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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택 논설위원 |
지난 11월 말 칼럼을 쓰면서 '역겹다'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있다. 대선후보들의 표리부동한 태도에 실망한 국민의 심정을 에둘러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쓸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국어사전에는 '속이 메슥메슥하고 구역질이 날 만큼 거슬리는 듯하다'라는 뜻이다. 기실 이 단어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한테나 사용한다. 일상생활에선 금기어다. 법에 앞서 개인 간 결투가 허용되는 시대였다면 '역겹다'라는 말을 들은 이는 목숨을 걸고 상대에게 결투 신청을 할 만큼 치욕적이다. 감히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지난 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지겹도록 역겨운 위선 정권을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윤 후보가 정부 비판할 때 '역겹다'라는 단어를 썼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 말로 상대를 공격할 경우 자신은 깨끗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제3자가 봤을 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윤 후보에게 대선 걸림돌은 '본(본인)·부(부인)·장(장모)' 리스크라고 했다. 여야 가리지 않고 지적했다. 그런데 선거 80여 일 앞둔 최근에 부인 리스크가 삐져나왔다. 허위 경력기재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윤 후보 측이 늘 했던 말처럼 영향력 없는 매체가 김씨에 대해 촬영을 하자 줄행랑쳤다. 흡사 중죄인을 방불케 했다. 국민의힘 지지층조차 이 모습에 혀를 찼다. 물론 윤 후보는 부인 김건희씨를 두둔하다가 사흘 만에 마지못해 사과했다. 하나 윤 후보나 김씨의 해명 태도는 상식에 맞지 않았다. 부아가 치밀어오를 정도였다. 높은 정권교체율이 국민의힘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캠프관계자들이 밤마다 축배를 들다 못해 침대축구해도 이긴다고 한다니. 국민의힘 선대위 인사나 윤 후보 측근들은 최근 표를 갉아 먹는 불미스러운 행동도 잦다. 윤 후보의 미숙함은 오히려 사치일 정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마찬가지다. 우선 본인 리스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잘 달리던 마라토너가 오버페이스한 나머지 결승선을 앞두고 제다리에 걸려서 스스로 넘어지려 하고 있다.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다가 비판 받으면 '국민이 원하면 안 한다'는 핑계를 대고 철회했다. 무게감도 떨어지고 신념조차 없는 이른바 '표를 위한 정치'를 한다. 현 정부와 차별화하고 싶지만,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대선후보인 자신보다 훨씬 높은 상황에서 타개책이 없으니 이해는 간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장남의 도박 및 성매수 의혹에 그로기 일보 직전이다.
이번 대선에서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대선은 난생 처음이다. 두 후보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 접전이지만 비호감도가 호감도를 훨씬 웃돈다. 두 후보 모두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민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하거나 아니면 기권을 할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다. 각 당 예비후보 경선에서 2위한 후보들이 대선캠프 참여에 미온적인 이유가 짐작이 간다.
최근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의 묘서동처(猫鼠同處)를 뽑았다.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는 비유다. 내년 대선을 걱정하는 의미로 선택했다는 교수들도 있었다. "누가 덜 썩었는가 경쟁하듯, 리더로 나서는 이들의 도덕성에 의구심이 가득하다"거나 "상대적으로 덜 나쁜 후보를 선택해 국운을 맡겨야 하는 상황" 때문이라고 했다. 내년 3월9일까지 코로나19 5차 대유행과 함께 역겨운 대선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누가 당선되든 임기 내내 '대통령 및 가족 리스크'가 잠복했다가 언제든 다시 나타나서 국민을 괴롭힐 게 분명하다. 속에서 천불이 난다.
장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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