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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추(桐楸) 금요단상] 넉넉한 그늘 내어주는 왕버들 노거수 아래서…

202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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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삼국유사면 수기재 아래의 전문환 도예가 작업실 앞에 있는 왕버들 노거수. 밑둥치 둘레 9m.

노거수의 넉넉한 그늘이 반가운 계절이다.

얼마 전 경북 군위 고로면(삼국유사면) 산(수기재) 아래에 있는 도예가 전문환의 작업실을 지인들과 함께 방문했다. 거기서 보기 드문 노거수를 만났다. 작업실 바로 앞에 있는 왕버들이다. 왕버들은 작은 저수지 둑에 자라고 있었다. 밑둥치에서 크게 세 줄기로 갈라져 자랐는데, 갈라진 세 가지 위에 큼직한 정자를 하나 지어도 될 만했다. 줄자를 찾아 일부러 한번 밑둥치를 대충 재어 보았다. 9m 정도 되었다. 그렇게 굵은 나무는 직접 본 적이 없다.

전문환 작가가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한 것이 1995년인데, 당시에는 왕버들 밑둥치가 저수지 물속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산 계곡에서 떠내려온 자갈과 모래가 점점 쌓여 지금처럼 주위가 둑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곳 어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수령이 4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백년 장수 누린 노거수
장자의 '무용지용' 이야기
'쓸모 없음의 쓸모' 떠올라
도예 작가의 작품도 연상


이 노거수를 보면서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쓸모없음의 쓸모)' 이야기가 떠올랐다.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장석(匠石)이 제나라에 가다가 지신을 모시는 사당에 심어진 상수리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그늘에 가릴 수 있고, 둘레가 백 아름이나 되며,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정도였다. 땅에서 열 길을 올라간 뒤에 비로소 가지가 뻗어 있었으며, 수십 척의 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나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마치 저잣거리처럼 많이 몰려와 있었는데, 장석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길을 가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장석의 제자는 실컷 그 나무를 보고서 장석에게 황급히 달려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도끼를 잡고 선생님을 따라다닌 이후 저토록 아름다운 나무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보려 하지도 않으시고 걸음을 멈추지 않고 떠나가시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장석이 대답했다. '그런 말 하지 말게. 쓸모없는 잡목이네.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이나 곽(槨)을 만들면 빨리 썩고, 그릇을 만들면 빨리 부서지네. 대문이나 방문을 만들면 나무 진액이 흘러나오고, 기둥을 만들면 좀이 생기니 쓸모없는 나무이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에 이처럼 장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네.'

장석이 돌아와 잠을 자는데 그 상수리나무가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어디에다 나를 비교하려 하는가. 그대는 나를 무늬목에 비교하려 하는가. 아가위나무,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는 과실이 익으면 잡아 뜯기고 욕을 당하게 되지.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찢기네. 이것은 그 잘난 능력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괴롭히게 되는 것이네. 그 때문에 천수를 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요절해 버리지. 스스로 세속 사람들에게 해침을 받는 것이네. 모든 사물이 이와 같지 않음이 없네. 나는 쓸모없기를 추구한 지 오래되었네. 거의 죽을 뻔했다가 비로소 나의 큰 쓸모를 이루었네. 내가 만약 쓸모가 있었다면 이처럼 큰 나무가 될 수 있었겠는가. 그대나 나나 하찮은 존재일 뿐이네. 어찌하여 나를 쓸모없다고 헐뜯는가. 그대 같은 사람이 어찌 쓸모없는 나무를 알아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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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환 작

쓸모 유무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쓸모 유무를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무용지용 이야기는 이 왕버들에 깃들어 작업해온 전문환 도예가의 작품을 두고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술 작가들은 작업을 할 때 일반인과는 다른 관점에서 쓸모 유무를 판단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환은 특히 더 '무용지용'의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도예 작업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설치 작업도 하는데, 기발하고 엉뚱한 장난 같은 작품이 많았다.

그의 작품을 보며 장자의 '무용지용'을 떠올린 생각을 들려주며 어떤지 그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제 마음을 그렇게 잘 아십니까. 딱 맞습니다."

더 큰 쓸모, 쓸모없음의 쓸모를 생각할 줄 알아야 우리의 삶이, 지구촌 환경이 덜 각박해질 것이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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