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21121010002750

영남일보TV

[정재완의 디자인 생각] 한국전쟁과 대구의 그래픽 디자인…1950년대 잡지 '도정월보'…韓 현대문화예술의 지형도

2022-11-25

1951년 경북도서 도 단위 최초 발행

도정 홍보부터 문인들 작품까지 담아

당시 인쇄술·제본 등 제작법 총망라

뒤표지에 실은 디자인 '다이어그램'

출생·사망 수 등 방대한 정보 체계화

[정재완의 디자인 생각] 한국전쟁과 대구의 그래픽 디자인…1950년대 잡지 도정월보…韓 현대문화예술의 지형도
'도정월보' 다이어그램: 4292년 말 상주인구 조사표. (1960년 5월31일 발행)

'도정월보'는 공무원의 업무 능력, 정책 연구, 교양 증진을 위한 잡지다. 공무원이 만든, 공무원을 위한 잡지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7월20일 창간된 '도정월보'는 도 단위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경북도에서 만들어졌다. 전쟁으로 인해 수도 서울이 함락되었기 때문에 잡지가 발행된 대구는 도정의 중심지이자 정치·경제·문화·예술의 피란처였다. 잡지는 정부 발표 대국민 포고문, 전쟁 상황과 국제사회의 모습, 경제와 사회 등 당시 시대상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또한 대구로 내려온 문인, 화가 등이 글이나 작품을 발표하는 지면으로 활용된 점에서 한국 현대 문화예술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창간사에서 밝힌 것처럼 '도정월보'는 도정을 홍보하는 매체 이상으로 한국전쟁 당시 공무원은 물론 많은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이 탐독하던 잡지였다.

[정재완의 디자인 생각] 한국전쟁과 대구의 그래픽 디자인…1950년대 잡지 도정월보…韓 현대문화예술의 지형도
'도정월보' 창간호 표지. (표지 그림 조병덕, 표지 인물 신현돈 경북도지사. 1951년 7월20일 발행)

"1950년대 한국의 문화를 논할 때 전쟁이라는 키워드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에는 아군과 적군 간의 전투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전시 중에는 새로운 문화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한국전쟁을 예로 들면, 참전국이었던 미국이 미디어 전략가들을 대동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왔어요. 이때 미국인이 남겨 놓은 사진이 굉장히 많습니다. 전쟁 치르러 오는 건지, 사진 찍으러 오는 건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기록' 과정에는 저절로 디자인이 따라옵니다. 기록물들은 기록과 함께 표현과 전달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죠. 그런 과정에서 디자인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에 영화 또는 선전, 미디어 도구로 기능하게 됩니다. 실제로 미국의 방송 및 영화 기술자들이 한국에 넘어와 활동하기도 했고요. 전시 상황의 민간인에게 투여하는 일종의 마취제로서 영화가 활용됐다는 정치적·전략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스펙터클 영상 문화가 이 시기에 시작됐다는 가설을 세워 보면 어떨까요. 한국 영상 문화의 현대적 유전자라고 할까, 그런 특성을 논할 때 한국전쟁부터 출발해 보자는 것이죠."('1950~1960년대 한국의 영화 타이틀, 한글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시작' 좌담(정병규·유정숙·최지웅·정재완). 《the T》 제9호 혁신호, 2017. 1 .1.)

기록은 디자인을 수반한다. 이때 디자인은 기록하고자 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표현법의 심미적인 부분까지 포함하는 일이 된다. 따라서 잡지라는 인쇄 매체를 택했던 '도정월보'는 당시의 활자 견본과 활판인쇄술, 종이, 제본 방식 등 책 제작의 기술적인 상황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잡지는 활자와 레터링 표현 이외에도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도표, 다이어그램 등의 시각화 기법을 통해 기록 방식의 다양한 층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잡지의 맨 앞부분과 뒷부분에 실린 '도정화보'는 대통령·장관·도지사의 지역 순방이나 주요 사업의 기록 사진을 편집해 놓은 것이다. 사진은 이봉구씨가 주로 촬영을 맡았다. '도정월보' 초기에는 화가 조병덕과 만화가 백문영, 김영환 등이 컷을 그렸지만, 이후 점차 사진 사용 비중이 늘었다.

