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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잘 사는 세상을 원해…젠더폭력에서 살아남은 10인의 처절한 생존기

2022-11-04

2022110201000109200003441
가해자_표지
푸른나비 외 지음 일다/207쪽/1만4천500원

젠더를 기반으로 한 폭력은 여전히 폭력성을 더한 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못한 채 현재진행형이다. 고통은 오로지 피해자들의 몫이고, 그들의 삶은 결국 피폐해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치닫는다.

책은 젠더폭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10명의 기록이다. 폭력 이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또 앞날의 삶을 내다보며 스스로 써 내려간 10편의 글을 모았다. 젠더폭력 피해자들이 인터뷰를 통해 등장하는 기존 도서들과 달리, 이 책의 저자들은 생존자라는 자기 정체성을 지닌 채 글쓰기의 주체가 된다. 그러면서 젠더폭력 그 이후의 삶을 직접 재구성해 풀어낸다.

친족 성폭력·가정 폭력·교제 폭력 등
젠더 기반 폭력 양상 가감 없이 드러내
피해자에 대한 편견·태도 변화 촉구
진정성 있는 일상복귀 지원도 모색

10편의 글에서 저자들이 말하려는 것은 각종 매체를 통해 드러난 폭력적인 사건들이 아니다. 폭력 이후 수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계속된 2차 피해에 저항하며 생존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성폭력을 당하고도 그 사실을 덮어버려야 했고, 폭력을 가한 친족을 떠났으면서도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자기 비하와 자기 포기로 자해를 하기도 했다.

'여동생은 내 말을 듣고 "언니가 반항하지 않아서 그런 일이 생긴 거야"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평생 겪은 셀 수 없는 폭력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집안에서 나 하나만 침묵하는 것으로 모든 게 괜찮을 수 있다면 다 감내하겠노라고 생각했던 가족의 비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은 것은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내게 일어난 불행을 알게 된 아주 오랜 친구는 '자신의 딸을 단속해야 하고 남편을 의심해야 해서 괴롭다'라고 말했다. 그 친구에게 나는 '내가 너무 불행해서 미안하다'라고 사과하고 거리를 두던 때였다. 그런데 동생까지….'(-우리가 '생존자'라고 말하는 이유:나는 친족 아동 성폭력을 증언한다-중에서)

책은 친족 아동 성폭력, 가정폭력, 교제 폭력, 직장 내 성폭력, 디지털 성폭력 등 젠더 폭력이 얼마나 다양한 양상으로 일어나는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동시에 폭력 이후의 삶도 얼마나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에서 만나는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들은 젠더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고착된 이미지를 버리고, 비극적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어 이해를 심화·확장하도록 촉구한다. 또 피해자의 회복과 건강한 생존을 위해 진정성 있는 지원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잘 사는 세상은 어떻게 가능한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젠더폭력을 '가해자 개인의 문제' 혹은 '피해자 개인이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일각의 논리에 맞서, 핵심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임을 밝힌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말하기'를 시도한다. 그 말하기는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딛고 있는 넓고도 촘촘한 사회를 정확히 향해 있다. 무엇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은 평범한 삶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도 하고 싶은 일들이 점차 생겨나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이제는 예전에 좋아하던 노래를 찾아 듣게 되고, 먹고 싶은 음식도 종종 떠오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이 난다. 너무나 소중한 일상으로의 한 걸음들이다. 이제는 나에게도 5년 후, 10년 후의 삶이 있으리라고 믿는다.'(-디지털 성범죄 공동 투쟁기 : 불법촬영, 가스라이팅 피해자의 회복기-중에서)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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