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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과 책상 사이] 아버지의 편지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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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우리 아들이 급우를 심하게 때렸다고 합니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그 아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아 그랬답니다. 선생님께서는 친구가 옳지 않다고 주먹을 휘두른 우리 아이의 행위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상대 부모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하니 만나서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아이 아빠가 나서주면 좋겠는데 저더러 해결하랍니다." 상담하러 온 엄마는 아이도 속상하지만, 모든 것을 아내가 감당하고 해결하길 바라는 남편이 더 원망스럽다고 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떠올랐다.

위대한 사상가인 정약용은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그는 6남3녀를 두었지만, 유배 생활 시작 전후로 아들 넷과 딸 하나를 먼저 보냈다. 전남 강진에 유배될 무렵 아들 둘은 10대였다. 그는 편지로 자녀와 소통했다. 자신이 읽은 책의 서평, 필독 목록 등을 보냈다. 심지어 닭치는 법, 술 마시는 법, 채소·과일 재배법, 제사상 차리는 법 등에 관한 편지도 썼다. 일부 학자는 다산이 좀 심하게 자녀를 간섭했다는 이야기도 한다. 어쨌든 그는 '폐족으로 잘 처신하는 길은 오로지 독서밖에 없다. 독서만이 내 목숨을 살리는 일'이라고 써 보낼 정도로 책 읽기를 강조했다.

상담하러 오신 분의 남편을 만났다.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세상살이와 자녀 양육의 힘겨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지로 자녀를 양육한 다산의 이야기도 했다. 1806년 5월 강진에서 큰아들 학연에게 보낸 글을 같이 읽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이라는 저울이며, 다른 하나는 이익과 손해라는 저울이다. 이 두 가지 저울에서 네 가지 등급이 생겨난다. 최상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도 이익을 얻는 것이다. 그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이다. 그른 것을 추구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 그다음이고, 그른 것을 추구하다가 해를 입는 것이 최하이다." 정의감과 의협심에 불타는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라고 했다. 아빠는 아들이 친구를 너무 좋아하고 낭비벽이 좀 심한 편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다산이 부지런할 '근(勤)'과 검소할 '검(儉)' 두 글자를 유산으로 남기며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도 같이 음미해 보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카톡으로 쪽지 글을 자주 보내고 간혹 손편지도 써 보자고 했다. 그는 다산의 저울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저쪽 아빠를 만나 직접 사과하겠다고 했다. 나는 카페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 그날은 매장에서 직접 구입해 우체국에 가서 아이들에게 부쳤다. 거리로 나서니 가을이 뒹구는 낙엽들과 함께 먼 길을 떠나고 있었다. 살아생전 아버지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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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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