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갑을 열기가 겁이 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가 '고물가·고환율·고금리'라는 이른바 '3고(高) 현상'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특히, 높아진 물가에 서민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통계청의 올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8월 대비 5.7% 상승했으며,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6.8%나 올랐다.
소비자는 물론 자영업자들도 고물가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서민들의 생활 방식도 많은 변화를 맞고 있다. 과거 많은 이들이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를 외쳤지만, 최근에는 과소비를 줄이고 지갑을 닫는 '짠테크', '무지출 챌린지'가 SNS를 통해 청년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경제 분위기는 사회 현상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 밖에 없다. 서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3고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그 안에는 서글픔도, 안타까움도, 때로는 잔잔한 감동도 있다. <편집자 주>
최근 대구 수성구의 한 추어탕집은 기존 메뉴 가격을 2~3천원씩 인하했다. <이봉화추어탕 제공> |
◆고물가 속 어렵지만 음식가격 내린 식당
고물가 상황에서 상당수의 자영업자가 인건비, 원재료비 가격 상승 등의 이유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대구 곳곳에서도 서민들이 자주 찾는 식당 메뉴판에는 기존의 가격표 위에 종이를 덧대 인상된 가격을 적어놓거나 '원재료,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득이 일부 메뉴 가격을 인상한다'는 안내문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도 음식 가격을 내려 서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준 자영업자도 있다.
수성구에서 추어탕 식당을 이윤화(여·69) 사장은 개업 25주년을 맞아 식당 일부 메뉴 가격을 낮췄다. 이 사장은 "우리 가게가 개업한 지 벌써 25주년이 됐다. 기념일인 만큼 관련 이벤트를 하고 싶어서 단골 손님들에게 여쭤보니 '물가가 너무 올라 식당에서 밥을 먹기가 무섭다'라며 대부분이 메뉴 가격 인하를 요청하셨다"며 "고심 끝에 9천 원이던 청국장 정식을 7천 원으로, 닭개장(1만 원)을 8천 원으로 가격을 조정했다고 했다. 이 사장은 "추어탕 가격도 낮추고 싶었는데 원재료 값이 너무 비싸 추어탕 가격만은 그대로 유지할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이벤트' 정도로 시작한 가격 인하였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기존보다 낮아진 가격을 확인한 단골 손님들은 '정말 가격을 낮춘 거냐'라며 수차례 질문을 하는가 하면 가격 인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일부 손님들은 이 사장에게 '요새 어디 가서 7천 원에 정식을 먹을 수 있겠냐'며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처음엔 며칠만 유지하는 이벤트성 가격으로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다. 인건비, 원재료 값을 생각하면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은 많이 줄었지만 갑작스러운 물가 상승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는 이상 손님들을 위해 낮춘 가격을 쭉 유지하려 한다"며 "한편으론 손님들이 고물가 시대에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 지를 느끼며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 같은 자영업자를 포함한 서민들이 힘든 시기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미소지었다.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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