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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태기자〈경제부〉 |
"새우 몸집 한번 키워볼란다, 고래 만큼."
최근 화제가 된 한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다. 드라마 배경은 1980년 후반 한국이다. 한 대기업 총수는 미국과 일본의 공세에 반도체 사업에서 철수해야 하는 위기에 내몰린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감한 투자를 했고 그 결과 재계 서열 1위에 오른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강자들의 싸움에 휘말려 약자가 피해를 보는 경우에 빗댄 속담이다. 작은 새우가 고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인내'가 아닐까 생각한다. 장시간 많은 돈을 들여서 고래만큼 몸집을 키우는 것이다.
최근 3개월간 '대구 미래 신산업 비전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했다. 미래 모빌리티·로봇·반도체·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 디지털 헬스케어까지 5대 분야별로 기업인과 학계, 정책 전문가를 두루 만났다. 대구의 미래 먹거리가 될 산업을 조명한다는 기획 취지를 설명했고, 감사하게도 대부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줬다.
덕분에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경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됐다.
대구시가 점찍은 5대 신산업의 면면을 보면 모두 전도유망하고 잠재력이 충분하다. 다만 이전에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그만큼 불확실성도 내재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길' 끝에 목적지를 설정하고 전력 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란 쉽지 않다. 신산업 분야는 연구개발(R&D)에 막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하지만 바로 성과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규제 갈등으로 인해 기술혁신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발전이 늦춰질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확고한 비전을 가진 기업인들을 보며 희망을 엿보기도 했다. 밖으로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급변하는 산업 환경과 대내외 악재 속에서도 기회를 찾으려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당장의 매출액이나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데 집중한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게 있다.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다.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구의 신산업이 몸집을 키우려면 인고(忍苦)의 시간이 필요하다. 치열한 경쟁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도 요구된다. 침체된 대구 경제의 새로운 동력 장착이 절실한 시점이다. 다급함을 앞세우지 말고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된 전략을 먼저 수립한 뒤 이를 실행에 옮길 때는 강력한 추진력을 갖춰야 한다.
정우태기자〈경제부〉

정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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