸은 배 있는 쪽으로 달려 나간다. 바다 속으로 텀벙 뛰어든다. 딸의 소리에 놀라 나온 동네 사람들이 말릴 틈도 없이 능숙하게 헤엄쳐나가기 시작한다. 다시 눈발이 뿌리기 시작한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저것이 헛것을 보고 미쳐버렸어!”


동네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남자들은 딸을 건지려고 배의 줄을 푸느라 부산하다. 그러나 배가 뜨기도 전에 딸의 몸이 스르르 차가운 파도 속으로 잠겨든다.
 

“아버지!” 딸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문득 몸을 솟구쳐 올린다.
 

아아, 동네 사람들은 그 때 장엄한 광경을 본다. 솟구친 몸이 그대로 바위가 되어 우뚝 서는 것을.
 

저동 해안의 물 위에 서 있는 큰 바위가 그 때 그 바위라 한다. 사람들은 ‘효녀바위’라 부르기도 하고, ‘촛대바위’라고도 부른다. 지금도 망망대해를 향해 선 그 바위를 보며 자상한 아비와 지극한 효녀의 넋을 떠올린다.
이하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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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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