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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이하석의 일상의 시선] 곧 어두운 성찬이여

2021-09-24

대구 이천동 갤러리 루모스
작년 이어 '인류세' 앙코르전
英 맨디 바커 사진작 '수프' 등
시 '유리 바다'서 우려한 모습
인간 향한 멸종 경고 숨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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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대구문학관장

#동해

바람 없는 날. 동해는 늪 같다. 침묵하는 자갈들과 마른 모래들이 미세한 그늘을 숨기고 있다. 해안을 걸으면, 이런 상황에서는, 자꾸 발밑을 어른대는 내 그림자가 밟힌다.

그림자 속에 반짝이는 게 있다. 석영이나 광물 조각이려니 했는데 아니다. 플라스틱 조각들과 가루들이다. 플라스틱의 바다오염 얘기가 요즘 꽤 나오는데, 내가 마주친 실제의 그 현장들인 셈이다. 이미, 벌써, 그것들이 모래와 자갈 속에 뒤섞여서 촘촘하니 반짝인다. 바다가 머금은 것들이니, 바다 생물들의 허파와 몸속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찰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 나는 그런 시를 쓴 적이 있다. '청정서해 청정/동해 윤나는/ 바다가 가시처럼 반짝반짝 끓는다면//우리가 플라스틱 조각들을 섞어 버무린 때문//그래서 곧 어두운 성찬이여// 고등어는 플라스틱 먹은 잔고기들을 들이키고/상어는 플라스틱 과식한 고등어로 배를 채우면// 대개 온몸들 미쳐서 희번덕거리리라//유리바다 해수욕의 참혹한 즐거움이여/내가 회 쳐 먹은 바다의/ 파도가 내 몸을 찢고 나오는 퍼덕임이여'(졸시 '유리 바다' 전문) 몸서리 쳐지는 말들이다. 그래도, 동해는 아직 청정하다고 말하는가? 나도 그렇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그렇지 못하다고 해야 한다.

#걸쭉한 수프

대구 이천동 한 건물 5층의 갤러리 루모스. 신문에 눈길 끄는 전시 기사가 있어서 찾아 나선다. 외곽지인 데다 간판도 없어서 갤러리는 잘 눈에 뜨이지 않는다. 어렵사리 찾아가니, 거기, 내가 우려한 바다가 전시되어 있다! 영국의 사진작가 맨디 바커의 사진들. 지난 10년 동안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와 관련한 작업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어오고 있는 이다. 작품 제목은 '수프(soup)'. 생선이나 야채, 고기 등을 물과 함께 끓여서 먹는 국물 요리. 바다를 온갖 형태의 플라스틱이 버무려진 수프로 본 것이다.

바다는 지구 존재에게는 필수적인 생존 환경이다.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면서 기후와 산소 공급 등은 물론 먹이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런 바다에 매년 800만t 이상의 플라스틱이 뒤섞이고 있다. 그러니, 이제, 걸쭉한 수프가 아니고 무엇인가? 수백 수천 종의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먹고 생활하는 바다가 그런 수프가 되어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전시 앞에서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전시 제목은 '인류세(Anthropocene-Save Our Planet)'다. 이 주제로 지난해와 올해 부산 국제사진제가 열렸고 열리고 있는데, 그 전시 감독을 맡은 석재현씨가 운영하는 루모스의 전시는 지난해 열린 '인류세1'의 앙코르 전시다. 미국과 프랑스, 중국 등 해외작가들과 우리나라 작가들이 참여해서 저마다 독특한 관점에서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 파괴 현장들의 신호와 경고를 담은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지질시대를 나타내는 '세'. 대개 300만년에 한 번씩 바뀐다. 그런데 홀로세(The Holocene)에 접어든 뒤 1만1천500년이 지났는데, 갑자기 '인류세'로 바뀐 것으로 보는 것이다. 지층들의 변화가 그만큼 뚜렷하게 바뀌었다는 얘기다. '인류세의 지층에는 엄청난 쓰레기와 닭뼈가 켜켜이 싸여 있다'는 탄식! 인간이 자행한 지구 파괴로 야생 포유류와 해양 포유류의 80%가 멸종된 시대. 그 재앙이 이제 인간의 멸종을 향하고 있다는 경고다.

바다가 그런 수프 상태라면, 뭍은 얼마나 더하겠는가?
<시인·대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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