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뻥 뚫리는 204㎞ 해안 자동차 타고 힐링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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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은 길게 뻗은 해안선을 따라 쉼 없이 달릴 수 있는 '드라이브 성지'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따라 달리다 보면 경쾌한 바위들과 순한 모래사장이 무심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아기자기한 항구와 해변을 만날 수도 있어 일상에 지친 심신을 한꺼번에 달랠 수 있다. |
포항의 해안선은 204㎞. 경북 전체 해안선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중 영일만의 북쪽 해안은 부드러운 물결 모양으로 흐르며 곶과 만을 차례로 드러낸다. 경쾌한 바위들이 하나의 곶을 만들면, 돌연 순한 모래사장이 무심하게 나타난다. 20번 지방도와 그로부터 갈라져 나온 해안로를 따라 암석 해안과 사빈 해안의 대조와 균형을 누리는 길이다. 남쪽 해안은 아기자기한 항구와 해변을 무시로 구경하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달리는 맛이 좋다. 31번 국도와 929번 지방도를 따라가며 옛 도로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칠포에서 화진까지 북으로, 도구에서 장기까지 남으로, 그 다채로운 바다를 달린다.
#1. 칠포에서 화진까지 북으로(칠포리~오도리~월포리~화진리)
곡강천이 바다와 만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길고 긴 칠포해수욕장의 백사장이 펼쳐진다. 칠포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의 길이가 2㎞나 된다. 너른 사빈 뒤로 한 단 높은 사구가 펼쳐지고, 사구 뒤로 몸 전체가 기울어진 소나무들이 숲을 이뤄 해풍이 힘을 과시하고 있다. 해수욕장의 배면으로 난 해안로를 따라 언덕을 넘는다. 왼편으로 곤륜산의 턱밑을 스친다. 길 가의 좁고 긴 밭 위로 수평선이 연하게 그려지면서 멀리 칠포항 방파제가 보인다. 칠포1리 고샅길에서 암각화 이정표를 본다. 한국 최대의 암각화군이라는 칠포리 암각화는 곤륜산을 중심으로 청하면 신흥리까지 넓게 분포한다. 그중 곤륜산에서 발견된 검파형 암각화는 한반도 남부에서 조사된 유형 중 최대 규모다. 칠포1리의 지붕들과 대문들 가운데로 난 언덕길을 살그머니 오른다.
북쪽으로 달리면
칠포해수욕장 2㎞ 모래사장 펼쳐져
암각화군·해오름전망대 등 볼거리
이가리 닻 전망대는 독도수호 염원
길은 한동안 벼랑에 매달리듯 나아간다. 바위들의 정수리 위로, 물살에 씻겨 반드러워진 돌들을 내다보며, 낭떠러지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을 스치며 간다. 그러다 저기 벼랑 사이에 숨겨 놓은 듯한 범선의 뱃머리를 본다. '해오름 전망대'다. '해오름'은 2016년 포항~울산 고속도로의 완전 개통을 계기로 포항, 울산, 경주 3개 도시가 함께 맺은 동맹의 이름이다. 뱃머리에 선 사람이 먼 바다로 향하고 있다. 칠포리와 오도리를 잇는 해안은 거친 갯바위의 연속이다. 아찔한 벼랑과 절묘한 파식대지, 툭 내려서 우뚝 선 바위들과 와글와글 낮은 포복으로 구르는 돌들의 해안이다. 괴석들의 해안선은 오도1리의 방파제까지 이어지고, 마을 앞바다의 오도섬이 마치 방파제와 연결된 듯 누워 있다. 깨끗한 모래밭이 초승달처럼 빛나는 오도리 간이해수욕장을 지나 펜션이 무리지어 늘어선 언덕을 넘는다. 잠시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바다를 지나고 묵은봉 아래 넓게 자리한 사방기념공원을 지난다. 무릎에서 찰랑거리는 듯한 바다와 함께 오도항을 지나 청진리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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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리에 접어들면 오솔길 같이 펼쳐진 도로가 호젓한 풍경을 자아낸다. |
길은 아주 천천히 높아지고 조금씩 바다와 멀어진다. 그사이 청진리가 바다에 안겨 모습을 감추고 어느새 이가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항구의 마을 끝자락에서 상승하는 해안선을 따라 해송의 숲이 시작된다. 해송의 줄기 사이로 갑자기 낮아진 바다가 보였다가 금세 이가리 간이해변이 가까이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상승하는 해송의 숲이다.
용산 자락의 부드럽게 굽이진 길을 오르면 벼랑의 해송 숲에서부터 부드러운 모래와 거친 돌들을 지나 바다를 향해 전망대가 뻗어 있다. '이가리 닻 전망대'다. 닻머리는 102m 앞바다에 걸려 있다. 이곳에서 독도까지 거리는 251㎞, 이가리 닻 전망대는 독도 수호의 염원을 담아 화살처럼 뻗어 있다. 용산 자락의 벼랑진 길을 넘으면 용두리다. 용두리 간이 해변을 지나 제법 너른 들을 가로질러 서정천을 건너면 월포다.
월포의 길고 긴 모래사장을 가늘게 뜬 눈으로 오래 바라보며 달린다. 길이가 1.2㎞에 달하는 백사장이 눈부시다. 청하천에 놓인 갈매기 모양의 다리를 건너면 월포항이다. 고래가 그려진 방파제에서는 이른 아침마다 갓 잡아온 횟감의 경매가 이뤄진다. 낮은 언덕을 넘으면 천 년 전의 대왕 고래뼈가 발굴돼 이름난 방어리다. 왼편으로는 들이 넓고 오른편으로는 해안을 따라 꽤 길게 마을이 이어진다. 어느새 조사리 표석을 지나치고 너른 광천 하구를 건너 솔밭 그늘이 짙은 조사리 간이해변과 방석리를 지난다.
