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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나의 추억 속 감자

2021-08-04
김점순

"할머니가 보내셨구나. 이 많은 감자를/야 참 알이 굵기도 하다/(중략)/할머니가 보내 주신 감자는/구워도 먹고 쪄도 먹고/간장에 조려 두고두고 밥반찬으로 하기로 했다."(장만영의 '감자' 중)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동시다. 일반 가정에서 감자가 얼마나 요긴한 먹을거리였는지를 느끼게 하는 동시다.

얼마 전 귀촌한 지인이 택배로 감자를 보내왔다. 전원주택에 딸린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란다. 감자를 심고 수확하기까지 필자를 생각했다는 마음이 감자에서 묻어나는 듯 해 먹는 내내 감사했다.

택배 상자를 보면서 추억 하나가 살아난다. 1960년대 말 하루에 대여섯 번 대구를 오가는 완행버스는 사람 반 보따리 반이다. 필자의 부모님은 백미에서 고른 앵미 같은 사위를 얻었다.

그해 여름 수확한 감자 중 굵고 보기 좋은 감자만 골라 비료 포대에 담아 곱게 꼰 새끼줄로 야무지게 포장했다. 행여나 짐이 바뀔까봐 표시까지 해뒀다. 대구에 사는 사위와 딸도 보고 감자도 먹이고 싶은 생각이었다.

완행버스는 3시간을 달려 대구에 도착했다. 완행버스에 실린 보따리 수는 탑승한 사람 숫자보다 더 많았다. 버스에서 내리려던 엄마는 눈을 의심했다. 아버지가 표시까지 해 준 감자 포대가 사라지고 없었다. 앞서 내린 누군가가 잘못 가져간 것이다. 탑승한 사람들이 다 내리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은 포대에 반만 담긴 꼬마 감자였다. 그 이후 다시 굵은 감자를 딸 집으로 보냈다는 후문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 감자는 훌륭한 간식거리이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날 저녁 해거름이면 엄마는 밭에서 키운 감자 몇 알과 잘 익은 옥수수 몇 개 꺾어서 삶아 마당의 멍석으로 내놓는다. 아버지는 커다란 쑥을 잘라 자식들이 모기에 물릴까 염려해 모깃불을 피운다.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헤아리면서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다 잠이 들면 잠이 깰라 조용히 안아서 방에다 누이었다.

낡은 숟가락으로 껍질을 벗긴 감자 몇 알을 밥솥에 얹어 찐 감자를 젓가락에 끼워 후 불며 먹던 감자 맛은 최고였다. 그 기억을 살려 감자 칼로 예쁘게 깎아 전기밥솥에 찐 감자를 젓가락 끝에 꿰어 먹어보지만, 그때 먹던 감자 맛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감자도 솥도 찌는 사람도 먹는 입도 찌는 방식도 식생활 수준도 모두가 그때의 것이 아니다. 감자 껍질을 벗기느라 손바닥이 얼얼했던 아픔이 배어 있지 않고 한 개라도 더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려던 엄마의 사랑이 스며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감자하면 가난, 산골 마을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제 감자는 프렌치프라이, 스낵 등으로 변신하여 가치를 높이고 있다. 야외에 나가서 쿠킹포일에 감자를 싸서 바비큐 숯에 구워 먹고 햄버거 가게에서 감자튀김을 사 먹으면서 요즘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고급 레스토랑 스테이크 접시에도 감자가 자리하고 있다.

추녀 끝 고드름처럼 달려있던 애틋한 감자의 추억은 고드름이 녹아 흔적이 없듯이 우리의 삶에서도 아련한 추억으로 녹아버린 것이다.

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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