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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청도 유호연지는 지금 초록 우산에 연분홍 물감 찍은 듯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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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초록우산을 펼쳐 놓은 듯한 연잎 사이 사이로 연분홍 꽃이 섬처럼 피어있는 경북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유호연지. 멀리 군자정이 보인다.

경북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유호연지는 온통 푸른 물결이다. 무수히 많은 초록 우산을 펼쳐놓고 연분홍 물감을 찍어놓은 것 같다. 잎에 맺힌 이슬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구슬 같다.

연잎이 바람결에 일렁인다. 연꽃 만나러 오는 바람일까. 아니 만나고 가는 바람일까. 어디선가 시의 한 구절에 맑은 향기가 실려 오는 듯하다. 성급한 봉오리가 벌써 여기저기서 분홍빛 속살을 드러내며 연밥을 밀어 올리고 있다.

연못 가장자리 정자가 전통의상처럼 의젓하다. '군자정'이란 현판의 글씨가 운치를 더한다. 풍류를 아는 선비가 이곳에 정자를 지었을 것이다. 화중군자라 불리는 연을 벗하여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으리라.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둑 주변 군데군데 연꽃을 노래한 시비가 세워져 먼저 이곳을 다녀간 이들을 생각나게 한다. 청도 출신 시조시인 남매의 시가 발길을 붙잡는다. 산책로를 따라 배롱나무꽃도 둘러있어 연꽃과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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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유호연지 가장자리에 위치한 군자정이 초록의 연잎 위에 떠있는 듯한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래전 낙향한 선비가 이곳에 연을 심고, 정자를 지어 후학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매년 연꽃이 절정을 이루는 팔월 중순이면 군자정에서는 글을 짓고 강론하는 강계(講契)가 열렸고, 계원이 수백 명에 달하였다. 선비들이 불편 없이 계회를 마칠 수 있게 처음에는 문중의 며느리들만 모였으나 차차 출가한 딸들도 모여 자주 만나지 못하는 정한을 풀었다.

이후 며느리들과 딸네는 연못에서 모여 선대의 덕업을 기리고, 가문의 우애를 돈독히 하며 후손들에게 덕문이 되기를 바라는 모임이 되었다. 이러한 미풍이 타성에까지 미치게 되어 '반보기'의 유풍이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아낙네의 바깥나들이가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반보기는 그나마 여인들의 숨통이 아니었을까. 농한기나 명절을 전후하여 일 년에 한두 차례 이뤄지던 이 세시풍속이 그나마 여인네들에겐 손꼽아 기다리는 소풍날이었을 것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시댁에서 반, 친정에서 반이 되는 거리에 풍광 좋은 장소를 택하여 친정엄마와 딸은 눈물의 해후를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이 고작 반나절, 반이 되는 거리에서 식구들을 다 보지 못하고 반만 보고 오는 길이기에 반보기일까. 눈물이 앞을 가려 친정엄마 얼굴이 반만 보여서일까.

천윤자
천윤자 시민기자

우리 세대는 친정 나들이가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기다리는 엄마를 늘 목마르게 했던 살갑지 못한 딸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필요할 때만 찾는 이기적인 딸이다. 세상일에 지치고, 때로 서럽고 억울한 일을 당할 적이면 찾아가 일러바치고 응석 부리며 한바탕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다. 연잎처럼 넓은 품으로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던 든든한 후원자는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 번 떠난 후 꿈속에서라도 찾아오지 않아 서운해질 때가 있다. 세상일 미련 없이 훨훨 떠나고 싶었을까. 이승과 저승의 중간 어디쯤에서 반보기라도 할 수 있다면 찾아오실까.

글·사진= 천윤자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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