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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동부지역본부장 |
지난주 포항에서 환동해국제심포지엄이 개최됐다. 매년 열리는 행사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건 처음이었다. 낯설지는 않았다. '환동해시대'란 용어를 접한 지 꽤 오래됐기 때문이었다. 족히 20년은 넘은 듯. 그럼에도 환동해시대의 현주소를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미래형 시제로 읽힌다. 다시 말해 거창한 비전에 비해 이렇다 할 가시적 성과가 미흡하다는 말이다. 이런 평가는 과문하고 성마른 필자의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환동해시대의 토대인 환동해경제권이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건 사실이다.
환동해경제권은 동해를 끼고 있는 한국과 일본, 중국 동북부, 극동 러시아를 하나의 경제블록으로 묶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게 목표다. 이 같은 구상은 1991년 당시 소련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의 제안으로 공식화됐다. 현재까지 4개국 11개 거점 도시가 참여하고 있으며, 국내에선 포항을 비롯해 울산, 동해, 속초 등이 회원 도시다. 1994년 일본에서 첫 모임을 가진 이래 지난해까지 26차례 회의를 이어왔으니 환동해경제권에 대한 공감대는 확고히 다져진 셈이다. 문제는 전반적으로 구상과 협의 수준을 좀처럼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런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 우선 혼미한 국제정세와 무관치 않다. 미-중·러 간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얽히고설킨 각국의 이해관계가 지속가능한 교류,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비슷한 맥락에서 환동해권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여전하다. 남북관계 경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팬데믹까지… 사면초가의 형국이다.
환동해시대의 걸림돌은 또 있다. 다른 나라들 사정이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한국의 경우 동해권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지극히 미흡하다. 실제로 포항을 중심으로 한 경북 동해안지역은 정부의 해안권 발전 정책에서 '왕따' 신세였다. 서·남해안 위주의 L자형 개발 탓에 턱없이 부족한 동해안의 교통 인프라만 봐도 그렇다. 과거 20년 넘게 질질 끌다가 겨우 확장된 국도 7호선 말고는 경북과 강원 동해안(포항~영덕~삼척)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도 아직 없다. 그나마 포항~영덕 구간이 내년에 개통된다지만 서해안 고속도로(2001년), 남해안 고속도로(1973년)보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북 동해안 숙원 사업인 영일만대교 건설도 대통령 공약에도 불구하고 발목이 잡혀 있다. 이해가 안 간다. 포항 출신 이명박 대통령 집권 시절에 지역 정치권은 도대체 뭘 했을까. 당시 영포회나 형님예산 같은 논란이 없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까. 경북도 역시 동해안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의문이지만, 지난 일을 일일이 따진들 뭐하겠나. 다만 4년 전 포항에 환동해본부를 신설한 만큼 과거와는 다른 실효적 정책 수립과 지원이 이뤄져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려면 환동해본부의 위상과 역할 강화가 전제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환동해권은 인구 1억5천만명에 GRDP 2조달러대의 미개척 시장이다. 포항을 중심으로 한 경북의 신성장 산업과 관광, 물류의 블루오션임에 틀림없다. 환동해 이니셔티브를 거머쥐는 게 선택이 아닌 필수인 이유다. 지금 환동해경제권은 다중 악재로 인해 시계 제로 상태다. 하지만 밤이 깊을수록 일출은 가까운 법. 어쩌면 환동해시대의 여명은 이미 영일만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포항은 환동해 허브도시 자격과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었고, 액션플랜 실행 단계에도 근접해 있지 않은가. 모쪼록 포항시가 환동해의 새 돌파구를 통해 지방시대를 선도하는 국제도시로 도약하길 기대한다.
허석윤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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