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3일 1박2일 일정으로 남부산림청이 주최하고 모천사회적협동조합이 주관한 산불인문학기행을 위해 이하석·안도현·송재학 등 전국의 유명 문인 등이 빈소 같은 안동 산불 현장을 찾았다. 산불 예방 홍보를 위한 이 행사는 '새롭고 낯설고 놀라운 풍경과의 동행'이란 부제를 갖고 문인의 눈으로 산불을 재해석하기 위해 기획됐다. |
축구장 434개 넓이인 307㏊의 산림을 새카맣게 집어 삼킨 안동 산불은 20시간 만에 1차 진화된다. 이를 위해 각종 진화용 헬기 38대, 소방차 49대, 진화차 23대, 진화인력 2천250명이 투입된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 산불예방전문진화대, 소방대원, 경찰, 의용소방대, 지자체 공무원, 이장 등 산불이 나면 현장으로 달려와야만 되는 관계자들이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 근처로 일사불란하게 모여들었다.
2013년 포항 산불도 살벌했다. 대구~포항고속도를 빠져나와 영덕으로 가다 보면 시커멓게 변한 국도변 구릉지가 산불의 상처로 오래 남아 있다. 지난 2년 연거푸 안동이 대형산불 위기 지역으로 지목된다. 2020년에는 안동~예천~영주가 벨트식으로 산불이 났다. 그동안 '한국 대형 산불 1번지 벨트'는 강원도 고성~속초~강릉~삼척~동해~묵호권이었다. 그런데 안동이 이를 비웃으며 새로운 산불 다크호스 존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연어처럼 회귀한 안도현 시인
40년 객지생활하다 예천으로 귀향
지역협동조합 만들고 잡지도 발간
안동서 2년연속 대형산불 발생하자
문인들 모아 산불인문학기행 기획
"말의 씨 있으면 나무 자라고 숲 돼"
숯덩이 된 나무 위로·새 생명 응원
지난 2월21일부터 22일까지 발생한 산불로 검게 변한 안동시 임동면 일대 야산. 〈영남일보 DB〉 |
◆산불 현장에 모인 유명 문인들
지난 2월 안동 산불이 진화된 지 수개월이 지났다. 검게 불타 흑사(黑死) 된 나무들은 지금쯤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걸 가장 궁금해 한 시인이 있다. 바로 안도현이다. 대구 대건고 출신인 그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시 '너에게 묻는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40년 전라도권에서 생활을 하다가 자기 고향인 예천군 호평면 황지리로 귀향한다. 그건 1996년 100만부 판매량을 올린 어른 동화 '연어'의 길을 따랐다. 고향은 모천(母川)이었고 그는 원류로 거슬러 올라온 한 마리 연어였다. 거기서 예천의 산천과 인물, 식문화, 문학정신 등을 총망라하는 예천 신택리지 같은 작업을 하기 위해 예천산천이란 잡지도 발간했다. 1년에 인연 있는 시인 수십 명을 고향 움집에 초대해 '예천시회'를 벌이고 이를 지역 사회와 연대하기 위해 '모천사회적협동조합'도 만들었다.
그런 그가 산불 관련 신선한 기획을 했다. 남부산림청과 함께 '산불인문학 문학기행'이란 프로그램이다. 그는 산불한테 목숨을 빼앗긴 나무를 위한 '씻김굿' 같은 고유제(告由祭)를 올리고 싶었다. 이하석, 송재학, 송찬호, 안상학, 장석남, 손택수, 김성규 시인, 소설가 황현진과 이주란, 문화에디터 하응백. 그들이 안동 망천리 산불 현장을 찾았다. 기자도 동행을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모두 불탄 나무뿐이었다. 불타지 않은 곳은 녹색, 불탄 곳은 검정색. 이승과 저승을 한눈에 보는 것 같았다. 대다수 수종은 소나무와 참나무. 소나무는 산불에 치명적이다. 송진 때문에 불이 붙으면 정말 잘 탄다. 현재 전국 산에 심겨진 나무 중 30%가 소나무다. 생태계가 예전과 똑같게 복원되는 데는 100여 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숯덩이로 직립한 나무의 군락, 그사이로 잿더미를 딛고 올라서는 뭇초화류가 드문드문 보였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인 모양이다. 모두 말이 없다. 하지만 대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별별 식물이 새로운 생명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죽은 나무가 산 나무를 몰고 오는 것 같았다. 문인들은 생과 사의 절묘한 대비에서 자신만의 문학적 모티프를 메모하기 시작한다. 불탄 나무는 목재로서 가치가 없단다. 베어낸 뒤 화력발전용 펄프칩 등으로 활용된다. 베어진 자리에는 적당한 수종이 심어질 것이다.