[정재완의 디자인 생각] 한국전쟁과 대구의 그래픽 디자인…1950년대 잡지 도정월보…韓 현대문화예술의 지형도
'도정월보' 표지.(1961년 4월25일 발행)

1959년부터 중외출판사, 경북인쇄소 등이 제작을 담당하면서부터 인쇄 품질이 향상되었는데, 이 시기는 대구경북에 오프셋 인쇄기가 도입되기 시작한 때였다. 전쟁으로 인해 대구로 피란 온 서울 오프셋인쇄사와 대한단식인쇄사는 그동안 활판·석판을 사용하던 지역 인쇄업체에 큰 자극을 주고 발전을 이끌었다. 대구 북성로 경북인쇄소 건너편에 자리한 대한단식은 오프셋 기계를 활용해 영어사전 등을 인쇄했다. 경북인쇄소는 국방부 정훈국에 징발되어 전단, 포스터와 포고문 등 군수용·관수용 인쇄를 맡았다. 또한 일본으로부터 자동활자 주조기를 도입해, 1958년 1월에 창간한 전국 최초의 수학 잡지 '경북매스매티컬저널'을 출판하기도 했다.('대구·경북 인쇄 조합 45년사' 참고)

몇 호에 걸쳐 '도정월보'는 뒤표지에 다이어그램을 실었다. 이것은 잡지 디자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이어그램은 시군별 남녀 인구 동향, 출생과 사망자 수, 도내 학교 분포도, 암소와 수소 마릿수, 농지 개량 사업, 농촌 지도자 양성 통계 등을 다루고 있다. 다이어그램은 방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시각화해서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다. '도정월보'의 발간 목적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인포그래픽은 도정의 정책 의사 결정을 지원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사용되었을 것이고, 지금의 '정책 지도' 개념의 초기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정재완의 디자인 생각] 한국전쟁과 대구의 그래픽 디자인…1950년대 잡지 도정월보…韓 현대문화예술의 지형도

'도정월보'는 한국전쟁으로 혼란하고 궁핍했던 시기, 사진이나 색을 다루는 인쇄 환경이 척박했을 시기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조악한 본문 조판과 사진인쇄 등 기술적 완성도는 아쉽지만 화보 구성, 일러스트레이션 연출, 다이어그램 등 몇몇 편집과 디자인 측면에서는 그 솜씨를 자랑할 만하다. 특기할 만한 점은 1961년 4월25일 발행한 '도정월보' (제11권 제2호) 목차에는 '표지·도안·조조열' '扉 ·김윤찬'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표지는 4·19 혁명의 출발점이었던 대구 2·28 민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의뢰인의 구체적인 요구에 의해 짧은 기간 동안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화가의 오롯한 미술 작품이 아닌 도안의 개념으로 접근한 것으로 당시 미술과 도안(디자인)의 위계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扉 ' 은 '도비라(とびら)'로 지금의 표제지를 가리킨다. 1960년대의 잡지에서 도안가(디자이너)의 이름을 발견한 것은 한국 초기 디자인의 미미한 흔적이지 않을까.

누렇게 바래고 부서지는 종이를 들춰 가면서 발견하는 정보와 역사적 사건들은 묘한 희열을 안겨 준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70여 년 전, 어느 인쇄소에서 '도정월보'와 치열하게 호흡했을 이름 모를 디자이너와 이렇게나마 조우한다는 것이 기뻤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한편으로는 강력한 선전 미디어를 만들어 낸다. '도정월보'는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DNA를 논할 때 '전쟁'이라는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새로운 화두를 던져 준다.

1950년대 대구라는 시공간은 한국 현대 문화예술이 응축된 현장이었다. 문화예술의 지형도가 중층적으로 묘사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를 기록하는 일은 가치 있다. 더불어 여기에서 파생된 전시·공연 포스터, 도록, 리플릿, 영화 포스터와 전단 광고, 신문과 잡지 등 시각문화 자료는 내용적 측면 이외에도 당시의 제작 기술 환경을 살펴볼 수 있는 그래픽 디자인 사료들이다.

(* 이 글은 '서울리뷰오브북스' 7호 '디자인 리뷰'에 필자가 쓴 <전쟁과 북 디자인-'도정월보'의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참고한 것입니다.)

(북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