봉화산 자락을 넘으면 화진이다. 전형적인 어촌마을인 화진1리를 지나 산랑천 맑은 물이 조용히 바다가 되는 곳에서부터 모래밭이 시작된다. 작으나 무성한 솔밭과 함께 길이 400m의 화진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이제 말머리산의 동남자락을 따라 7번 국도에 오른다. 지경천이 영덕과 포항을 가른다. 지경교 남쪽까지가 포항 땅이다. 지경항의 방파제가 느슨한 매듭처럼 놓여 있다. 바다는 항구적인 지속성으로 땅에 와 닿고, 땅은 한결같은 너그러움으로 바다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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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 해변은 활처럼 유려한 곡선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코스다. |
#2. 도구에서 장기까지 남으로(도구리~흥환리~호미곶~구룡포~장기)
영일만의 남쪽 모서리는 활처럼 유려한 곡선의 모래사장,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위를 타고 바다 너머로 떠나갔다는 전설의 도구 해변이다. 여기서부터 해안선은 호랑이의 꼬리 윗선을 그리며 북동진한다.
임곡항을 지나면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이 나타난다. 잠시 멈춰 영일만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뾰족한 바위가 서 있는 입암리를 지나 길가에서 반가운 빙혈을 만난다. 여름에는 찬바람이,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신비한 굴이다. 마산리 하선대 이정표를 스친다. 칠석날이면 동해의 용왕이 선녀들과 놀았다는 전설의 바위섬이다.
갯바위가 즐비한 가까운 바다를 지나 긴 언덕길을 넘으면 흥환 간이해수욕장이다. 길 가에 멋있게 자라난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해변길에서 '장기 목장성 비각'을 만나고 봄이 되면 꽃이 만발한다는 발산리를 지난다. 꼬불꼬불한 해안도로에서 아이를 업고 영일만으로 걸어가는 장군바위를 스치고 모감주나무 군락지를 지나 산길을 달려 호미곶면으로 접어든다.
남쪽으로 달리면
도구해변 연오랑세오녀 전설 간직
신비한 빙혈·국립등대박물관 만나
용암이 만든 삼정리 주상절리 비경
대동배리 포구 앞에 원뿔 모양의 노적암이 머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세우고 있다. 자갈과 갯바위의 해안을 지나 길이 굽이굽이 흘러 아주 높아졌다가 내려서면서 구만리 바다가 열린다. 구만길에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박혀 있다. 바람과 파도가 거센 날이면 청어떼를 토해냈다는 바다, 그 청어를 사람들이 까꾸리(갈고리)로 끌어 모았다고 까꾸리계라 부른다. 적요한 구만길이 요란한 손뼉처럼 활짝 열린다. 대보항이다. 방파제들은 내항의 바다를 주름살 하나 없이 펴놓았고 그 문진 같은 방파제 너머로 갯바위들이 새떼처럼 앉아 곶을 향해 와글와글 전진한다. 백색의 호미곶 등대가 전환점의 깃발처럼 솟아 있다. 등대박물관 외벽의 포장마차들을 지나 모퉁이를 돌면 호미곶 광장이다. 전진해온 바위들의 집합소처럼 호미곶의 바다에는 파랑이 깎아 놓은 평평한 파식대가 펼쳐져 있다. 그사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나간 전망대와 바닷속에서 솟구쳐 오른 '상생의 손'을 지나면 확연한 남진이 시작된다.
암석해안은 길게 이어지고, 해안길은 강사리 송림촌으로 접어들자 말없이 고요해진다. 관을 쓴 선비 같은 관암, 매 같은 매바위, 까만 흑암, 노란 황암이 수놓인 바다를 지난다. 없는 것이 많다는 다무포의 맑은 모래밭이 잠시 펼쳐지고, 곧 뾰족한 바위가 아흔아홉 골짜기를 이뤄 병풍처럼 서있는 석병리에 닿는다. 석병리에는 한반도 최동단이라는 땅 끝 표지석이 있다.
과메기 덕장으로 유명한 삼정리 마을과 신선이 놀았다는 관풍대를 지나면 길은 서서히 오르면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단애 아래로 비경을 드러낸다. 삼정리 주상절리 지대다.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분출되던 바로 그 순간이 저기에 펼쳐져 있다. 절벽을 넘어 내려서면 구룡포 해수욕장이 반달처럼 환하고, 이어지는 구룡포항은 비할 데 없이 벅적하다. 구룡포만의 남쪽 끝 용두산 아래에는 병포리가 자리하고 여기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길게 형성된 하정리까지는 겨울철 오징어 덕장이 장관이다. 길은 바다와 조금 떨어져 거침없이 나아간다. 장길리의 곶에서부터 길게 뻗은 보릿돌교와 복합낚시공원의 아기자기한 풍광을 지나친다.
길은 구평리 지나 장기면으로 들어선다. 장기면의 해안은 산을 등지고 바다에 임한 좁고 긴 땅이다. 곶의 벼랑과 단구의 면과 산의 아랫자락은 끊임없이 파도에 젖는다. 뇌성산 자락에 기대있는 모포리와 크고 깨끗한 모래해변이 있는 대진리, 마을 한가운데에 갓 모양의 바위가 있는 영암리, 장기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에 일출암이 솟아있는 신창리를 지난다. 커다란 양포만과 회재 이언적의 칠언절구 시비가 있는 계원리 소봉대를 스친다. 도로가 절벽 아래로 수많은 바위를 보내고 부드러운 고개를 넘었나 싶을 때 지경(地境)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을 만난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 두원리, 이곳이 포항 해안선의 남쪽 끝 또는 시작이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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