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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포항 언택트 관광명소 .5] (역사와 문화 스토리)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과 영일 장기읍성·장기유배문화체험촌

2021-06-21

영일만은 기억할까, 1800여년 전 연오·세오 떠난 사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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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은 삼국유사에 수록된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모티브로 포항시 동해면 임곡리에 조성한 공원이다. 언덕 위에 들어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영일만 너머의 도시와 바다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망망한 바다. 망망한 하늘이다. 빛은 얼마나 눈부신지 마침내는 눈앞이 깜깜해지고 만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인 157년, 이 바다를 가로질러 연오랑이 떠났다. 연오랑을 찾아 세오녀도 떠났다. 그러자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깜깜해진 세상에서 허둥대던 사람들은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망망한 하늘에 제를 올렸다. 그러자 해와 달이 다시 빛났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살았던 동해 바닷가, 이곳은 태양을 맞이하는 바다 영일(迎日)이다.

#1.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호미곶이 시작되는 동해면 임곡리(林谷里)에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이 있다.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는 가벼운 산 언덕에서 양팔을 뻗어 영일만 바다를 한껏 안은 곳이다. 임곡은 조선시대에 임곡포(林谷浦)라 했다. 경상도 4진의 하나인 영일진이 있었던 포구로 '태종 17년인 1417년, 임곡 포구에서 6리 20보 지점에 영일진을 설치하고 이 고장의 중심 진영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공원의 배면을 든든하게 감싸는 산자락에 400m 정도의 호젓하고 느슨한 길이 이어지는데 수목의 가지들이 얇은 커튼의 주름처럼 바다를 가르고 또 바다를 연다. 길 가운데 찬탄할 만한 소나무들에 둘러싸인 정자가 있다. 그곳에 서면 임곡은 과연 나를 숨기고 만 전체를 조망하는 최적의 장소임을 느끼게 된다.

공원의 시작은 '연오랑뜰'이다. 타일로 마감한 옹벽에 연오랑세오녀의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소개돼 있다. '연오랑뜰'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길의 양쪽에는 '한국뜰'과 '일본뜰'이 있다. 서로 다른 정자, 서로 다른 연못, 그리고 수로를 따라 햇빛에 데워진 물줄기가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 뜰은 두 나라의 우호와 교류를 위해 조성했다고 한다. 길 끝에는 전시실인 '귀비고(貴妃庫)'가 공원의 중심으로 서 있다. 귀비고는 세오녀가 짠 비단을 보관했던 창고의 이름이다.


신라전설 토대로 테마공원 만들어
전시실 '귀비고'·신라마을 등 조성
일월대 오르면 탁 트인 동해 한눈에
장기면은 송시열·정약용 등 유배지
읍성 인근에 장기유배문화체험촌



전시실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를 쉽게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옥상에는 카페와 바다가 내다보이는 야외 테라스가 자리한다. 귀비고 앞 둔덕에 '쌍거북바위'가 바다를 향해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타고 간 바위이자 세오녀가 짠 비단을 싣고 돌아온 바위라는 설이 있다. 좋은 기운을 준다고 해서 '기바위'라고도 불린다.

귀비고의 오른쪽으로 '철예술뜰'이 펼쳐진다. 잔디밭 위에 도자기 모양의 커다란 철제 조형물이 서있다. 이제 막 해저에서 건져낸 듯 짙은 녹물 색을 머금은 강철의 곡선이 강렬하다. 앞쪽 바닷가에는 신라마을이 있다. 초가들과 정자, 대장간 등이 돌담길로 이어진다. 집들은 '연오댁' '세오댁' '도기야댁'이다. '도기야(都祈野)'는 연오랑세오녀의 이야기 속에서 해를 맞이하기 위해 제사를 지낸 들판이다. 임곡리와 이웃한 도구리(都邱里)가 바로 그 전설의 마을로 알려져 있다. '도기'는 '달'을 가리키는 옛말로 '돋아남'을 가리키는 '돋기'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즉 '도기야'는 '달이 떠오르는 들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초가 마루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시오'라는 푯말이 있다. 바다를 향해 난 창은 멋진 포토존이다. 바닷바람이 들락거리는 마루에 드러누워 보기도 하고 다듬이를 두드려도 본다.

