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 암벽 위 길이 5m 규모 암각화
田 모양은 부족사회 생활권 형상화
고대인 영적 허기 표출한 영혼의 지도
우리민족 기원과 이동 알려주는 지표
주술적 제례의식 사용된 것으로 보여
![]() |
고령 장기리 암각화. |
그때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햇볕도 따스하고 상쾌했다. 어디서 알이 부화하는 듯, 껍질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건 먼 여운으로 한참 동안 귓가에서 맴을 돌았다. 그 암벽에 새겨진 그림은, 환시는 물론 환청까지 몰고 왔다. 어디서 본 듯한 그림들. 신석기 후기에서 청동기 시대에 새겼다는 암각화. 알 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그 그림은 대낮의 꿈처럼 곰비임비 몽롱하였다.
여긴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알터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하늘신과 땅신이 교접해 알을 산란한 곳이라 하여 알터 혹은 알현이라 부르고 있다. 암각화는 남향의 수직 암벽 위에 길이 5m 높이 1.5m 정도로 새겨져 있다. 그림은 하나의 중심에서 새긴 동심원(同心圓)과 신의 얼굴을 상징하는 신면형(神面形)이 주를 이룬다. 모양은 검파형, 가면형, 방패형, 인면형, 장방형, 기하문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정리되어 있다. 바위에 새긴 방식은 쪼기로 기본형을 만든 다음 여러 차례 다듬고 문질러서 완성하였다.
![]() |
암각화 주변의 장기리 알터마을 풍경. 보호각 아래에 암각화 바위가 있다. |
암각화는 바위가 전하는 그림이지만 바람이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신석기 후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의 우리 조상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수많은 역사학자가, 또 전공자가 암각화를 연구 보고해도 그 해답은 명확하지 않고 다만 추측으로 그 기호와 상징을 풀이할 뿐이다. 그래서 이 신비한 바위 그림을 해석하고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이론을 잠시 빌려와 접근해 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인간이 지상에 등장하여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영혼과 욕망의 갈등, 꿈, 상상 또는 사실적인 기록들이었다. 현대인도 그러하지만, 고대인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그들의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이었다. 우리에게 가장 심각했던 의식과 무의식의 분리, 영적 허기, 감정의 힘이 어떻게 왜 무슨 이유로 그렇게 오래 부정되어 왔는지에 대한 융의 해석이 암각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암각화는 일종의 영혼의 지도다. 영장류로서 인류가 지치지 않고 탐구했던 정신세계와 신의 존재, 주술적인 제례 의식이 여기에도 나타난다. 이쯤에서 지금까지 암각화를 분석한 선행 연구가들의 몇 가지 공통점을 짚어보자.
첫째,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이 자신들의 소원이나 상상을 커다란 바위나 성(聖)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이라 한다. 둘째, 전 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 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 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셋째, 암각화가 다양한 형태를 한 것은 선사시대 신앙대상이었던 조상신이나 수호신 등의 여러 가지 상상을 형상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넷째, 선사시대 사람들이 암각화 앞에서 제사 의례를 하였다는 것이 큰 줄기다.
암각화에서 유추하는 성혈, 태양을 상징하는 삼중 동심원, 사각형 안에 그려진 전(田)자 모양의 십자형 등은 부족사회의 생활권을 형상화하고 표현한 것이다. 또 가면 모양은 가로 약 25㎝ 세로 약 30㎝로 머리카락, 수염 같은 털을 새기고, 그 안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인간 얼굴을 표현하여, 원시 종교에서 보는 일종의 부적 색채가 짙다. 이러한 바위 그림 얼개는 태양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그들의 제의(祭儀)와 영적 기도를 그림과 상징으로 나타낸 것으로, 이렇게 형상화된 바위 그림으로는 청동기인이 무엇을 말하고 나타내고 전하고자 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왜냐하면, 형상화란 현실의 경험을 상상과 환상으로 전환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마치 시(詩)가 인간의 정신세계를 형상화한 언어로 표현하여 용어 뜻만 가지고는 그 의미의 핵심을 허투루 알 수 없듯이, 그래서 시(詩)를 신(神)의 말씀, 또는 영혼의 독백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미로나 수수께끼 같은 암각화의 신비나 주술적인 기하학적 문양을 어느 정도 해석할 수 있는 융 이론의 가장 핵심인 프로파간다를 공유해 보자.