바닥에는 의외로 다양한 식물이 보였다. 이하석·안상학 시인은 야생초에 대한 식견이 남달랐다. 모르는 식물 이름을 전해 듣는 재미도 솔솔 했다. 단연 고사리들이 전면 배치돼 있다. 이밖에 잔대, 박하, 국화, 쑥부쟁이, 구절초, 산부추, 취나물, 오이풀, 야관문, 산초, 속새, 김의털, 용담…. 푸른 고고지성이 불탄 나무를 위로한다.
하응백 문화에디터는 "탐방한 문인 중 대부분은 그 숲을 보지 못한다. 말의 씨만 뿌린다. 그래도 그게 희망이다. 말의 씨가 있으면 나무가 자라고 숲이 된다"고 말했다.
산불 진화 최전방에 선 산림청
드론으로 실시간 화마 정보 파악
기상·지형정보 입력해 진로 분석
현장침투 산림청 특수진화대원
10㎏ 방진복 입고, 물주머니 메고
뜨거운 불·한밤 추위 견디며 진격
산불 80%는 실화…예방이 최선
산불의 주무관청은 '산림청'이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이가 산불을 진화하기란 어렵다. 이를 위해 2016년부터 화선 최전선으로 나서는 산림청 예속 공무직인 '산불재해 특수진화대'를 가동시켰다. 〈산림청 제공〉 |
◆산불은 산림청이 끈다
산불 진화, 이제 IT 기술의 도움이 없이는 제압하기 힘들다. 산림재난 드론 대응팀은 열화상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에서 보내온 실시간 산불 영상 정보, 그리고 기상청으로부터 받는 안동권의 풍향과 풍속, 기온, 산의 가파르기 등 각종 변수를 컴퓨터에 입력해 '몸불(本火)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시간대별 예상 진로를 분석해 그 정보를 관계자와 공유한다. 산불이 거칠어진 만큼 '진화 공학'도 날로 진화될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 버전의 한국 산불 진화 인프라는 최근 몇 년 새 온라인 버전으로 기술발전을 한다. 덩달아 비상이 걸린 관청이 있다. 대구, 부산, 울산, 그리고 경북과 경남 동부 등 모두 29개 시군의 28만2천㏊ 산림 구역 내 산불 진화 의무를 가진 안동 남부산림청이다. 직원 142명은 이맘때면 내년 봄 수관이 수액으로 가득 찰 때까지 비상 근무 체계로 돌입하게 된다.
다들 산불은 소방대원이 진화하는 줄 잘못 알고 있다. 지난 30년간 일반인의 인식은 '산불도 소방서의 몫'이라는데 멈춰 서 있었다. 산불 진화 주무 관서는 산림청이다. 현재 전국에는 모두 5개의 지방산림청이 있다. 중부산림청은 공주, 동부는 강릉, 서부는 남원, 북부는 원주에 본청이 있다. 이들이 모두 27개 국유림관리소까지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국립공원은 산림청이 아니라 환경부가 관할권을 갖고 있다.
전국에 6대밖에 없는 미국제 S-64E는 40초 만에 8천ℓ물을 집중적으로 퍼붓는데 그 헬기도 소방청 소속이 아니다. 산림청 예하 산림항공본부 소속 산불 진화용 헬기다. 물론 소방대원도 옆에서 지원사격을 해준다. 그들은 산불보다 농가 등 일반 가옥 화재 진화에 더 치중한다.
◆산불 최전선 산불재해특수진화대
산림청은 초봄 새싹이 돋아날 때쯤(5월 15일 어름) 한숨을 돌린다. 10월 초·중순 낙엽이 우수수 지기 시작하면 관계자들은 '5분대기조'로 돌변한다. 11월1일부터 이듬해 5월15일까지 얼추 6개월 정도 고강도 근무를 감내해야 된다.
