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사흘 앞둔 7일 오전 대구 비산7동 장모(72)씨가 생활하는 쪽방, 2평 남짓 작은 공간 안에 냉장고와 각종 생활용품이 가득하다. 이동현 기자 |
명절을 앞두고 높은 물가와 휘몰아친 태풍으로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들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구쪽방상담소에서는 쪽방 주민들의 허전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기 위해 추석을 사흘 앞둔 지난 7일 오후 5시 대구 중구 행복나눔의집 지하1층 강당에서 명절 합동 차례를 마련해 30여명이 함께 조상들을 기렸다.
◆"명절 외로움보다 치솟는 물가가 더 걱정입니다"
지난 7일 오전 10시쯤 대구 서구 비산7동의 쪽방촌 골목에서 만난 장모(72)씨는 고물로 팔 철제 의자를 분해하고 있었다. 맨손으로 망치와 드라이버를 이리저리 사용하던 장씨는 부서져 버린 볼트를 빼지 못하고 분해를 포기했다. 고물을 파는 일은 그에게 유일한 소일거리다. 장씨는 "요새는 맥주 한 병도 비싸서 못 사 먹는다. 늘 사 먹던 것도 얼마 전 가격이 올랐다. 벌이는 점점 적어지고 물가는 올라 걱정이다"라고 토로했다.
7일 낮 12시쯤 대구역 앞 광장에 노숙인들의 침대와 생활용품들이 널브러져 있다. 이동현 기자 |
그는 평생 혼자 지낸 탓에 명절 때가 되면 더 이상 외로울 것도 없다고 말한다. 장씨는 "가족들도 없고 혼자 지낸 탓에 젊었을 때는 외로웠지만, 이제 다 늙어서 명절에도 외로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드러났다.
그는 두 평(6.6㎡) 남짓한 2층 작은 방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가스버너와 식기류 등이 청소되지 않은 채로 쌓여있었다. 거동이 불편해 화장실을 자주 다닐 수 없어 마련한 소변통 주변으로 파리가 날고 있었다.
1층에서 만난 김모(70·서구 비산동)씨는 마트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의 손에는 막걸리, 캔커피, 생수 한 병씩이 담긴 비닐봉지가 있었다.
김씨는 "몇 년 전 500원 하던 캔커피도 어느덧 1천원이 됐다. 물가가 많이 올라 밥을 지어 먹기도, 나가서 국수 한 그릇 사 먹기도 벅차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장씨와 김씨가 정부에서 받는 지원금은 생계급여와 노령연금을 합쳐 50만원 남짓, 두 노인은 방값을 내고 나면 기본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장씨는 "폐지나 고물을 주워 팔아서 조금씩 벌이를 하고 있지만, 모든 게 비싸져서 가난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태풍 피한 대구역 노숙인들 명절 앞 한숨만…
이날 낮 12시쯤 대구역 앞 광장에는 노숙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옆에는 태풍으로 비에 젖은 상자들이 햇빛에 나와 있었다. 도시철도 역사 근처에는 박스와 이불이 펴져 있었으며 먹다 남은 막걸리가 보이기도 했다.
근처에서 만난 노숙인들은 강력한 태풍 소식에 일찌감치 실내로 피했다고 한다. 노숙인 A씨는 "태풍이 왔을 때는 반월당역 지하로 피신해 있었다. 비가 많이 오면 바깥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지하철 역사에 들어가거나 다른 실내로 피한다. 뉴스를 보니 포항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던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추석 명절은 어떻게 보내냐는 질문에 그는 잠깐 침묵했다. 이내 그는 "뭐 외롭지요.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은 지 오래됐고…"라며 목소리를 줄였다.
다른 노숙인 B씨는 "명절에 백화점에 가족과 함께 놀러 오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 좀 부럽기도 하다. 당연히 나도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고 싶다"면서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물가도 오르고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어려움이 점점 커지는 것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들은 외로움과 물가 상승의 절벽에 내몰리고 있었다.
장민철 대구쪽방상담소장은 "쪽방촌에 계신 분들이 대부분 남성분들이라서 음식을 사서 드시는데 시장에 가보면 물가가 몇천 원씩 다 뛰었다. 아무래도 들어오는 소득은 뻔한데 먹거리 지출이 커지니까 주민들 모두 힘든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7일 오후 5시 대구 중구 행복나눔의집 지하1층 강당에서 쪽방 주민 30여명이 함께 차례를 지내고 있다. 이동현 기자 |
지난 7일 오후 5시 대구 중구 행복나눔의집 지하1층 강당에서는 쪽방 주민 주민 등 30여명이 한데 모여 추석 합동 차례를 지냈다.
대구쪽방상담소가 주관한 이번 합동 차례는 2020년 설 이후 코로나19로 2년 반 동안 열리지 못하다가 이번에 재개됐다.
주민 2명으로 이뤄진 제주의 진행으로 차례가 시작됐다. 희망자 5명의 주민이 조상님께 술을 올렸다. 이후 상을 물리고 음복을 하는 쪽방 주민들도 보였다. 한곳에 모인 주민들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쌓인 이야기가 많았는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대구쪽방상담소가 준비한 음식과 마스크 등이 선물로 전달됐다. 선물 가방을 든 쪽방 주민들의 표정은 모처럼 환해 보였다.
합동으로 차례를 모신 고모(61)씨는 "고향과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 쪽방상담소의 도움으로 임대주택으로 이사했는데, 합동차례까지 챙겨주고 선물까지 줘서 정말 고맙다"며 웃음 지었다.
장민철 소장은 "합동 차례가 다시 시작됐는데 경제적·개인적 사정으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쪽방 주민분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shineast@yeongnam.com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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