융은 현대인이 도덕적 파탄, 영혼 상실에 빠져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를 이끌어 줄 신화가 없어졌다고 했다. 신화가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위하여 살아야 할 목적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며, 아울러 고통을 감수할 목적도 함께 잊었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종교는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에 의미를 주고, 고통을 견딜 용기를 준다. 왜 우리는 고통을 당하는가. 우리는 의미 없는 삶은 견딜 수 없다고 융은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것으로 만든 신화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건 가능한 한 의식화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신의 진화(the evolution of God)에 공헌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을 개성화라 했고, 이것이 융의 치유 메시지의 본질적인 첫째 요소다. 두 번째 요소는 정신(psyche)이 실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관적인 경험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인 정신이 실재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리의 삶에 의미를 되찾아 준다.
![]() |
김찬일 (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
융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본질적인 요소는 여성적 원리(feminine principle)이다. 여성성의 두 가지 특성은 순환하며 발전하는 것과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여성적인 원리에서, 삶은 곧 인격적이고 구체적인 실존과 연결되어 있다. 그의 목적은 머리 못지않게 가슴에 호소하는 것이다. 융은 인간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되어 있고, 주관적인 경험으로 무의식을 의식화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가 말한 영혼 상실, 신화, 삶의 의미, 정신, 의식화, 여성성 등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분열과 통합의 과정을 해석한 것이다. 무의식은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통해 밝혔지만, 융은 더 분석하여 무의식은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 알 수 없는 부분까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가 즐겨 말하는 영혼, 정신, 신화, 의미, 의식화 등은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로 전일체가 될 때 경험하는 주관적인 것이다. 이렇게 의식과 무의식이 전일체가 되게 하는 터널이 꿈, 기호, 상징이다. 우리는 꿈, 기호, 상징을 통해서 무의식과 접촉하고 무의식이 함유한 무한 에너지, 즉 우리가 종종 실수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고, 새로운 지배원리, 말하자면 신(하나님)은 우리 자신들 안에서 사람이 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인간 즉 융이 말하는 자기(개성화)가 되어야 한다. 이 말은 우리가 잃어버린 정신과 영혼을 먼저 되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든 개인의 무의식 속에 영성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되고,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제가 될 것이다. 말하자면 과거의 신앙은 신(하나님)을 믿고 숭배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신(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인 이해가 고대의 종교적인 심상(心像)에 활기를 다시 불어넣는다. 이런 시각에서 알터 암각화를 이해하면 그 신비한 그림들이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 그 실루엣이 드러날 것이다.
오늘 트레킹을 여기서 마무리하기에 시간이 남아 우리는 승용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쌍림면 개실마을 점필재 종택으로 떠났다. 점필재 종택은 조선 조 영남사림파의 종조인 김종직(金宗直·1431~1492) 가문의 종가다. 김종직 후손은 17세기 중반 5세손인 김수휘 대에 와서 고령에 정착하였다. 김종직에 관한 구체적인 소개는 추후에 할 수밖에 없다. 장기리 암각화가 의미하는 청동기인의 영혼의 지도가 아직도 길게 잔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글=김찬일 〈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kc12taegu@hanmail.net
사진=백계분 〈여행사진 작가〉
☞문의: 장기리(알터) 관광안내소 (054)950-6322
☞내비주소 : 경북 고령군 아래알터길 15-5 (대가야읍)
☞트레킹 코스 : 알터 암각화 ~개실마을 점필재 종택
☞인근의 볼거리: 양전리 구석기 유적, 안화리 암각화, 주산성, 대가야 궁성지, 반룡사 다층석탑, 고령 개포동 석조관음보살좌상, 고령 관음사, 고령 장육당, 고령향교, 김면 장군 유적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