산불의 최전선에 서 있는 관계자는 누굴까? 2016년부터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한 '산불재해 특수진화대원'이다. 아직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한 그들은 산불에 최적화된 '산불 현장 침투조'다. 그들의 공력은 좀 부풀려 말해 공수특전단, 해군 UDT, 경찰 특공대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의 산지는 보기와 달리 산불 진화에는 정말 악조건이다. 수풀이 우거져 화선까지 접근하기가 정말 까다롭다. 아직 한국은 산불에 대비한 임도가 아니라 간벌한 목재를 운반하기 위한 기반도로라 보면 된다. 유럽의 경우 고산 지형은 암석이 많아 산불이 잘 나지 않고 산불이 발생해도 대다수 평평한 구릉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등장한 게 진화용 헬기다. 아직 대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모두 47대. 안동산림항공관리소에는 4대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산림청에 소속된 진화대는 모두 435명이다. 이밖에 경북도에서 1천명이 넘는 진화대 요원이 있다. 산불이 나면 이들에겐 전투가 개시된다. 10㎏ 이상의 경량 방진·방염복과 방독면, 그리고 진화차(진화수 1천500ℓ)로부터 공급되는 진화수를 받을 수 있는 개인용 등짐펌퍼(20ℓ)를 지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13㎜ 호수는 다중 연결을 통해 최대 1~2㎞까지 연결할 수 있다. 아무리 험지라도 대원들은 호스를 몰고 화선 앞에서 물을 쏠 수 있다. 근처 계곡에 물이 있으면 즉석에서 펌핑해 사용할 수 있는 중형 펌퍼도 전진 배치시킨다.
진화대와 지휘본부, 드론 영상팀은 산불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산불 진화는 화미에서 화두를 향해 진격해 나가야 안전하다. 소방대원이 현장에 온다고 하지만 산불 최전선까지 오지 않는다.
진화대원은 갈수록 열기에 취약하다고 한다. 현재 기능성 방화복은 여러 번 세척 하면 기능성이 떨어진다. 상당수 방화복이 그런 처지다. 겉으로 보이는 몸불을 와전 진화한다고 해도 바로 철수하지 못한다. 1~2일 노천에서 숙식을 하면서 갈퀴질을 하며 잔불 정리를 해야 된다. 산불이 동절기에 집중돼 추위와도 싸워야 된다. 산불을 너무 뜨겁고 한밤에 몰아치는 설한풍은 동사를 부추긴다. 차가움과 뜨거움을 동시에 견뎌내야 된다. 풍족한 음식물이 공급되지 않는다. 한 대원은 "방화복의 기능을 더 제고해야 된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대기업 등이 더욱 경량화되고 기능성이 강화된 방화복을 생산해 주어야 되는데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특수진화대원들에게 산불은 '적군'이다. 산불은 절대 사전에 선전포고하지 않는다. 기습공급만 한다. 기습의 빌미는 우리가 제공한다. 현재 한국 산불의 80%는 자연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다. 일반인의 부주의로 인한 실화다.
◆이젠 산불친화적 삶을 살아야 하나
산림(山林).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조에는 덕망과 인품, 충절까지 겸비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사대부(선비)를 지칭했다. 그 산림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국토, 산하의 상징어를 겸하게 된다. 그 산림이 매년 수난을 당하고 있다. 산불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의 화마는 도심만을 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에 있는 나무를 땔감으로 난벌했고 그 결과 우리 산하는 민둥산 일색이었다. 불이 나고 싶어도 불붙을 나무가 없었다. 하지만 전국민적인 나무심기에 힘입어 1980년대로 접어들면 민둥산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연탄을 넘어 프로판가스 시대가 되면서 굳이 나무를 땔 필요도 없어졌다. 산으로 나무하러 가는 사람들도 없었다.
낙엽의 계절이 도래했다. 국내 공무원 중 가장 피말리는 부서는 단연 산림청 공무원이다. 갈수록 입산 통제 구역도 확대되고 있다.
이제 산불은 진화요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귀농, 귀산, 귀촌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숲을 전제로 삶을 영위하는 인구 또한 급증추세를 보이고 있다. 잦아지고 대형화되는 산불은 곧바로 이들의 집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산불진화가 관건이 아니라 산불예방이 최근 들어 새로운 화두로 급부상할 수밖에 없다.
글=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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