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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메두사 엄마의 헤어컷

202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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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순 시민기자

왼쪽 가슴에 옷핀으로 손수건을 고정시킨 채, 운동장에서 "앞으로 나란히~" 선생님 구령에 잔뜩 긴장한 단발머리 여자아이. 1960년대말 언니오빠따라 가고 싶어 안달복달했던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 정경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인근 동네 초등학교 정문마다 "후배들아! 반가워""친구들아, 어서와!"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전국 48만명 정도의 1학년이 입학할 예정이다.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 시대.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둔 엄마들의 마음은 얼마나 설레고 불안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시작을 해야만 한다. 꿈동이들의 입학을 축하하는 마당에 엄마들은 용기를 내야 한다.

벨기에 작가 키티크라우드의 그림책 '메두사 엄마'는 초보엄마들에게 위로의 말을 가만히 건넨다. 해파리의 긴 촉수처럼 노랗고 기다란 머리카락을 지닌 메두사 엄마는 두 산파의 도움을 받아 진통 끝에 딸을 출산한다. 딸의 이름은 '무지개 빛'이라는 뜻을 가진 '이리제'다. 메두사 엄마는 이리제를 품안에 꼭 안고 다닌다. 자신의 길고긴 메두사머리카락 안에 꽁꽁 숨기고 다닌다는 말이 더 와 닿는다.

누군가 딸이 궁금한 나머지 볼라치면, 메두사는 기겁을 하고 노란 머리카락으로 휘감아 딸을 감추곤 했다. 메두사는 강력한 모성을 발휘해 사랑스러운 이리제를 지키고 돌본다. 어린 딸에게 엄마의 머리카락이 세상의 전부였다.

메두사엄마의 머리칼 둥지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모든 순간을 함께 하며 자라났다. 엄마 메두사는 늘 "너는 나의 진주야. 내가 너의 조가비가 되어줄게"라고 말하곤 했다.

허나 세상의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엄마와 딸의 '공생기적 융합관계'는 끝이 나고 만다. 또래 친구들이 보이자 이리제는 "나 학교에 가고 싶어요"라고 선포를 한다. 언제나 엄마와 모든 순간을 함께하면서도 이리제의 마음 한켠에는 호기심 가득한 세상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절대로 안돼"라고 강하게 거부하는 메두사 엄마. 언제나 딸을 향해 있는 엄마와는 달리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이리제를 더 이상 가둘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아이를 자신의 치마폭에서만 키우려했던 메두사 엄마는 결국 허락을 한다. 다음 날 학교에 가는 이리제를 엄마가 따라나서자, "아니, 엄마는 따라오지 말아요. 엄마를 보면 아이들이 모두 무서워해요"라고 말한다.

내 품안에 자식이라 생각한 메두사 엄마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사귀고 책도 잘 읽는 이리제.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 순간 "이리제"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딸을 위해 치렁치렁하고 해파리같은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세상 밖으로 나온 메두사엄마. 두 모녀는 환한 웃음을 웃고 포옹을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는 관능적인 미녀로 머리카락에 파괴적인 힘을 지녔다. 그림책에 메두사 엄마의 머리카락은 딸을 위한 안전한 울타리이자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노랗고 긴 머리카락은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엄마의 갸륵한 마음이다. 딸이 성장해 세상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덕분에 메두사 엄마도 자신을 가둔 울타리를 걷고 세상 밖으로 힘든 발걸음을 내닫는다. 메두사와 이리제 두 모녀의 포옹은 세상을 끌어안는 용기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도 아빠도 성장하는 것이다.


김호순 시민기자 hosoo0312@gma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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