공원의 가장 아래에 커다란 누각인 일월대가 있다. 누각에 오르면 놀랍도록 시원한 바람과 함께 커다란 만 너머의 도시와 동쪽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찬다. 영일만은 나무랄 데 없는 곡선으로 멀어지고, 만의 가장자리를 따라 거대한 기중기의 강철 턱들과, 한 번도 불 꺼진 적 없는 포스코의 고로(高爐)들과, 백금처럼 번쩍이는 고층 건물들이 맹렬한 포말처럼 부글거린다. 이곳에서는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지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월대는 마치 별들의 운행을 관장하는 상제(上帝)처럼 위엄 있게 서있다. 이 모든 으쓱함과 만족감에도 바다는 무심하다. 무심한 바다, 망망한 바다, 그래서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바다, 파도를 붙잡고 애걸하고 싶은 바다, 그렇게 해와 달과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에 잊지 못할 얼굴을 부여하는, 영일의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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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 장기읍성은 고려 현종 때 여진족의 침입을 대비해 쌓은 성으로 처음에는 토성이었다. 이후 세종 때인 1439년에 석성으로 더욱 강건하게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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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유배문화체험촌에는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머물렀던 적거지가 재현돼 있고, 유배 가마와 다양한 형벌을 체험할 수 있다.

#2. 영일 장기읍성과 장기유배문화체험촌

호미곶 남쪽은 포항의 최남단인 장기면이다. 장기면의 진산인 동악산에서 동쪽으로 내민 산등성이에 옛 장기읍성이 있다. 산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가파르다. 긴박한 사선으로 떨어지는 산자락 위 하늘과 맞닿은 자리에 성벽의 가장자리가 보인다. 쌓아올린 성벽이 산을 키워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기분이 들지만 이내 터만 남은 문이 열린다. 동문이다. 나무 한 그루가 파수꾼처럼 서 있고 그 뒤로 '배일대(拜日臺)'라 새겨진 바위가 보인다. 뒤돌아보면 장기들판 너머 멀리 동해 바다가 선명하다.

영일 장기읍성은 고려 현종 2년인 1011년 여진족의 해안 침입을 대비해 처음 쌓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토성이었고 성 안에 관아와 마을을 두고 언제나 바다를 지켜보았다. 그 뒤 세종 때인 1439년에 석성으로 더욱 강건하게 쌓았다. 그때 동해안을 어지럽히는 자들은 왜구였다.

성벽 위에 오르면 성은 산정의 굴곡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천천히 상승하고, 평탄하다가도 깊이 떨어져 다시 날아오른다. 기류를 타고 나는 새의 활공 같은 느슨한 집중이다. 전체 둘레는 약 1.44㎞, 곳곳에 12개의 치성이 뻗어 나가 있다. 서쪽으로는 산이 연이어지고 남쪽과 북쪽으로는 주변 마을이 멀다. 고립된 섬처럼 외로운 성이다.

지금도 성안 마을에 사람들이 산다. 마을을 둘러싼 공기가 조용하다. 이따금 개가 짖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멈춘다. 커다란 대숲들이 파도 소리를 낸다. 유실수에 꽃이 피었다. 바람은 잔잔하고 햇살은 따사롭다. 마을의 한가운데에 향교와 동헌 터가 남아 있다. 동헌은 면사무소로 이전해 보호하고 있다.

장기는 유배지였다. 우암 송시열은 숙종 때 복상문제로 이곳으로 유배돼 약 5년간 머물렀다. 그는 이곳에서 '주자대전차의'와 '이정서분류' 등의 책을 썼고, 많은 시문을 남겼다. 마을 사람들은 우암을 통해 유학의 진수와 중앙 정계의 동향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우암은 숙종 5년인 1679년에 자신이 머물던 사관의 느티나무를 베어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는 거제도로 떠났다.

다산 정약용은 1801년 신유년의 천주교 박해 때 이곳에 유배돼 7개월 정도를 머물렀다. 다산은 이곳에서 마을 사람의 삶과 고을 관리의 목민형태를 부옹정가, 기성잡시 27수, 장기농가 10장, 오적어행 등 130여 수의 글로 남겼다. 읍성 아래 장기초등학교 교정에는 우암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고목이 아직 우뚝하고 그 옆에는 우암과 다산의 사적비가 나란하다. 다산과 우암은 영일 장기읍성의 배일대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장기에 유배된 이들은 220여 명에 이른다. 그들은 우암과 다산과 같은 석학들이거나 지식인 또는 중앙의 고위 관료들이었다. 이들은 장기에 머물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지역민과 교류하면서 지역 선비들을 교육했다. 그들로 인해 장기에는 학문을 숭상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고, 서원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다. 장기읍성 북문에서 '다산과 우암의 사색의 길'을 따라 가면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이 있다. 우암과 다산이 머물렀던 적거지가 재현돼 있고 유배 가마와 다양한 형벌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외에도 전통놀이체험, 전통음식체험, 한지뜨기, 베틀짜기, 고서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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