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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프리랜서의 자부심…"일에 대한 성심, 이름표보다 빛나는 자부심"

2022-09-23

조직 내 평가에 대한 욕심에 스스로를 잃어버렸던 여 기자
직업 넘어 일 자체에 열정 가진 인물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

이미지
표지
김세희 지음 /창비/168쪽/1만5천원

첫 번째 소설집 '가만한 나날'(민음사 2019)로 제37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김세희의 신작 소설이다. '창비'의 젊은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열다섯 번째 작품이다. 일을 통해서 성장하는 과정을 김세희 특유의 단정하고도 섬세한 언어로 담아냈다. 일에 몰입해 스스로를 잃어버렸지만 또다시 일을 통해 꿋꿋이 일어서는 프리랜서 여성의 분투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일은 무엇인지' '인생의 충만감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스스로 질문하며 답을 찾는 과정이 묵직하다. 일 때문에 번아웃을 경험한 독자, 또 일에서 성취감을 얻고 싶은 독자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메시지를 담았다.

소설 속 주인공 하얀은 중앙일간지 기자다. 일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주어진 일은 똑 부러지게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것이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독이 될 줄은 몰랐다. 결국 하얀은 고된 직장생활과 선배와의 갈등으로 공황장애가 찾아오고 퇴사를 결정한다.

'조직 안에서 일하는 한 평가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더 잘해 내고 싶은 열망, 더 잘해 내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실망시키는 것이 내겐 몹시도 힘든 일이었다.'(67쪽)

공황장애를 겪는 하얀에게 심리상담사는 모든 것이 좋고 완전한 '올 굿(All Good)'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다행히 공황장애가 잦아들 무렵, 선배의 제안으로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하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한다. 그런 하얀에게 프리랜서로서 자신의 위치와 일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계기가 찾아온다. 희성교육대학 전시회 기획 업무를 맡으면서다. 하얀은 대학신문을 참고해 전시 내용을 정리하고 글을 작성하는 업무를 맡는다. 그러던 중 1987년 6월 민주항쟁 전후 전국의 대학생 열사들에 대해 조사하게 되고 '최영희'라는 인물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최영희는 6월항쟁이 일어나기 반년 전, 하숙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육대 학생이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정권에 저항하는 글은 없었다. 단지 암울한 시대에 살며 이를 방관하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는 문구만이 있었다. 이 때문에 '열사' 칭호를 얻지 못한 최영희를 하얀은 전시를 통해 재조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무엇보다 하얀은 열사가 아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진심으로 생각했던 최영희에게 깊이 감응한다. 학교에 소속된 교사라는 직업이 아닌, 가르치는 일 자체에 열정을 가졌던 최영희. 하얀은 그런 그의 삶에 집중하게 된다. 프리랜서 생활에 적응하는 듯 싶었지만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는 소외감에 종종 상처를 받았던 하얀이었기에 더욱 최영희에게 끌리게 된다. 암울한 시대를 방관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목숨을 끊었지만 어디에도 이름이 남아있지 않은 최영희의 자리를 만들어주고자 했던 하얀의 '최선'은 곧 스스로의 '자부'를 세우는 계기가 된다.

"올 굿이 아닐지라도 지금 가진 것들로 삶을 꾸려나"가는 방법을, "계속해서 앞을 보고 살아"가는 감각을 비로소 익히게 된다. 그러면서 하얀은 자연스럽게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설령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라 해도 스스로 성심을 다했다면 이름표보다 더 빛나는 자부심이 남는다고 이 소설은 말한다. 그때 마음을 다해 일한 시간은 훗날 단단한 자부가 되어 우리의 존재를 꼿꼿하게 세워줄 것이라고….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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