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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독도 파노라마(13)] 울릉도 뱃길의 변천사(상)....380t급 철선 청룡호, 1963년 5월부터 월 5회 정기운항 '울릉도 해상교통 혁신'

202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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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경북 울릉군 도동항의 전경<울릉군 제공>

울릉도·독도는 우리나라 최동단에 위치하며 역사적·지리적·국제법상 우리의 영토로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 영토수호의 파수꾼이다. 지정학적으로 동해의 전략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어업과 해양산업의 전진기지로서 그 중요성과 역할이 나날이 증대되고 있다. 하지만 울릉도·독도를 육지와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아직 여객선뿐이다. 울릉도와 가장 가까운 육지는 경북 울진군 죽변항으로 약 130㎞ 거리에 있다. 이처럼 육지와 멀리 떨어진 데다 유일한 교통수단이 여객선뿐인 울릉도. 이곳 주민들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울릉도 해상교통 여객선의 발전과정에 대해 2회에 걸쳐 알아보기로 한다.

울릉도는 1882년(고종 19년) 개척령 반포 이후 16가구 54명이 최초로 울릉도에 이주한 이래 정착 주민이 매년 급속도로 증가했다. 1906년(광무 10년) 울릉도 인구는 894가구 6천464명으로 이 가운데 일본인이 153가구 541명에 이르렀다. 일제 강점기인 1911년 울릉도 인구는 일본인 332가구 1천192명을 포함해 1천414가구 8천73명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울릉도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게 되자 육지와 연결하는 정기여객선 운항의 필요성이 지역사회 현안으로 떠올랐다. 일본은 이미 선진화된 범선과 기선들을 보유하고 있었던 관계로 울릉도 거주 일본인 수송과 생필품 운반에 큰 문제점이 없었으나 울릉도 주민들은 소형어선에 의존해 목숨을 걸고 육지와 울릉도 사이를 오갔기 때문에 정기여객선의 운항은 울릉도 주민들의 최대 숙원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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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울릉도와 일본간 정기연락선 '오끼환'호<울릉군 제공>
1901년 대한제국 초대 울도 군수의 건의와 주민들의 도움으로 범선 개운환(開運丸)이 운항한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주민들 사이의 잦은 마찰로 운영의 어려움을 겪던 중 풍랑으로 배가 파손되면서 민·관 간에 선박 구매대금 변제 소송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후 정기선은 수포가 되고 주민들은 해방 직전까지 일본 화물선을 이용해 육지를 왕래하거나 생필품 구매와 특산품 반출을 하는 힘든 시기를 지낸다.


해방 후에도 울릉도 주민들의 뱃길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정기선 운항이 중단되고 100t급 미만의 부정기 여객선과 화물선이 정기선을 대신하게 되자 울릉도 주민들의 불편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으며 "동해의 절해고도 울릉도"란 말이 실감 났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울릉도 주민들의 해상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대한해운 공사의 500t급의 철선인 여주호·제천호·평택호 등이 번갈아 가면서 부산 ~울릉도 항로를 운항하다가 한국전쟁 발발로 중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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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도동항에 정박중인 금파호<울릉군 제공>
한국전쟁 후 정부의 항로 보조에 의한 150t급 화객선 '금파호(목선)'가 취항해 부산 ~ 포항 ~ 울릉도 항로를 월 3~4회 정도 운항함으로써 울릉도 해상교통 발전의 서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파호'는 천양호·영풍호·대흥호 등과 함께 1950년대 울릉도 주민들의 생명선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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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항에 정박중인 청룡호<울릉군 제공>


1962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울릉도를 다녀간 직후 1963년부터 본격적으로 울릉도 종합개발이 이루어지고, 그해 정부 주도로 대한조선 공사에서 제작한 동양 해운의 380t급 철선 청룡호가 1963년 5월부터 월 5회로 정기 운항하기 시작해 울릉도 해상교통의 일대 혁신을 가져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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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한 제1 동해호울릉군 제공


국고보조 50%, 정부 융자 40%, 자부담 10% 투자로 제작된 청룡호는 최고속도 10노트(시속 18.5㎞) 정도로 울릉도와 포항 간 운항 소요 시간은 12시간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 오징어잡이로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울릉도에는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해 약 3만여 명에 육박했고 해상 물동량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동양 해운은 1965년에 200t급 철선인 '제1 동해호'를 포항 ~ 울릉도 항로에 추가로 취항 시켜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이소민 〈울릉군 문화관광해설사〉
정용태 기자 jy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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