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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대리외상증후군…사고 영상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고통 느껴

20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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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대규모 참사로 전 국민이 슬픔에 빠졌다. 반달가량 지났지만, 슬픔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문제는 이런 대형 참사가 가져온 슬픔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기다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지인뿐만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이들마저 이날의 충격 탓에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특히 101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다친 1995년 4월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192명이 숨진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등을 겪었던 대구경북 시도민이 받은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유튜브, SNS 등을 통해 본 사고 당시 영상이 계속 떠올라 괴롭기도 하고, 그렇게 갑자기 떠나보낸 이들이 마치 자신 주변의 사람처럼 느껴져 삶이 허무해지는 경험까지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경험·목격 땐 일정시간 지난 뒤에도 정신적 고통 발현되기도
환자 10명 중 3명가량 치료 없이 호전되지만 대부분 악화 반복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불안장애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몰입
사건이 계속 떠오른다면 관찰자 입장에서 생각하려 노력해야

◆내가 겪은 것 같은 참사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참사 영상 등이 SNS상에서 무분별하게 유포되면서 마치 그 현장을 직접 경험한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이를 '대리외상증후군(Vicarious Trauma)'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고를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언론 보도나 SNS상의 영상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노출되면서 그날 참사를 직접 경험한 것처럼 심리적 고통을 겪는 것을 말한다.

특히 유튜브를 포함한 SNS가 발달한 탓에 사건 현장과 관련된 사진과 영상이 모자이크 처리 등도 없이 실시간으로 올라왔고, 이를 퍼 나르면서 급속도로 확산한 점도 한몫했다.

이런 탓에 많은 사람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참혹한 광경을 마치 직접 본 듯한 충격에 빠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본인이 실제 겪지 않고도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 같은 충격과 스트레스에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이 됐고,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경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 한 대학 연구팀이 2018년 미국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총기난사사건을 경험한 플로리다주 코랄 스프링스 인구를 분석한 결과, 총기난사사건에 대한 TV 보도에 따른 지역사회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유병률은 3.1%로 조사됐다. 더욱이 이런 유병률은 TV시청 시간과 비례했다. 4시간 미만 TV를 시청한 인구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유병률은 0.3%를 기록한 반면 8~11시간 또는 12시간 이상의 경우 3.5%로 10배 이상 높았던 것.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총기난사사건과 연관된 영상을 시청한 경우 유병률은 5.3%로 TV에 노출됐을 때보다 더 높았다. 하지만 TV 노출을 줄이면 일반 인구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유병률은 최대 90%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영상 줄이고, 대화로 감정 나눠야

14일 전문의들에 따르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심각한 외상, 즉 마음에 큰 충격을 주는 경험을 한 이후 나타나는 불안 장애를 말한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에서부터 목격한 것까지도 외상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경우 과거에 받은 심한 충격들이 수시로 떠오르는 탓에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해도 충격을 받았을 당시의 고통스러운 상황이 지금도 일어날 것 같은 공포가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이런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발생하고, 심지어 30년 넘어서 발현되는 경우도 있다. 전체 환자 10명 중 3명가량은 치료 없이 스스로 증상이 호전되지만, 나머지의 경우는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거나 지속적으로 악화된다.

참사 피해자와 가족들 그리고 현장에 나섰던 경찰과 소방관 등은 직접적인 충격으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런 탓에 사소한 자극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신경이 과민해져 쉽게 화를 내거나 흥분하고 집중이 되지 않아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할 수 없게 된다고 전문의들은 전했다. 특히 참사를 직접 목격한 가족과 지인은 지키지 못하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의들은 최근 별도의 질환처럼 분류되고 있는 대리외상증후군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후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비슷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것과 차이는 있지만, 영상 시청으로 직접 목격한 것과 비슷한 충격을 받았고, 이에 따른 정신적 고통은 같기 때문이다.

경북대병원 원승희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대리외상증후군은 의학용어는 아니다"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대한 진단 기준을 보면 '생명 위협을 느낄 정도의 직간접적인 외상 경험' 등이 요인으로 포함되어 있는 만큼 영상 등으로 현장을 간접 경험한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것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직접 본 것과는 충격이 다르고 모두가 충격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아동·청소년, 감정조절 능력이 부족한 사람, 이전에 이와 유사한 외상의 경험이 있었던 사람 등 자기감정 조절이 힘든 경우는 영상만으로도 더 몰입하게 되고, 충격도 심해질 수 있는 만큼 관련 영상을 접속하지 않거나 빈도를 줄이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렇게 감정조절 능력이 부족한 경우나 과거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이런 사건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고, 자신이 겪었던 사건과 결부해 더 몰입하게 된다는 점이다. 또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결부해 반복적으로 사건을 떠올리게 되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어버리는 상황도 초래한다. 더욱이 이전에 외상을 경험하면 비슷한 외상에 대한 생존적 본능이 남아 극복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이것이 그때의 경험을 스스로 다시 경험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고, 여기에 불안장애까지 있을 경우 상상만으로도 몰입해 버리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고 전문의들은 설명했다.

원 교수는 "비슷한 외상 경험이 있는 경우 한 번만 봐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몰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사실만 확인하고, 영상 등은 보지 않는 게 좋다. 만약 이미 자꾸 떠오르는 상태라면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면서 이 사건과 자신이 떨어져 있음을 인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관찰자 입장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도움말=원승희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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