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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실장 |
언론은 '정론직필'의 대의에 복무할 뿐이요, 진영과 정파, 사(私)의 소리(小利)에 빠져선 안 된다. 미디어(media)의 어원 medium은 '중간'을 뜻한다. 스테이크의 레어(rare·덜 익힘)와 웰던(well-done·완전 익힘) 사이의 '중간 익힘'을 말할 때 흔히 쓰인다. 그러나 media를 '중간'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한 쓰임이 아니다. '중간'은 결코 '산술적 한복판'을 뜻하지 않는다. '평균'의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중립' '균형' '중도' '기준을 잡다' '중심에 서다'에 가깝다. 저널리즘의 올바른 자세, 서 있어야 할 위치를 적시한다. 그런 면에서 '미디어'의 본디 정신은 불편부당(不偏不黨)이라 하겠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불편부당은 시시비비(是是非非)의 전제다. 불편부당한 시시비비야말로 곧 정론직필이다. 사실(fact)의 든든한 터 위에 진실(true)의 탑을 차곡차곡 쌓아야 비로소 정론의 문이 열린다. '사실'이라 해도, 사실의 의도적 조합과 게으른 사실은 진실을 호도한다. '진실'이라고 해서 모두 '정의'는 아니다. 그러나 '정의'는 가치판단의 영역이어서 언론이 되도록 경계하고 삼가는 것이 도리다. '정의'의 자의적 해석이 초래할 폐해가 크기 때문이다. '저널리즘'(journalism)의 어원 'jiurna'의 뜻이 이를 잘 일깨워준다. '매일매일 기록하다'는 본디 의미가 저널리즘의 본령이다. 꽤 절제된 기능만이 주어졌다. 그 기능만으로도 존재가치는 지대하며 영향력은 시대를 넘어 막강하다. 언론에 있어 '가치'는 금단의 열매와 같다. 먹는 즉시 욕망의 눈이 밝아져 치우치고(偏) 무리(黨) 짓는다. 불편부당의 원리는 망가진다. 금단의 동산을 노니는 레거시(legacy·전통) 미디어가 한둘이 아니다.
뉴미디어·1인 미디어의 기록적 확산, 전통 언론의 위기와 역할 변화, 거친 욕망이 부조리를 낳고 있다. △거짓과 사실 조작 △진실의 호도 △자의적 정의(正義) 등은 매일 만나는 정크 뉴스의 부패한 재료들이다. 언론중재법 논란으로 이제야 공론화를 시작했지만, 미국에선 오래전부터 가짜뉴스의 폐해가 심각히 다뤄지고 있다. 2018년 중간선거 기간 SNS상 선거 뉴스의 25%가 정크 뉴스였다고 한다. 전문 뉴스매체가 만든 기사(19%)보다 비중이 훨씬 높다.(영국 옥스퍼드대 인터넷연구소)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압도적 세계 1위로 '검색엔진과 뉴스 수집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뉴스를 수집하는'(72%) 우리 국민의 뉴스 신뢰도는 조사 대상 46개국 중 38위(32%)에 머문다.(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2021년 리포트) 매년 최하위권을 기록하다가 올해 개선된 게 겨우 이 정도다. 인터넷 허위정보에 대해서는 국민 65%가 우려한다. 뉴스 신뢰는 낮고, 언론 불신은 높다.
변종이 우세종 행세하는 게 어디 바이러스의 세계뿐일까. 언론 생태계 역시 돌파 감염의 위협에 노출된 지 오래다. 좋은 저널리즘이 생산·유통되기 어려운 구조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결과다. 각성하고 자성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졸속의 졸작이었다. 국제적 망신거리 될 뻔했다. 다행히 파국을 면하고 숙의의 시간이 시작됐다. 언론 본령을 회복하는 상식 있는 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 언론도 자기 혁신의 노력을 회피해선 안 된다. 여당은 독선·독주의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을 되게 하는 능력이 늘 부족한 게 지금의 여당이다. 야당은 논의 자체를 뭉개려 들면 안 된다. 고칠 거면 제대로 고쳐야 한다. 언론중재법 강행에 국민 절반 정도 반대했지만, 언론개혁과 징벌법에 대해서는 다수가 찬성하지 않나. 그곳에 답이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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